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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 "발레는 삶의 예술, 살아 있지 않으면 움직이는 박물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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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4-29 14:29:33 수정 : 2025-04-29 15: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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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무용수들과 함께 일하는 모든 순간마다 뭔가를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춤은 감정의 살아있는 형태입니다. ‘카멜리아 레이디’는 거의 5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이 작품에 제 새로운 경험을 계속 투자해서 다시 살아 숨 쉬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립발레단 무대에서 ‘카멜리아 레이디’를 올리는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현존 최고의 안무가’라는 영예를 누리고 있는 존 노이마이어가 자신의 대표작 ‘카멜리아 레이디’를 선보이기 위해 내한했다. 2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해 86세인 무용계 거장은 “리허설마다 무용수와 교감하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배우고 발견한다”며 자신의 작품 세계는 여전히 확장 중이라고 강조했다. “작품을 단순히 ‘재공연’하거나 ‘재현’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반드시 작품을 ‘다시 창조’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작품에 가치가 생기고, 생명이 깃듭니다. 발레는 삶의 예술입니다. 살아 있지 않으면, 그것은 일종의 움직이는 박물관일 뿐입니다.”

 

지난해 ‘인어공주’에 이어 국립발레단이 또 한차례 선보이는 노이마이어 대표작 ‘카멜리아 레이디’는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춘희’를 바탕으로 1978년 초연된 작품이다. 주인공 ‘마르그리트’와 ‘아르망’의 가슴 아픈 사랑과 운명을 깊이 있게 그려낸 드라마 발레 명작.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현역 시절 이 작품으로 동양인 최초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했다.

 

개막을 앞둔 ‘카멜리아 레이디’ 리허설 장면        국립발레단 제공

노이마이어는 “19세기 고전 발레 형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전막 발레 형식을 찾고 있었다. 그러한 탐구 과정에서 태어난 작품으로 현대 영화처럼 중첩된 현실과 다양한 시점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에서는 현대 영화 기법과 비슷하게 중첩된 현실, 비전, 다양한 시점이 존재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 매료되었고, 이 이야기를 ‘말 없는 예술’로 번역하려는 도전에 이끌렸습니다. 소설은 연대순으로 전개되지 않습니다. 여러 인물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우리는 주인공 아르망의 시각을 통해 이야기의 일부를 배우고, 아르망의 아버지를 통해 또 다른 드라마의 층위를 알게 되며, 마르그리트가 남긴 일기를 통해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을 알게 됩니다. 저는 발레에서도 이런 다양한 시점을 구현하려 했습니다. 이야기들이 장면과 장면 사이에 끊김이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 방식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영화처럼 장면이 페이드 인·페이드 아웃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결국 아르망과 마르그리트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붉은 실’을 따라 이야기가 완성되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 때문에 강 단장은 “처음 단장이 되었을 때부터 (카멜리아 레이디 공연이)숙원사업이었다”며 “‘하늘의 별따기’보다 (이 작품 공연이)어려운 일인데 국립발레단이 아시아 초연으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건 대한민국 발레 수준이 어디까지 올라왔는지 보여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노이마이어 역시 “지난해 ‘인어공주’를 작업하면서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이 기술을 감정 표현으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경험했다. 이 덕분에 ‘카멜리아 레이디’에 필요한 깊은 드라마를 구현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서울에 와서 이 발레를 최고의 버전으로 만드는 것은 옳은 결정이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가 국립발레단의 ‘카멜리아 레이디’ 리허설을 지켜보고 있다. 국립발레단 제공

“저에게는 국립발레단 무용수들의 깊이를 탐구하고 그들 안에서 특별한 면모를 발견하여 이들을 하나로 엮어 지금 우리의 인간성과 연결되는 설득력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카멜리아 레이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은 질문에 노이마이어는 ‘사랑과 공감’을 꼽았다. “예술가는 어떤 메시지를 담기 위해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쓰거나 안무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가는 단지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창작합니다. 그들 안에는 넘쳐나는 감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제 작품, 모든 작품이-사람들이 추상적이라고 부를지라도-사실은 추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몸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당신도 저도 몸을 가지고 있고, 무대 위에 서 있는 무용수도 그렇습니다. 그러니 무용수는 결코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일 뿐입니다. 만약 제 작품에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세계 속 사랑의 중요성’입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봅니다. 자신의 사랑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르망을 사랑했던 마르그리트 고티에의 희생, 처음에는 마르그리트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압도당했던 아르망, 그리고 결국 병든 사람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사람을 돌보고 사랑하는 것. 저는 관객이 이런 감정들을 느끼길 바랍니다.”

 

이미 47년 동안 공연된 작품인데 노이마이어는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새로운 안무를 넣었다고 한다. 노이마이어는 “리허설 하나하나가 발견의 연속이었다. 춤은 감정의 살아 있는 형태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특별한 대단한 발견이라기보다 예술에 생명을 불어넣는 끊임없고 소중한 과정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에서 5월 7일부터 11일까지.


박성준 선임기자 alex@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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