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3대 미술가의 이름을 대라 하면 누구나 쉽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를 떠올린다. 그러나 세 번째 이름을 떠올리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바로크 미술의 개척자이자 빛과 그림자의 극단적 대조를 통해 깊이 있는 화풍을 창시한 카라바조는 세 번째로 호명될 자격을 충분히 갖춘 인물이다. 그러나 예술계의 바깥에서 카라바조라는 이름은 의외로 낯설다. 그의 정확한 이름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이지만 다른 거장의 이름에 가려진 탓인지 그저 자신의 출생 지역을 따서 ‘카라바조’로 불리어왔다. 그는 어쩌다가 이렇게 철저하게 잊혀졌을까?
미켈레 플라치도 감독의 ‘카라바조의 그림자’는 완벽히 잊혀졌다가 20세기 들어 명성을 되찾은 문제적 인물을 스크린으로 불러낸다. 초창기 카라바조는 로마 가톨릭의 지원 속에 승승장구한다. 종교개혁과 신·구교 갈등으로 촉발된 교회의 분열 속에서 그의 천재적인 재능이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시켜주는 데 기여할 것이라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천재적인 화가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관심은 현실에 있었고 그에게 현실이란 버림받은 자들의 삶이었다. 그는 사회의 맨 아래 계급 사람들과 어울렸고 함께 진흙탕 속에 뒹굴었다. 그는 삶의 밑바닥 사람들에게서 예수를 보고 성모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의 현실적인 육체를 통해 기독교 정신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의 그림은 종종 불경스럽고 신성모독적인 것으로 비난을 받았다. 그의 거듭된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를 옹호하던 가톨릭 교회는 결국 그가 벌인 살인 사건을 계기로 그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이후 카라바조는 로마의 영향력을 벗어난 지역을 떠돌며 평생 로마 가톨릭의 사면을 기대했지만 끝내 사면 소식을 듣지 못하고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이 영화는 카라바조와 당대 로마 교회의 대립에 주목한다. ‘그림자’는 교황의 명을 받고 카라바조에 대해 조사하는 허구의 인물이다. 그림자를 통해 감독은 당대 사회와 교회, 그리고 카라바조의 관계를 탐구한다. 자신의 예술을 고집한 카라바조는 평생 교회와 불편하고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매춘부를 성모의 모델로 삼으면서 교회의 큰 분노를 산다. 현대 영화의 걸작 ‘시민 케인’에서 케인을 취재하기 위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신문기자 톰슨처럼, 교황의 메신저인 ‘그림자’는 카라바조와 관계된 이들을 만나 그에 대해 조사한다. 영화가 제시하는 결말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대답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카라바조가 창안한 명암의 극명한 대비, 테네브리즘 기법으로 촬영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삶을 엿보는 재미 못지않게 그의 그림이 대형 스크린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다, 이 겨울 OTT 안방극장을 벗어나 대형 스크린에서 카라바조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은 분명 색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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