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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으로 꺼진 도로 안전… 불 꺼진 ‘지하정보통합협의체’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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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9-30 06:00:00 수정 : 2024-09-30 16: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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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발밑 공포’ 확산

노후 하수관 비율 대구·서울·광주順
싱크홀 발생 경기 최다… 강원·서울順
집중호우·지반공사·노후 열수송관 등
복합적 원인 가능성… 분석·대책 시급

2016년에 지하안전관리특별법 제정
협의체 꾸렸지만 5년간 회의 5번뿐
지하공간 안전 선제적 대응 ‘공염불’
TF 또 출범… 10년째 대책만 되풀이

전국에서 지난 10년간 발생한 땅 꺼짐 현상(싱크홀) 2085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상·하수관 손상과 각종 공사 작업 미흡 등으로 파악됐다. 그중 하수관 손상(42.01%) 이 가장 많은 원인으로 지목됐다.

 

간혹 자연에서 대규모로 발생해 화제가 되는 해외 사례와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의 설명이다.

 

지하공간 개발 수요가 점차 높아지는 상황 속 싱크홀은 그간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했을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클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테면 땅 파기 공사 과정에서 상·하수관을 잘못 건드려 파손되는 식이다. 이런 경우 단순히 관로 손상 또는 노후화만을 싱크홀의 원인이라고 단정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위기로 인한 집중호우가 지반을 약화시켜 관로 손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싱크홀의 복합적인 발생 원인과 지하공간의 안전성을 정확히 파악해 사고를 예방하는 시스템을 서둘러 구축해야 하는 이유다.

9월 21일 오전 부산 사상구 새벽로 인근 도로에서 가로 10m·세로 5m, 깊이 8m 규모의 땅꺼짐이 발생해 차량 두 대가 빠졌다.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하루에 13건씩 발생

 

29일 세계일보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매설한 지 20년이 지난 노후 하수관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대구(74%)였다. 이어 서울(66.3%), 광주(64.9%), 대전(62.1%), 인천(58.8%), 경기(47.4%) 등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싱크홀이 노후 하수관 매설 비율이 높을수록 꼭 그에 비례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 10년(2014∼2023)간 가장 많은 싱크홀이 발생한 지역은 경기(429건)였다. 강원(270건), 서울(216건), 광주(182건), 충북(171건), 부산(157건)이 그다음이었다. 노후 하수관 비율이 높은 대구는 33건, 인천은 66건 수준이었다. 이는 하수관 손상만으로는 싱크홀이 발생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원의 경우 2022년 기준 상수관 누수율이 전국 평균치(9.9%)를 크게 웃도는 20.7%로 나타나 싱크홀 발생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싱크홀을 일으키는 다른 원인으로는 공사 과정에서 여유 공간으로 땅을 파뒀다가 도로 흙으로 덮는 다짐(되메우기)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경우(16.79%)도 있다. 상수관 손상(12.61%)과 굴착 공사 부실(8.68%) 등도 영향을 미쳤다.

같은 기간 하루에 3건 이상 싱크홀이 발생한 날은 173일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가장 많이 발생한 때는 2020년 8월10일이었다. 이날 하루에만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과 강원, 충북, 전북, 경북 지역에서 13건이 발생했다. 불과 하루 뒤에는 경기, 인천, 광주, 충남·북에서 싱크홀 12건이 추가로 생겼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여러 원인으로 싱크홀이 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노후 열수송관 손상도 향후 싱크홀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예의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4년부터 올해 7월까지 발생한 열수송관 누수 사고는 총 81건이었는데, 이 중 6건이 올해 발생했다. 대부분 노후로 인한 부식 및 접합부 파손에 따른 것이었다. 사고가 난 열수송관 대부분 1990년대에 매설됐는데, 2010년대에 만든 관로가 손상되는 경우도 있었다. 지하철 5호선 공사 과정에서 중장비가 배관을 건드리거나, 지하수로 인해 관로가 파손된 경우였다. 2018년에 지은 관로가 도장 분량으로 부식돼 누수로 이어진 일도 있었다.

◆10년째 ‘대책 수립’ 반복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지난 10년간 전국에 발생한 싱크홀이 2085개에 달했다는 세계일보의 첫 보도(9월3일자 11면)를 지난 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거론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면밀한 예방책을 챙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부했다. 이에 국토부는 행정안전부와 환경부 등 관계 부처와 일부 광역단체(서울·부산·경기·광주), 학계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이를 통해 현행 지하안전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싱크홀 예방을 위한 도심지 굴착 공사장 특별점검에도 나섰다. 아울러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스마트 모니터링 체계도 구축하겠다고 했다. 국토부는 “이제 연구를 하려는 입장이니 상용화되기까지는 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정부는 이미 10년 전인 2014년에도 서울 송파구 일대 싱크홀 발생을 계기로 범정부 민관합동 TF를 꾸리고 싱크홀 예방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국토부는 당시 “증가하는 지하개발과 지하시설의 노후화를 감안할 때 지하 공간의 안전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 일환으로 2016년 제정된 것이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이다.

2014년 8월 14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석촌지하차도 도로 함몰 사고 현장에 현장관계자들과 취재진이 지하도 중심부 도로 밑에 생긴 동공을 둘러보기 위해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정부는 지하안전법에 따라 국토부 1차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지하정보통합협의체’를 구성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업부, 환경부를 비롯해 각 부처 산하 공기업 등이 참석 대상이다. 이 회의는 2020년 12월 첫 회의를 시작으로 올해 4월까지 매년 한 차례씩 총 5번 개최됐다. 2021년엔 5월, 이듬해엔 9월, 지난해엔 12월 등 개최 시점이 들쭉날쭉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하 매설물의 위치를 측량하고 탐사하려면 비용이 들다 보니 유관기관 간 협조가 덜 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에는 협조를 촉구하기 위해 회의를 11월에 추가로 열 계획”이라며 “(협조가) 안 되면 제재를 가하는 충격요법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염태영 의원은 “지난 10년간의 통계치를 분석한 결과 많은 국민이 모여 사는 인구 밀집지역과 도심지를 중심으로 싱크홀 사고 위험이 커지고 있는 경향이 확인되고 있다”며 “사고 후에야 뒤늦게 원인을 파악하고 조치하는 이 상황을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민영·김승환·김현우·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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