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이 “폭력시위 부추겨” 주장
셰인바움 대통령 “사실 아냐” 반박
타국 정상 겨냥 직접 비난 이례적
강경 진압 정당화 등 노림수 관측
시애틀·세인트루이스 등 날로 확산
무력 추가 투입 확대 가능성 커져
미국 이민 당국의 불법 이민자 체포·추방에 반발해 로스앤젤레스(LA)에서 계속되고 있는 대규모 시위가 멕시코와의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불법 이민자 문제를 총괄하는 장관이 나서 시위의 배후로 멕시코 대통령을 지목했고, 멕시코 대통령은 즉시 반박하며 미 당국의 이민 정책 집행 방식을 문제 삼았다. 시위대들 사이에서 멕시코 국기가 저항, 연대의 상징으로 활용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분노를 쏟아내는 대상이 되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티 놈 국토안보부 장관은 10일(현지시간) 취재진에게 LA 시위와 관련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폭력 시위를 부추겼다”며 “나는 그 점을 규탄한다”고 비난했다. 놈 장관은 “그(셰인바움 대통령)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폭력적인 시위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며 “사람들은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폭력은 미국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폭력 시위의 배후에 셰인바움 대통령이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X)에 글을 올려 “미국 장관의 발언은 절대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즉각 반박했다. 그러면서 전날 시위와 관련한 자신의 발언 영상을 올려 “이 영상에서 제가 폭력 시위를 명확히 규탄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항변했다. 전날 셰인바움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민자 관련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인간 존엄성과 법치주의를 존중하는 틀 내에서 진행돼야 한다”며 미 당국의 강경 진압에 우려를 보이면서도 “그렇다고 폭력적 행위를 시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장관이 타국 정상을 직접 겨냥해 비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이 이민자 단속 강화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상황에서 이민자 단속 정당화를 노리는 동시에 남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에 책임을 전가하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시위에서 멕시코 국기가 이민자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자주 등장하고 있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 주요 인사의 화를 돋우는 측면도 있다. 과거에도 LA에서 이민 관련 시위가 있을 때마다 멕시코 국기가 자주 등장했다. LA 카운티 인구 약 975만명 중 멕시코 출신 또는 혈통인 주민은 340만명 이상으로 비중이 높은 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멕시코계가 LA 이민자 사회에서 상징성을 갖는 점을 고려할 때 멕시코 대통령에 대한 책임 전가를 통해 군 투입 등 시위 강경 진압에 대한 정당화를 노렸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시위는 다른 대도시로 확산하는 추세다. 이미 시카고, 뉴욕, 오스틴 등 대도시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했고 11일에는 시애틀, 세인트루이스, 인디애나폴리스 등에서 추가 시위가 계획됐다고 NYT는 전했다. 캐런 배스 LA 시장은 이날 시내 일부 지역에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오후 8시부터 오전 6시까지 LA 중심가 일부 지역은 통행이 금지된다.
시위가 미 전역으로 확대되며 대응을 위해 무력을 추가 투입하는 사례가 늘어날 가능성도 커졌다. 텍사스주는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주방위군 자체 투입을 결정하기도 했다.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이날 엑스에 “주방위군이 평화와 질서 유지를 위해 주 전역에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부의 불법 이민자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LA에서 “위험이 제거될 때까지” 주 방위군이 주둔할 것이라고 말했다. LA 시위 참가자들이 돈을 받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일이기도 한 14일 워싱턴에서 미 육군 창설 250주년을 기념해 이뤄지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 과정에서 시위자가 있으면 “엄중한 무력”(heavy force)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이날 전국에 방송된 연설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우리 눈앞에서 공격받고 있고, 우리가 두려워했던 순간이 도래했다”면서 “캘리포니아가 처음일 수 있지만, 분명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음은 다른 주들이고, 다음은 민주주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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