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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정당 ‘반이민’ 대중화 전략… 젊은 유권자 끌어들여 [심층기획-2024 슈퍼선거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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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6-10 06:00:00 수정 : 2024-06-10 08: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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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선거 (상)

벨기에까지 번진 극우정당 ‘돌풍’
VB, 여론조사 1위… 1당 예고
유럽 각국 총선서 우파 선전

고착화된 저성장 등 명확한 메시지 내
정치 무관심층 호응 통해 주류화 성공
기존 극단적인 이미지 탈피 등도 나서
전반적 정치 이슈에 온건한 주장 펼쳐
전문가 “극단주의로 회귀 가능성 작아”

2024 벨기에 총선을 이틀 앞둔 7일(현지시간) 오스트플란데런주 최대 도시 겐트는 여느 유럽 국가들이 그렇듯 비교적 차분했다. 선거가 국민의 의무로 불참 시 벌금이 부과됨에도 거리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유세전 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만, 거리 곳곳에서 발견되는 선거벽보에서 묘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정 정당 벽보가 빨간 페인트로 커다란 ‘X’ 표시를 그려놓는 등 유난히 많이 훼손돼 있었다. 벨기에 플란데런 지역 극우정당인 ‘플람스의 이익(Vlaams Belang·VB)이 해당 정당이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이뤄진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25% 내외 지지율로 1위에 올라 이변이 없는 한 일당 등극이 예상됐다. 어느새 국가의 주류가 된 극우정당에 기존 좌파계열 지지자들이 벽보에 적의를 드러낸 것이다. 최근 벨기에 서부 겐트 지역 한 극좌 정치단체가 VB의 선거포스터 위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 파시즘과 싸운 벨기에 저항군의 구호인 ‘직접 나서자’가 쓰인 포스터를 덧붙여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훼손된 선거벽보 7일(현지시간) 벨기에 오스트플란데런주 겐트의 거리에 붙은 극우정당 ‘플람스의 이익’의 선거벽보가 붉은 페인트로 ×표가 칠해진 채 훼손돼 있다.

우파정당에 대한 경계심의 표시는 최근 유럽 선거에서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그만큼 유럽 내에서 극우정당의 약진이 심상치 않은 탓이다. 유럽 각국 총선에서 극우성향 정당들이 의미 있는 선전을 하거나 심지어 제1당에 오르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유럽 전역에서 6∼9일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극우정당의 약진은 이미 기정사실화돼 있다. 과거 시끄럽고 극단적인 주장만 펼치는 소수정치세력으로만 간주돼온 극우정당이 어느새 견제의 대상이 될 정도로 유럽 정치를 주도하는 주류 중 하나로 올라섰다. 이들 중 몇몇은 80여년 전 유럽을 피로 물들였던 극우 파시즘과도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터라 좌파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싹트고 있고 이는 정치 양극화로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한 극심한 좌우 양극화에 대한 반작용으로 합의와 연립에 의한 정치가 자리 잡은 유럽 정치계가 다시 혼란으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극우 돌풍… ‘반(反)이민’이 ‘트리거’

 

2020년대 들어 유럽 각국 선거에서 극우 정치세력의 약진은 돌풍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보편적 현상이 됐다. 심지어 극우세력이 일당에 오르거나 정권을 잡는 경우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2022년 이탈리아에서 극우성향인 ‘이탈리아형제들’(FdI)이 집권당에 오른 것이 대표 사례로 극우정치인 조르자 멜로니가 총리로 이탈리아를 대표하고 있다. 2022년 스웨덴 총선에서는 스웨덴민주당이 우파연합을 이끌며 기존 중도좌파 성향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스웨덴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상징하는 대표 국가로 꼽혀왔던 터라 전 세계가 극우의 돌풍을 주목했다.

 

전통적으로 실용주의 중도 정당들이 강세를 보여온 네덜란드에서도 지난해 11월 극우 성향 ‘자유를 위한 정당’(PVV)이 원내 최대 정당으로 올라섰다. 벨기에 총선에서도 VB가 지속적으로 여론조사 1위를 달리며 1당 등극을 예고 중이다. 벨기에는 인구 1200만명의 소국이지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위치해 사실상 유럽의 행정수도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라 전 세계에서 의미를 작지 않게 받아들인다.

