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민사과는 쇼
대표는 아들에게
아들은 임원들에
책임 넘기기 바빠”
“아내와 처제 참변
비정규직 노동자
비상구 이용 못해
안전 차별에 분노”
“영상 속 사촌동생
폭발 후 경직된 채
놀라 벌벌 떨기만
안전교육 못받아” 상>
리튬전지 폭발로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참사’는 여전히 수습되지 못하고 있다. 아리셀 참사는 그간 산업재해 대책 사각지대라 평가받던 불법파견·영세업체·이주 노동자에 그 피해가 집중됐다. 정부는 부랴부랴 백화점식 대책을 쏟아냈지만 상당수가 여태까지 시행되지 못한 채 표류 중이다.
아리셀 측의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에 대한 1심 재판도 아직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그 사이 참사 사망 노동자의 가족들은 아리셀 측엔 ‘진실된 사과’를, 정부에는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여전히 외치고 있다. 본보는 아리셀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현재진행형인 참사의 고통을 살펴보고 정부가 내놨던 대책을 점검해본다.

“그냥 6월24일(아리셀 참사일)을 계속 살고 있어요.”(아리셀 참사 유가족 최현주씨)
“주위에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허헌우씨)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도 죽은 동생이 얼마나 아팠을까 생각이 들면 깨서 혼자 울어요.”(〃 여국화씨)
리튬전지 폭발로 노동자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리셀 참사 1주기(6월24일)가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최근 기자가 만난 참사 유가족들은 여전히 고통을 호소했고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남편이 변을 당한 최현주씨는 “(사고 이후) 1년이란 시간은 내게 큰 의미가 없다. 여전히 자주 숨쉬기 힘들고 물도 한 모금 못 넘기는 때가 찾아온다”고, 아내를 잃은 중국동포 허헌우씨는 “(이런 사고는) 모두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겪고 나니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리셀에서 일하던 사촌이 숨진 중국동포 여국화씨는 “사고로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로 훼손된 동생의 모습이 자주 생각난다”고 했다.
여전히 참사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한 건 아리셀 박순관 대표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 박 대표 측이 그간 개개 유가족 측에 접촉을 시도하면서 개별 보상에 대해서만 제안했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박 대표가 사고 다음날 한 ‘대국민 사과’나, 올 1월 법정에서 한 사과는 전부 언론과 재판부를 향한 것으로 본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게 유가족 측 입장이다.

◆“진짜 사과 듣고파”
“다른 게 아니라, 진짜 사과를 원해요. 그걸 들어야 남편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씨는 1일 충북 청주와 11일 수원지법 근처에서 총 두 차례를 만나 사과 문제와 관련해 이같이 말하며 “배신감이 아직까지도 사무친다”고 했다. 수원지법은 박 대표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에 대한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곳이다. 최씨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재판이 열릴 때마다 법원을 찾아 방청 중이다. 11일 공판에서도 본인이 아리셀의 실질적 경영자가 아니란 박 대표 측 주장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 측 공방이 오갔다. 박 대표는 아들인 박중언 경영본부장이 실질적으로 아리셀을 경영했단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최씨는 이런 박 대표 측에 대해 “황당하다”며 “박 대표는 아들에게, 아들인 박중언 본부장은 남편을 포함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임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했다. 최씨 남편 고 김병철씨는 아리셀 연구소장이었다. 고인은 2022년 일을 관뒀다가 혈액암이 발병했다. 이 기간 박 본부장이 1년 반 정도 고인이 지내던 청주를 거듭 찾아 복귀를 제안했다. 최씨는 고인이 치료를 마친 뒤 복귀한 건 박 본부장에 대한 ‘인간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애들 아빠가 박 본부장네에 자녀가 태어났을 때 미역이랑 호박즙도 사주고, 일을 떠나 신뢰하는 관계였다”고 했다.

그러나 사고가 나고 한참 동안 박 본부장으로부터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최씨는 “사고 3일째 되는 날에야 아리셀 직원이 전화를 해왔을 뿐”이라며 “그때 일었던 화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사고 다음날 아리셀 측이 김앤장을 선임했다고 했다. 누구는 가족을 잃고 아무런 정신이 없는데, 자기들은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최씨는 지난달 중순쯤 박 대표 측으로부터 합의를 제안하는 연락을 또 한 번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나는 사과부터 받아야겠다’고 했더니, 그쪽에서 ‘합의 먼저 해야 사과도 가능하다’고 했다”며 “그걸 듣고 박 대표 측이 정말 진실된 사과를 할 마음이 없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고 한탄했다.

◆“내·외국인 모두 안전해야”
“그렇게 위험한 곳인 줄 알았다면 아내를 보내지 않았을 겁니다.”
참사로 아내 강순복씨와 강씨 여동생 강금복씨를 한꺼번에 잃은 중국동포 허씨는 아리셀 내 비상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던 문제를 언급하며 이같이 한탄했다. 수사 결과, 일부 비상구가 피난 방향이 아닌 발화부 쪽으로 열리도록 돼 있었고 일부 문은 보안장치가 설치돼 출입증을 소지한 ‘정규직’만 출입할 수 있었단 사실이 드러났다. 아내 강씨 같은 비정규직 외국인 근로자는 비상구를 이용한 탈출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었던 것이다.

허씨는 2023년 11월부터 아리셀로 출근한 아내 강씨가 한 번도 직장에 대한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말동무할 여동생이 있어 좋다는 이야기뿐이었단다. 허씨는 “울화통이 치미는 일”이라며 “비상 대피로도 없었다는 게 제일 분하다. 사람 목숨 갖고 장난한 것”이라고 말했다.
허씨는 박 대표가 유가족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며 ‘단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음번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벌을 안 받을 수 있구나’ 생각하지 않겠냐”며 “참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엄벌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법으로 걸린 사람이 몇 사람 없고, 걸려봐야 변호사를 사서 이렇게 저렇게 빠지지 않냐”며 “어찌 보면 돈 없는 사람들의 비애”라고도 했다.

아리셀 참사로 사촌동생 이모씨를 잃은 중국동포 여씨도 정규직만 비상구를 이용할 수 있었단 사실을 언급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안전에서도 차별이 있었단 게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위험에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우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어디 얘기도 못 하고 혼자 참아야 하는 일이 잦다”고 호소했다.
여씨는 숨진 사촌동생 이씨가 사측으로부터 제대로 된 안전 교육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재판 중에 공장 내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틀어줬는데, 폭발 직후에 동생이 아무것도 못 한 채 놀라서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팔로 몸을 감싸고 떨고 있는 모습을 봤다”며 “걔가 그런 데서 일하는 걸 알았으면 내가 정말 못 다니게 말렸을 것”이라고 했다.

여씨는 그 모습이 계속 떠오른다며 “내가 겪어 보니깐 너무 아프다”고 했다. 이런 일이 다신 반복되지 않으면 좋겠다는 그는 “외국인 근로자도 다 같은 사람”이라며 “우린 죽으려고 온 게 아니라 더 잘살아보려고 여기 온 것이다. 내국인도, 외국인도 모두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교육과 대책이 강화되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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