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연, 전문의 채용 4년째 불발
외부 의료기관과 처우 격차 심화
정원보다 2명 부족… “외부서 위촉”
2024년 조사 처리 기간 평균 700일
2023년엔 954일 역대 최장 기록
“의사 영입 위해선 연봉 등 개선을” 하>
정부의 산업재해 정책이 총체적으로 구멍난 가운데 산재 역학조사를 담당하는 핵심 의료 인력도 심각하게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역학조사 공공기관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채용 공고를 내도 채용자는 번번이 ‘0명’이었다.
6일 더불어민주당 박홍배 의원실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연구원의 역학조사 전문인력 중 전문의는 현재 예방의학과 1명이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전무하다. 지난해 말 직업환경과 전문의가 2명 퇴사해 올해 1월 전문의 3명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으나 서류 지원자조차 없었다.

전문의 채용에 지원자가 없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22년과 지난해에 각각 1명, 2명, 2명씩 전문의 채용공고를 냈다. 4년간 4번의 채용공고로 채용된 인원은 0명이다. 현재 연구원 내 역학조사를 수행하는 인력은 예방의학과 전문의 1명에 산업위생 전문인력 등을 합쳐도 정원(11명)보다 2명 미달한 9명뿐이다.
연구원은 올해 채용에서는 특별히 근로 조건에 ‘재택근무’를 넣었다. 한정된 예산으로 처우를 개선하기 힘든 탓에 장소를 유연하게 쓸 수 있게 근로 환경을 나름 개선한 것이다. 업무 방식에도 변화를 줬다. 역학조사 과정에서 근로자 면담 시 가능한 경우엔 비대면 방식을 활용케 했다. 이 같은 특단의 조치에도 연구원은 전문의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전문의 부재로 매해 1명씩 채용했던 전공의 채용도 올해는 불발됐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관계자는 “전문의 부족으로 외부 전문의 6명을 위촉해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업무상 질병 판단 시 업무와 질병의 인과 관계 여부를 조사하는 역학조사는 업무상 질병 처리 건 중 약 0.9%가 해당한다. 업무상 질병 산재는 지난해 기준 산재 신청의 약 19%를 차지한다. 나머지 81%는 업무상 사고 산재다. 대체로 대규모 역학조사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서, 나머지 폐 질환 등 일반 역학조사는 근로복지공단 내 직업환경연구원이 맡는다.

직업환경연구원도 사정은 비슷하다. 원장을 제외하고 전문의는 내과 1명, 직업환경의학과 1명으로 총 2명이다. 이들을 포함한 역학조사 수행 인력은 16명으로 정원(21명)에 크게 미달한다.
직업환경연구원이 역학조사를 접수받아 회신하기까지 걸린 기간은 지난해 기준 588.8일로 역대 최대였다. 2020년 275.2일에서 매해 늘어 2023년에는 588.1일이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해 맡은 역학조사를 결론 내기까지 평균 걸린 기간은 699.8일이다. 2020년 441.0일에서 매해 늘어 2023년 954.6일로 최대치를 찍고 지난해 소폭 줄었다. 다만 의뢰 건수가 2023년 130건에서 지난해 90건으로, 회신 건수도 66건에서 47건으로 줄었다.

길어지는 역학조사에 산재 신청자들은 지쳐간다. 지난해 7월 폐암 1기 진단을 받은 김모(57)씨는 반년 넘게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조리실무사인 김씨는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경기 구리시 동인초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건강검진으로 폐암을 발견했다. 학교 급식실에서 일한 지 13년차 되는 해였다. 그는 “폐암 진단을 받은 주변 동료들 이야기로는 최소 6개월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며 “남편도 3년 전에 암 수술을 받아 생활이 여의치 않은데 빨리 승인이 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역학조사 기간을 줄이려면 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연구원과 의료계 관계자들은 처우 문제가 가장 크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기준 산업안전보건연구원 내 전문의 연봉은 9000만원∼1억원가량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급종합병원부터 의원급(동네 병의원)까지 요양기관에 근무 중인 의사인력의 평균 연봉은 3억100만원이다. 진료 과목별로 보면 안과가 6억1500만원으로 가장 높고, 정형외과, 이비인후과 순이었는데 직업환경의학과는 전문의 수가 1000명 미만 소규모 과로 분류돼 별도 통계로 잡히진 않았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하인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울산에 있다는 점도 전문의 채용이 난항을 빚는 이유로 꼽힌다. 고용부 관계자는 “직업환경연구원은 인천에 있지만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울산에 소재해 채용이 좀 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울산에 있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과 별도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만 서울로 보내려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으나 지방 분권을 강조하는 국토교통부와 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부연했다.
이 외에도 고용부는 다방면으로 인력 충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내달 기획재정부에 두 기관의 인력 증원을 요청할 예정”이라며 “지난해 국회를 통해서도 본예산 심의 당시 인력 증원을 추진했으나 올해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고 했다. 얼마 전 추가경정예산에서도 마찬가지로 인력 증원 예산을 확보하려 했으나 이 역시 최종 불발됐다.
연구원의 전문의 처우와 외부 의료기관 간 처우 격차는 날로 벌어지고 있다. 일선 건강검진 기관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수요가 늘어나면서다. 2013년 산업안전보건법의 개정으로 사업장의 특수건강진단 대상자가 전 업종 야간근로자로 확대됐고, 특수건강진단을 1회 무료로 지원하는 고용부 ‘건강관리카드’ 제도에서 대상 직군도 확대되는 추세다. 특수건강진단은 직업환경의학과 의료진만 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관계자는 “얼마 전에만 해도 외부 의료기관에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연봉이 3억원 정도로 알려졌는데 요즘에는 4억원까지 이야기가 나온다고 한다”며 “전문의 공급은 한정돼 있는데 수요는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외부 의료기관에서 의사 연봉이 오르는 동안 연구원 내 전문의를 포함한 인력의 연봉은 제자리걸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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