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연극 연출 등 장르 넘나들어
오페라 ‘시빌’ 내일부터 한국 무대
영상·연주 엮은 공연도 선보여
“韓에 소개하고 싶은 작품 많아”
“작업을 시작할 때 특정한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겠다는 생각보다는 질문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에게 창작 프로젝트란 관객에게 답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는 과정입니다.”
목탄화를 그리고 지우는 과정을 반복 촬영하며 기억과 망각을 시각화하는 작업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윌리엄 켄트리지(70). ‘작가 중 작가’로서 현대미술 거장으로 평가받으며 연극과 오페라 연출도 하고 조각도 하는 전방위 예술가다. 그가 GS아트센터 초대 예술가로 시·음악·연극·무용·영상이 어우러진 ‘시빌’(Sibyl·5월9∼10일)과 독재자들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 삶을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쇼스타코비치 10: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5월30일)을 국내 무대에 선보인다.

‘시빌’은 백인 우대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시행되던 시기 인권변호사 아들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성장한 작가의 성장배경이 녹아든 작품이다. 요하네스버그 주변 광산에서 일하는 흑인 노동자와 그 속에서 노래하는 가수들 이야기인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와 고대 그리스 예언자 시빌 이야기를 담은 ‘시빌을 기다리며’가 합쳐진 무대다. 7일 서울 역삼동 GS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켄트리지는 “시빌은 나폴리 근처에서 살았다고 알려진 고대 역사 속 예언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사람들이 ‘내가 얼마나 살까요’ 등의 질문을 나뭇잎에 적어 시빌이 살던 동굴 앞에 놓고 가면 다시 나뭇잎에 답을 적어주곤 했는데 문제는 바람이 불어서 잎들이 흩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답이 자기 질문에 답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고 삶의 불확실성을 다룬 작품 세계를 설명했다.
‘그 순간은 흩어져 버렸다’를 켄트리지와 함께 만든 보컬리스트 은란라 말랑구가 “요하네스버그의 광산 산업을 다루는데 ‘도대체 누구의 땅에서 누가 불법 광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설명했다.
“금을 채굴하는 과정, 폐쇄된 갱도에서의 작업은 굉장히 외로운 과정입니다. 기계도 없고 관리자도 없으며, 아주 위험하고 어두운 환경입니다. 몇몇 사람은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남아프리카는 식민 지배와 노예 제도, 다양한 만행으로 금과 광물 자원을 강제로 빼앗겼습니다. 진짜 불법 광부는 여전히 이 땅에서 자원을 훔쳐가는 대기업들입니다.”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었더라면’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배경으로 카메라의 시선을 빌려 소비에트 시대 예술가의 삶을 조명한 영상이 어우러진다. 사람이 들어가 연기하는 실물 크기 인형과 판지로 만든 미니어처 세트, 콜라주 작업 등 켄트리지 특유의 예술 양식을 보여준다. 켄트리지는 “영상에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 스탈린, 트로츠키, 작곡가 쇼스타코비치, 위대한 시인 마야콥스키가 나온다”며 “제가 고민한 질문은 음악과 그 음악이 탄생한 역사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다. 예술가와 소비에트 연방의 정치 체제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고 했다.
주머니에 한국 관객에게 더 소개하고 싶은 작품이 많다고 한 그는 “한국이 복잡한 상황인 것을 알고 있다. 미국도 혼란스럽고 남아공은 언제나 어려운 상황”이라며 “그래도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감각은 공통적이다. 그 감각이 제 작품에서 사람들이 연결될 수 있는 지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맥락이 다르더라도, 우리는 그 맥락을 자신의 상황에 맞춰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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