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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쟁에 폐기된 모성보호3법… 진짜 급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빠 육아휴직은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됐다. 어린이집 등·하원길에도,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도 휴직 중인 아빠들이 종종 눈에 띈다. 사연은 제각각이다. 아내의 복직에 따른 돌봄 공백, 아이의 건강 문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자녀의 적응….

 

나도 3년 전 늦가을 육아휴직을 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려 아이가 콧물이라도 흘리기 시작하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곤란했던 시기였다. 다 나을 때까지 일주일 정도씩 하루 종일 아이를 끼고 사는 일이 반복되면서 독박육아의 고충을 절감했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밥하기가 밥벌이만큼이나 고단하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현업에 있을 때처럼 ‘발제(뭘 해 먹일까)-취재(어디서 무슨 식재료를 살까)-출고(어떻게 조리할까)-반응 체크(아이는 잘 먹는가)’의 쳇바퀴가 매일같이 이어졌다.

 

누가 ‘육아휴직 어땠냐’고 물으면 엄살 섞어 “힘들었다”고 답하곤 했다. 다시 돌이켜보면 육아와 집안일에서 아내와의 격차를 좁혀나간 시간이었다. 둘 다 복직한 지금 비교적 큰 탈 없이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는 데엔 육아휴직 기간이 자양분이 됐다고 믿는다.

 

맞벌이 핵가족이 주를 이루는 시대엔 돌봄 문제 해결이 저출생 대책의 핵심축이 될 수밖에 없다. 21대 국회에서도 윤석열 대통령 공약인 육아휴직 기간 확대(1년→1년6개월) 등을 담은 관련 법안들이 다수 발의됐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발의한 모성보호 3법에는 육아·임신기 단축근로, 배우자 출산휴가, 난임치료휴가 확대가 포함됐다. 법안대로 육아기 단축근로가 가능한 자녀 나이가 현행 ‘8세 이하 또는 초등 2년생 이하’에서 ‘12세 이하 또는 초등 6년생 이하’로 바뀌면 자녀 등·하교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들에게 대안이 될 수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 확대는 유급 기간과 분할사용 횟수를 늘리는 내용이다. 남편이 출산휴가를 출산 직후, 산후조리원 퇴소 직후, 예방접종 시 등으로 여러 번 나눠 쓸 수 있다면 산모 부담이 훨씬 줄어든다.

 

임신한 출입기자가 셋째까지 낳고 싶다며 실효성 있는 저출생 대책을 요청하자 “정신이 번쩍 난다. 5대 핵심과제 중 저출생은 혁명적 수준으로 개선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화답한 대통령, 저출생 대책을 헌법 규범화하자는 국회의장, 4·10 총선을 앞두고 저출생 공약 경쟁을 벌이던 여야를 떠올리면 당연히 처리됐어야 할 법안들이다. 심지어 상당수 법안엔 여야 이견도 없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채 상병 특검법을 둘러싼 정쟁 탓에 다른 민생법안들과 함께 뒷전으로 밀려났다. 21대 국회가 29일 문을 닫아 자동 폐기된 법안을 22대 개원 직후 다시 내놓더라도 언제 처리될지는 아무도 단언 못 한다. 원 구성 시점부터가 안갯속이다. 상임위, 법사위, 본회의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무슨 돌발변수가 터질지도 알 수 없다. 고용노동부가 하반기 시행을 예상하고 배정받아둔 예산은 불용 처리 위기다.

 

윤 대통령은 얼마 전 일본 총리를 만나 라인야후 사태가 “한·일 외교관계와 별개의 사안”이라고 했다. 과거사와 양국 협력 관계를 분리하는 이른바 ‘투 트랙’ 기조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자신을 겨냥한 공세와 시급한 민생법안 처리를 이렇게 투 트랙으로 가져가자고 할 수는 없을까. 우리나라 여·야·정 사이엔 한·일 간보다도 깊은 골이 패어 있는 걸까. 여당이 대통령 지키느라 법안 논의는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드는 생각이다.


유태영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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