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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빠지게 기다려”… 병원선 오자 섬마을 활기

입력 : 2025-06-11 19:12:01 수정 : 2025-06-11 21: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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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 주치의 ‘건강옹진호’ 하루

인천 승봉 선착장 오전부터 분주
어르신들 긴 줄도 즐겁게 기다려
“하도 늦게 와서 몸이 너무 아프다”
의료진 만나자 애교 섞인 넋두리

3시간동안 주민 50여명 진료 마쳐
“이동형 보건의료 거점 충실할 것”

10일 오전 인천 육지에서 42㎞가량 떨어진 옹진군 자월면 승봉도. 100여 가구가 사는 작은 섬마을인 이곳 주민은 어르신들이 대다수라 평소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맴돌았지만 이날만은 활기가 넘쳤다. 인천 의료취약지역을 찾아가는 병원선 ‘건강옹진호’가 입항한다는 소식이 전해져서다.

‘떠다니는 주치의’로 불리는 건강옹진호는 270t급으로 지난 4월 건조됐다. 이전 병원선(108t)보다 2배 넘게 몸집이 커졌을 뿐 아니라 기존 내과·한의과·치과 진료에다 물리치료실·임상병리실·보건교육실이 추가되고 ‘인공지능 심장검사’(SmartECG-AF) 등 최신 장비까지 확충했다.

10일 건강옹진호를 찾은 인천 옹진군 승봉도 어르신들이 선박 내부에서 진료를 받고 있다.

“잠시 후 오후 3시부터 병원선 진료가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주민께서는 선착장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오후 2시40분 마을에 병원선이 들어온다는 방송이 울려 퍼지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했다.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가 힘겹게 발걸음을 재촉하자 전동 휠체어를 탄 할머니가 앞서 달린다. 건강옹진호가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낼 즈음 10여명의 대기줄이 늘어섰다. 주민들 중 비교적 젊은층에 속한다는 신미숙(70)씨는 “시도 때도 없이 어깨가 결리고 쑤신다. 한의사 선생님에게 통증을 줄여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고 했다.

오후 3시쯤 건강옹진호 닻이 내려지고 출입문이 활짝 열리자 기다린 순서대로 선박 안에서 접수 절차를 밟았다.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 하도 늦게 와서 온몸이 다 아프다”며 의료진에게 애교 섞인 넋두리를 늘어 놓은 김순복(87) 할머니는 “10년 전 관절 수술을 해 파스는 꼭 필요하다. 또 소화도 안 돼 약도 줬으면 한다”고 요구 사항을 줄줄이 알렸다.

10일 오후 인천시 병원선 ‘건강옹진호’가 순회진료를 앞둔 자월면 승봉도 접안시설에 접근하고 있다.

치과를 찾은 강정심(88) 할머니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치아가 여러 개 흔들려 많이 불편하다”면서 “딱딱한 거는 먹을 엄두도 나지 않는 정도다. 그렇지만 걷는 게 힘들어 도심 병원에 들르기도 어려워 4개월 넘게 참았다”고 말했다. 이날 어르신들은 “팔목이 아프고, 목 주위가 너무 뻐근하다”며 한방파스 ‘내몸 지킴이’라 부르면서 저마다 받아갔다.

이번 순회진료에는 지난 4월 훈련소를 나와 옹진군에 함께 배치된 치과 박해성(27)·내과 박승준(32)·한의과 임우창(27) 공중보건의사가 동승했다. 인천에서 초·중·고교를 모두 졸업했다는 박해성 공보의는 “고령인 경우 정기적으로 구강 검진을 받지 않아 질환이 누적되는 게 상당수다. 치경부 마모증과 충치는 가장 흔해 자세히 살펴보고, 구강 건강에 효과가 있는 스케일링을 권한다”고 말했다.

박승준 공보의는 CT·MRI 같은 도시 병원에 일반적으로 비치된 각종 장비들 혜택을 누릴 수 없는 게 섬의 열악한 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평소 의사를 보기 힘든 환자들이라 소신껏 진찰과 처방까지 낸다. 귀가하기 전 손을 맞잡고 고맙다고 말할 때 큰 보람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전했다.

옹진군보건소 소속 임희영 방사선사는 “인천의 작은 섬에 사는 이들은 아프다고 해서 마음대로 육지로 나가지도 못한다. 안개가 짙게 끼거나, 파고가 높게 치면 여객선의 발이 묶이기 때문”이라며 “장거리 항해 땐 뱃멀미도 심하지만 이동형 보건의료 거점으로 맡겨진 역할을 다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후 6시 의료진이 약 3시간 동안 50여명을 진료하고 그날 일과를 마무리하려는 순간 선착장에 모인 여러 어르신들이 건강옹진호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인천=글·사진 강승훈 기자 shka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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