자녀에게 돌봄 기대 비율 4%…세대 간 돌봄 책임 인식 ‘급변’
전문가들 “돌봄, 개인·가족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시대 지나”
“국가와 지역사회가 함께 책임지고 돌봄 논의·실행 시급해”
40대 이상 성인 10명 중 4명은 자신이 늙거나 병들었을 때 요양보호사 등 전문 돌봄 인력이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가 돌봐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비율은 단 4%에 그쳤다. ‘배우자의 돌봄’을 둘러싼 남녀 간 인식 차이도 크게 드러났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는 최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지역사회 돌봄 인식과 수요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월 25일부터 30일까지 전국 4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에 대비해 국민 인식과 구체적 수요를 파악하기 위해 진행됐다.
◆요양보호사 기대 39%, 자녀는 4%…“男, 배우자 돌봄 의존도 높아”
16일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돌봄이 필요할 때 누가 돌봐줄 것으로 예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요양보호사 등 돌봄 인력을 꼽은 비율이 39%로 가장 높았다. 이어 배우자(35%), 본인 스스로(21%), 자녀(4%) 순이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성별에 따른 인식 차이다. ‘배우자가 돌봐줄 것’이라는 응답은 남성 49%, 여성 22%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남성은 배우자에게 돌봄을 기대하는 경향이 크지만, 여성은 요양보호사(48%)나 본인 스스로(23%)를 선택한 비율이 남성보다 높았다(각각 30%, 19%). 여성들이 훨씬 더 자립적이고 현실적인 돌봄 대안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살던 집에서 돌봄 받고 싶다”…지역 기반 돌봄 수요 ‘뚜렷’
돌봄이 필요할 때 희망하는 거주 형태로는 ‘현재 살고 있는 집’(47%)이 가장 많이 선택됐다. ‘돌봄에 적합한 지역사회 내 주거시설로의 이주’는 32%였고, ‘노인복지시설 입소’를 희망하는 경우는 7%에 불과했다.
김용익 돌봄과미래 이사장은 “익숙한 공간에서 나이 들고 돌봄을 받길 바라는 지역사회 중심의 돌봄 수요가 압도적”이라며, 향후 정책 방향이 시설 중심에서 지역사회 기반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가족과 이웃의 ‘단절’…고독사 우려도 상당해
자녀 등 따로 사는 가족과 주 1회 이하로만 연락한다는 응답은 49%에 달했다. 자주 교류하는 이웃이 있다는 비율은 20%에 불과했다. 긴급 상황 발생 시 가족 외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다고 답한 비율도 40%에 달했다.
‘고독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미혼자의 87%가 ‘그렇다’고 답한 반면, 기혼자는 52%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선호하는 임종 장소로는 ‘자택’이 48%로 가장 많았다. 실제 임종 장소로 예상되는 곳은 종합병원(29%)이 가장 높았다. 자택은 21%에 그쳤다. ‘집에서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희망과 의료 현실 간의 괴리를 보여준다.
◆국민 85% “돌봄은 국가 책임”…자부담 경감, 최우선 과제로
돌봄서비스의 책임 주체로는 ‘국가’(8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지원이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는 ‘건강관리·의료’가 지목됐다. 노인 돌봄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는 ‘본인 부담 경감’이 1순위로 나타났다.
최근 1년 내 병원 입원 경험이 있는 사람 중 간병을 가족·지인 등이 무급으로 맡은 비율은 51%였고, 간병인을 고용한 경우는 7%에 그쳤다. 고용 간병인에게 지불한 하루 평균 간병비는 15만원이었다.
85%의 국민이 노인 돌봄을 위한 세금 지출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공공 돌봄 확대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상당 부분 이뤄진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는 우리 사회가 ‘가족 중심 돌봄’에서 ‘사회적 돌봄 체계’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전문가는 “40대 이상 국민 10명 중 4명이 요양보호사 등 전문 인력에 의존할 것으로 답한 것은 단순한 선택이 아닌 현실적인 돌봄 인프라에 대한 요구이자 신호”라고 분석했다.
이어 “자녀에게 돌봄을 기대하는 비율이 4%에 그친 점은, 세대 간 돌봄 책임 인식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별 간 인식 차이도 중요하다. 남성은 배우자에게 돌봄을 기대하지만, 여성은 훨씬 더 자립적이고 외부 전문 돌봄을 적극 고려하고 있다”며 “고령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중되는 이중 돌봄 부담 문제를 다시 한번 환기시킨다”고 말했다.
아울러 “많은 이들이 ‘살던 집에서 존엄하게 돌봄을 받고 싶다’고 응답한 점은, 돌봄 정책이 지역사회 기반으로 전환되어야 함을 강하게 시사한다”고 전했다.
이제는 돌봄을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기는 시대는 지났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어떻게 함께 책임지고 돌볼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행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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