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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더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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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1-23 23:40:05 수정 : 2025-01-23 23: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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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이 삶의 내용의 재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나타난 양식이 추상 미술이다. 그 후 극단적인 추상의 단계에 이른 것이 미니멀리즘과 개념 미술이었다. 미니멀리즘은 내용과 형식의 최소화를 내세우며 과도하게 단순화한 형식으로 내달렸다. 개념 미술은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가의 생각이나 개념이지, 어떤 대상, 어떤 형태를 나타내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이들은 작품의 순수 형식, 미술의 고급한 전문성 확보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예술이 삶의 내용에서 너무 먼 공허한 형식이 됐고, 미술을 이해하려는 대중들을 소외시켰다는 비판에 부딪혔다. 따라서 예술가들이 작품에 이미지를 다시 담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1970년대의 ‘뉴 이미지’운동이다.

‘뉴 이미지’는 미니멀리즘과 개념 미술의 공허한 형식과 관념적 성향을 겨냥해서 때로는 거칠고 표현적인 때로는 해학적인 이미지를 제시했다. 뉴 이미지 화가인 필립 거스턴은 40대 시절에는 추상 표현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로 활동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50대 시절인 1970년대 들어 이 화려한 길을 뒤로하고, 장식적인 색채를 덧붙인 저급한 만화 이미지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머리와 술병’은 그 당시 작품이다.

필립 거스턴 ‘머리와 술병’(1975)

왜 다시 구상 미술이었을까. 그는 액션 페인팅으로도 불리는 추상 표현주의에 불만을 느꼈고, 일상생활의 대상과 활동을 소재로 한 그림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질이 나쁜 이미지로 묘사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크게 부릅뜬 눈의 거대한 머리는 1940년대에 유행한 만화에서 차용했는데, 머리만 놓인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다소 끔찍해 보인다. 머리만으로 예술을 이룰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져 개념 미술의 허구성을 비판했고, 그 아래에 붓과 술병을 놓아 예술가에게는 큰 눈과 술과 붓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머리만으로 안 되는 일이 어디 미술 작품뿐일까. 우리 삶도 마찬가지다. 곧 긴 설날 연휴가 시작된다. 머리는 식히고 따뜻한 가슴으로 서로를 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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