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방구워요" "어떵헹 지냄수과"… 각양각색 입말 속 팔도의 情

입력 : 2024-04-22 21:53:32 수정 : 2024-04-22 21:53:3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글박물관, ‘사투리는 못 참지!’ 특별전

10월까지 방언 자료 432점 한 자리에
삼국사기서 ‘방언’ 표현 최초로 등장
1933년 ‘맞춤법’ 발표… 인식 나빠지기도
고문헌·녹취·문학 등 보존 노력 총망라
“다양성·가치 ·한글의 힘 발견하는 전시”

“전하, 자들이 움메나 빡신지 아우? 자들이 하마요(벌써요), 십 년 전부터 서양문물을 받아들여가지구요, 뭔 세꼽 덩거리를 막 자들어가지구(두드려서) 조총이란 걸 맹글어가지구요… 대뜨번에 쎄싸리가 빠져요(죽어요).”

국립한글박물관이 강릉 사투리로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재구성한 문장이다. 문자만 나열했을 뿐인데 감자처럼 순박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이렇듯 우리말의 보물창고인 방언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10월까지 열린다.

 

국립한글박물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특별전 ‘사투리는 못 참지!’는 방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자료를 한데 모았다. 사진은 각 지역의 방언을 조사한 자료.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한글박물관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사투리는 못 참지!’를 10월13일까지 박물관 3층 기획전시실에서 선보인다. 지역 방언의 개념과 의미, 다양성 등을 보여주는 자료 294건 432점을 모았다. 방언은 ‘오방지언’(五方之言)의 줄임말로, 동서남북과 중앙을 의미했다. 그러나 서울의 위상이 날로 커지면서 표준어와 방언이 나뉘고 방언은 변두리의 말, 비공식적인 말이 됐다.

이번 전시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초입에서는 지역 방언의 말맛을 옛 문헌과 미디어 자료로 느낄 수 있다. 현존하는 문헌 중 방언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사례는 삼국사기다. 이때 방언은 신라의 말을 가리켰다.

1900년 10월9일 황성신문 논설은 “경기도 말씨는 새초롬하고, 강원도 말씨는 순박하며, 경상도 말씨는 씩씩하다. 충청도 말씨는 정중하며, 전라도 말씨는 맛깔스럽다”고 전한다. 이때만 해도 방언을 고쳐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민족의 단합과 국어의 보전을 위해’ 표준어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933년 ‘한글마춤법통일안’ 발표는 서울말이 권위 있고 방언은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다는 인식을 굳혔다. 산업화로 나타난 도시와 지방의 이분법도 방언을 ‘촌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했다. 1966년 국어교과서는 ‘표준말을 쓰자’며 “외국에서는 자기 나라 표준말을 못 쓰는 사람은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라고 천대까지 받는다더라”고 가르쳤다.

 

동학농민혁명군 한달문이 나주 감옥에 갇혀 어머니에게 쓴 한글편지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그는 “어마님 불효한 자식을 깊피(급히) 살려주시오. 기간(그간) 집안 유고를 몰라 기록하니 어무임 혹시 몸에 유고 계시거던 졋자라도(옆사람이라도) 와야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1959년 최학근의 ‘국어방언학서설’은 같은 어휘가 지역별로 어떻게 다른지 보여준다. 턱주가리(아래턱)는 턱아지·턱패기(충남), 태가리(전라·강원), 태거리(충청, 택사가리(경상도), 택수가리(경상도·강원), 택조가리(전북·경남)로 지역마다 다르게 불렸다.

이 같은 문헌 외에도 전시 영상과 청각자료를 통해 살아 있는 방언을 접할 수 있다. ‘팔도의 말맛’ 영상에서는 서울 토박이, 충청도 개그맨, 경상도 대학생, 전라도 방언학자, 함북 청진·평양 새터민 등이 똑같은 문장을 방언으로 얼마나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각 지역의 방언을 조사한 자료.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가령 반갑다는 인사말은 “그간 어떻게 지냈시요(평안)” “반갑슴다. 다들 어째 지냄까(함경)” “안녕하시우야, 우터 이래 반갑소. 방구워요.(강원)” “아이고,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디야.(충청)” “내는 잘 지낸다. 진짜 오랜만아니가(경상)” “잘도 오랜만이우다예. 어떵헹 지냄수과(제주)” “아따. 뵌 지 오래시. 저기 날도 더운데 어쭈고 산가(전라)”로 가지각색이다.

 

경상도 내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사투리도 직접 들을 수 있다. ‘잘가’라는 표현을 김천 사람은 “또 보재이”라고 하지만, 대구는 “잘 가래이”, 안동은 “드가래이”, 부산은 “어 가리”, 진주는 “또 보자이”라고 조금씩 다르게 말한다.

이 외에도 서울 중구 토박이회, 제주 구좌읍 평대리의 해녀 등을 조사한 영상과 방언학자들이 실제 조사 과정에서 채록한 녹음자료를 들어볼 수 있다.

문학작품은 방언이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바다와 같다. 서울 동숭동 출신인 시인 임화는 시 ‘가을바람’에 ‘오래기나(오라고나)’ ‘그리(거리)’ ‘애끼는(아끼는)’ 등의 서울 방언을 활용한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시인 정지용은 ‘귀로’에서 ‘쌍그란(서늘한 기운이 있는) 계절의 입술’ ‘함폭(함빡) 눈물겨운 등불’이라고 노래한다. 대구 출신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답답워라(답답해라)’ ‘깝치지 마라(서두르지 마라)’ 같은 경상 방언으로 민족의 비애와 저항의식을 표현했다.

박경리의 ‘토지’ 육필원고와 안경, 만년필. 박경리의 ‘토지’에 나타나는 경상 방언은 작중 인물들의 성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국립한글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는 지역 방언을 지키고 보존하려 노력한 이들의 땀방울을 보여준다. 1980년에 한 ‘한국방언조사’ 질문지부터 방언 연구자들이 사용한 카세트테이프, 노트, 가방, 녹음기 등 손때 묻은 물건들이 공개된다. 길에서 만난 사람이 생생한 방언을 보물처럼 쏟아내자 학자가 급히 담배포장지에 적은 기록도 볼 수 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국어 방언의 특징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78년부터 전국 138개 군을 직접 조사한 과정과 그 결과물이 전시된다.

문영은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방언의 다양성과 가치, 한글의 힘을 발견하고 우리 말글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전시”라고 밝혔다. 김희수 국립한글박물관 전시운영과장은 “한글이 있었기에 각 지역의 방언을 기억하고 기록할 수 있었다”며 “기록문화 유산으로서 한글의 역할과 가치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