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립여당인 SPD는 ‘모병제가 원칙’ 입장 확고
독일군의 병력 부족 문제 해결이 독일 정치권의 시급한 현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보수 정당에선 징병제 재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보수 정당과 연립정부를 꾸린 진보 정당은 ‘모병제 유지가 원칙’이라는 입장이 확고해 자칫 연정이 위기에 처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10일(현지시간) dpa 통신에 따르면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날 베를린을 방문한 딕 스호프 네덜란드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독일군에 최소 10만명 넘는 숫자의 병력이 부족하다는 우리 국방부 평가에 동의한다”며 “필요한 경우 지금의 모병제를 재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장병 모집 시스템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새로운 목표에 부합하는 수준의 병력을 충원하는 데 과연 적합한지 신중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모병제로 불충분하다면 신속하게 추가 조치(additional steps)을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서 ‘추가 조치’는 지난 2011년 폐지한 징병제의 재도입을 지칭한 것으로 풀이된다.
메르츠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총 630석의 독일 하원에서 208석을 차지한 원내 1당이다. 다만 단독으로는 과반(316석 이상)에 이르지 못해 진보 성향의 사회민주당(SPD)과 연정을 구성했다. 원내 3당인 SPD는 120석을 갖고 있어 두 정당의 의석을 더하면 328석에 해당한다.
문제는 CDU·CSU 연합이 SPD와 연정 구성 협상을 할 당시 현행 모병제 유지에 합의했다는 점이다. 두 정당이 체결한 연정 협정문에는 “일차적으로(initially) 자발적 참여에 기반해 누구나 복무하고 싶어하는 새로운 군대를 건설할 것”이란 구절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메르츠는 여기서 ‘일차적으로’라는 문구에 주목하며 “자발적 참여만으로 한계가 있다면 추가 조치, 곧 징병제 재도입도 검토할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징병제 부활이 SPD와의 연정 협정 위반은 아니라는 것이다.
SPD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마티아스 미어슈 SPD 하원 원내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연정 협정문은 독일에서 군 복무는 자발적 참여에 기반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CDU·CSU 연합과 징병제 부활을 놓고 협상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축했다.
연정의 일원이기는 하나 SPD 내부에는 이민, 기후변화 등 분야에서 CDU·CSU 연합이 추진하는 강경 보수 정책에 비판적 시선을 가진 이가 많다. 실제로 메르츠가 하원에서 총리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SPD 의원 상당수가 이탈하는 바람에 1차 투표 당시 찬성표가 과반에 못 미쳐 부결되는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2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과반 찬성을 얻은 메르츠가 총리에 취임하긴 했으나 보수·진보 양당의 연정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드러났다. 일각에선 메르츠 정부가 징병제 재도입을 추진하는 경우 연정이 깨질 가능성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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