 

주류정치세력으로의 대약진이나 ‘의미 있는 패배’ 등도 이어진다. 지난해 핀란드 총선에서는 중도우파 국민연합당이 승리한 가운데 극우성향 ‘핀란드당’이 의회 입성 8년 만에 원내 제2당 자리에 올라섰다. 202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마린 르펜 후보가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과 맞붙어 2차 결선투표 끝에 41.45%로 패배하기도 했다. 이는 역대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성향 후보가 받은 최대 지지로 르펜은 이를 발판으로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대표적 극우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이제는 고착화된 저성장과 2010년대 중반 이후 유럽 최대의 갈등요소가 된 난민문제가 극우의 주류화를 만든 ‘트리거(방아쇠)’가 됐다. 극우정당을 경계하는 유권자들조차 두 가지 문제가 현재 유럽정치의 최대 화두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겐트에서 만난 젊은 유권자 브람(21)은 “VB가 현재 여론조사 1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실제 투표결과는 다를 것”이라면서도 “이번 선거에서는 경제가 가장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아내가 우크라이나인이라 우크라이나를 반대하는 VB를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밝힌 마르틴(58)은 “VB도 좋은 면이 있는데 그들의 반이민 정책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겐트 시내에 관광객이 몰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한 주택가의 경우 상당수 상점이 폐업한 채 방치돼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불황이 극우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유권자들마저 이들의 주장에 일부 동조하는 모습으로 연결되는 중이다.

 

벨기에뿐 아니라 유럽 전반에 걸친 폭넓은 정서로 특히, 극우정당들은 난민과 경제 관련 이슈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정치 무관심층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니콜라스 부테카 겐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과거 유럽 정치는 정부에 불만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유권자들이 무조건적으로 계속 같은 당을 지지하는 등 정체된 면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젊은 층들을 중심으로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생겨났고, 극우정당들의 명확한 메시지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AFP연합뉴스

◆극우정당의 대중화 전략

 

극우정당 역시 대중을 겨냥한 정책을 통해 지지층을 넓히는 데 성공하고 있다. 현재 유럽 극우정당들은 기존의 극단적인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최대한 온건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중이다.

 

선거를 앞둔 벨기에의 VB도 마찬가지다. VB는 1970년대 생겨난 ‘플람스 연합’이 전신으로 창당된 지 30년이 넘은 정당이지만 최근 급속히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사회정치연구센터(CRiSP) 벤자민 바이어드 교수는 “VB는 여전히 극우정당이지만 전략적으로 대중화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평했다. 이를 위해 이민문제 등 특정 사안을 제외한 전반적인 정치적 이슈에 대해서는 비교적 온건한 주장을 펼치는 편이다. 심지어 기존 좌파성향 정부들이 이어오던 사회민주주의적인 경제전략 등을 일부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바이어드 교수는 “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 등 과거의 아픈 경험을 통해 정치가 극단화하는 것을 경계하는 정서가 존재한다”면서 “자신들이 민주주의에 위해를 가하는 세력이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VB를 포함한 유럽의 극우정당들의 최우선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부테카 교수는 “사실 이미지가 바뀐 거고 정책이 바뀐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 중도 정당들이 이민정책 및 안보, 경제 부문에서 우성향으로 바뀌며 극우정당들과 정책이 수렴된 경향이 있다”면서 “여기에 유럽 유권자들 사이에 자국 이익을 추구하자는 목소리 커지면서 극우정당들의 대중화가 가능해졌다”고 밝혔다.

 

유럽 극우정당들은 적극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용으로 개인화된 젊은 유권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VB는 유럽 극우에서도 SNS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정당으로 이번 선거를 앞둔 4개월여 동안 약 100만유로(약 15억원)를 SNS 정치 캠페인에 투입했다. 그동안 유럽정치에서 흔하지 않은 대중 정치집회도 적극적으로 열었는데 선거를 일주일 앞둔 지난 2일 안트베르펜에서 VB가 개최한 수천명이 모인 집회는 “벨기에에 도널드 트럼프식 집회정치를 도입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다만, 이런 대중화 추구로 인해 역설적으로 유럽 극우정당들이 다시 극단화될 수 없게 됐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이제는 극우정당들도 정권을 잡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됐기 때문에 다당제로 연립이 중요한 유럽정치에서 더 중도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이어드 교수는 “유럽 정치문화에서 정당이 주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결과적으로 정치적 통합을 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면서 “유럽 극우정당들이 과거 나치즘, 파시즘 때와 같은 극단주의로 돌아갈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고 밝혔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겐트(벨기에)=글·사진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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