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강동은 국공립 비율 45%↑, 강남·용산은 35%↓

“이왕 이사할 거면 어린이집 가까운 동네로 가자고 했어요”
서울 노원구에 거주 중인 최은경(38·여)씨는 올해 초 새 아파트로 이사했다. 직장과 가까운 곳을 찾던 중 단지 인근에 국공립 어린이집 등 괜찮은 어린이집이 몇 군데 있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다.
최씨는 “남편 직장까지 지하철로 30분이면 되고, 국공립 어린이집도 인근에 있고 초등학교도 가까워 ‘여기면 아이 키우기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단지 내 어린이집은 경쟁이 치열할 수 있으니, 주변 동네까지 통학 가능한 곳을 미리 검색했다. 요즘 엄마들 다 그렇게 하더라”라고 말했다.
요즘 부모들은 집을 고를 때 집값만큼이나 어린이집 대기 여부도 함께 본다. 어린이집 유무, 국공립 비율, 입소 가능성은 이제 ‘아이 키우기 좋은 집’을 판단하는 기준이 됐다. 단지 내 어린이집이 있느냐, 근처에 믿고 맡길 곳이 있느냐가 집값과 별개로 중요해진다. 보육 인프라가 주거 이동을 유도하고, 지역 수요를 형성하는 실질적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17일 서울시 보육보털에 따르면 서울시 국공립 어린이집 한 곳당 평균대기 인원은 36.7명이다. 서울시 전체 어린이집 중 국공립 비율은 약 40%지만, 자치구별 편차는 크다. 도봉·강동·동작·성북구 등은 45% 이상으로 비교적 높은 반면, 강남·서초·용산·송파구 등은 35% 이하로 낮은 편이다.
물론 서울 자치구 내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높다고 해서 즉각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입지, 교통, 개발 호재 등 전통적인 집값 변수들이 여전히 집값의 주요 결정 요인이다. 실제로 강남권은 공공보육 인프라가 부족해도 수요가 많고 집값은 가장 높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민간에 비해 보육료 부담이 적고 교사 인력 기준이 더 엄격해 신뢰도가 높다는 인식이 강하다. 반면 민간 어린이집은 상대적으로 입소는 수월하지만 비용이 더 들고 운영 편차가 크다는 점에서 부모들의 고민이 따른다.
지자체들도 이러한 수요를 반영해 공공 어린이집 공급을 확대하며 지역을 ‘육아 친화 도시’로 브랜드화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성북구는 ‘성북형 보육 모델’을 표방하며 국공립 전환과 통합 보육 서비스를 추진 중이고, 경기도 부천시는 공동주택 내 어린이집 의무설치 조례를 통해 매년 10곳 이상을 확충하고 있다.

서울 중랑구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김연아(37·여) 씨는 최근 둘째의 어린이집 입소를 준비하며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어뒀다. 김씨는 “입소 시점이 원하는 일정과 맞지 않았다”라며 “우선 민간어린이집에 들어갔고 몇 번 국공립으로 전환할까 하다가 이미 적응한 어린이집에 보내고 있다. 비용은 더 들지만, 아이도 잘 다니고 저도 마음 편하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신축 단지라도 어린이집이 없거나 대기가 길면 부모들은 고민이 많다”며 “최근엔 단지 내 국공립이 있는지, 근처에 믿을 만한 어린이집이 몇 군데 있는지를 먼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강동구에서 12년째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 중인 최은주(가명) 원장은 “국공립이 선호되는 건 비용 문제도 있지만, 안정적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신뢰 때문”이라며 “하지만 대기 경쟁이 워낙 치열해 부모들이 결국 가까운 민간 어린이집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을 기준으로 이사지를 고민하는 부모들이 늘었지만 정작 보육시설 유치를 두고 지역 내 갈등이 생기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국공립 어린이집 유치를 놓고 주민들 간 의견이 엇갈렸다. 한 주민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선 꼭 필요한 시설이지만, 일부는 시끄럽고 복잡해진다거나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고 전했다.
어린이집이 특정 동에만 들어서는 데 대해 “우리 동만 피해를 본다”는 반발도 나왔다. 또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외부 아이들이 들어오면 단지 분위기가 흐려진다”는 등 배타적인 시선도 감지됐다.
NH농협은행 윤수민 부동산전문위원은 “맞벌이 가구가 늘면서 영유아 보육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지만, 지역별로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게다가 민간과 국공립 등 어린이집 유형에 대한 선호도도 지역마다 달라,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윤 위원은 “최근 30~40대 실수요자들이 주택 시장의 핵심 수요층으로 떠오르면서, 보육과 교육 인프라가 주거지 선택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대단지 신축 아파트 선호 현상도 결국은 잘 갖춰진 보육 환경에 대한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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