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머리카락 다 빼도 상관없어요. 우리 딸한테 다 주고 싶어요.”
지난 13일 10대 딸과 함께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를 찾은 40대 어머니 A씨는 머리를 내보이며 말했다. 딸에게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능한 한 많이 이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A씨는 돌이 갓 지난 딸이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딸의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딸은 결국 암을 이겨냈지만 빠진 모발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어머니는 올해 대학생이 되는 딸에게 머리카락을 선물해주기로 했다. 원래 모발은 타인 간 이식이 불가능하다. 면역 거부반응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녀의 경우엔 달랐다. 딸이 백혈병 치료 과정에서 어머니의 골수를 이식받아서다.
황성주 명지병원 모발이식센터장은 이날 모녀의 모발 4500모 이식에 성공했다. 타인의 모발을 이식한 국내 두 번째 사례다. 20년 전 황 센터장이 국내 최초로 백혈병을 앓은 동생에게 언니의 모발을 이식한 데 이은 성과다. 이 사례 또한 언니가 동생에게 골수이식한 상태라 시술이 가능했다.
황 센터장은 “골수이식으로 동일한 혈액과 면역세포가 형성돼 있으니, 거부반응이 없을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며 “모발 몇 가닥부터 실험했더니 실제 면역거부가 없었다. 이후 이식은 실험대로 성공적이었다”고 설명했다.

모발 이식을 연구해 온 황 센터장은 자신의 몸에도 직접 실험을 하고 있다. 현재 그의 손, 발, 등, 다리 곳곳엔 이식된 모발이 자라나고 있다. 몸에 심은 모발은 두피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렸고, 다리에 심은 모낭을 다시 두피에 심었더니 원래 속도로 길게 자라났다.
두피의 경우 몸보다 피부 두께가 두껍고 혈액순환도 빠르기 때문에 모발이 빠른 속도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탈모 환자의 경우 대개 머리 뒷부분을 뽑아 앞쪽 탈모 부분에 이식하는데, 뒤쪽 머리마저 부족할 경우 가슴털이나 다리털 등을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황 센터장은 설명했다.

황 센터장의 향후 계획은 일반 탈모 환자뿐 아니라 암 또는 골수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모발이식을 확대해나가는 것이다. 암 환자의 경우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져 모자나 가발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불편함을 해소해주고 싶단 욕심에서다.
황 센터장은 “타인모발이식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서 활성화가 되고 있지 않다”며 “골수이식을 한 많은 암환자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딸에게 모발을 이식한 어머니 A씨는 “그동안 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불가능하단 얘기만 들었는데 (이식하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 딸 꿈이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평범하게 건강하게 사는 것. 저도 딸의 꿈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A씨는 이번 시술 후에도 추가 시술을 통해 총 1만3000모의 자신의 모발을 딸에게 선물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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