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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병원도 존립 위기…"전공의, 돌아갈 직장 없어질 수도"

입력 : 2024-04-22 08:05:09 수정 : 2024-04-22 08: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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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증원으로 촉발된 의정 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고난이도·중증환자 진료 위축과 인력배출 지연은 물론 필수의료를 살릴 골든타임마저 놓쳐 의료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빅5'를 비롯한 대학병원들은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그동안 겨우 버텨온 지방 사립대병원부터 도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두 달 넘게 메워오고 있지만 이미 물리적·체력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상급종합병원은 암·중증·희귀난치병 환자 진료를 주로 책임지고 있는데, 간·폐암 등 중증 수술에 야간 당직까지 도맡은 교수들마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중증·응급환자 진료에 집중하기 위해 외래진료와 수술을 대폭 조정했지만 절대적인 인력 부족으로 신규 환자 진료가 사실상 중단되다시피한 상태다. 오는 25일은 전공의들처럼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등에 반발해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되는 날로,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그동안 대다수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후에도 전공의, 전임의가 떠난 자리를 메워왔다.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게 되면 내년부터 수년 간 전문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복귀 전공의는 전체의 90% 이상인 1만여 명에 달한다. 내달로 넘어가면 복귀해도 올해 수련 일수를 채울 수 없게 돼 돌아올 이유가 없어진다.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하면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지연될 수 있어서다.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내년에 전문의 2800명 가량이 배출되지 못한다. 전문의 배출 시점이 뒤로 밀리면 군의관, 공보의 배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5월로 넘어가게 되면 의대생들은 의대 학칙상 수업 일수를 고려했을 때 대량 유급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누적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이미 지난해 전체 의대 재학생 1만 8793명의 절반 이상인 1만여 건에 달한다. 의대 졸업생은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의사 면허를 발급받아 의사가 되는데, 내년 인턴 양성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 이미 이달 초 상반기 병원 인턴 수련 등록 마감 결과 인턴 예정자 중 90% 이상(약 3000명)이 등록하지 않았다.

 

의사 양성 시스템은 전공의 과정인 인턴(1년)·레지던트(3~4년)를 거쳐 전문의 자격을 딴 후 전임의로 가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 있어 인턴 부족이 향후 레지던트, 전문의 부족으로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의대생들이 대거 휴학 또는 유급 조치 되면 내년부터 의대 교육의 질이 떨어질 우려도 있다. 정부는 내년도에 한해 증원 규모를 최대 절반까지 줄이기로 해 내년도 의대 증원은 1000~2000명 내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내년 한 해 4000~5000명의 신입생이 생기는데 유급 됐거나 휴학했던 의대생들이 복학해 함께 수업을 듣게 된다.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최근 “지난 2일 부로 약 3000명의 인턴이 올해 수련을 못 받게 돼 향후 4년 이상 전문의 수급이 막대한 타격을 입었다”며 “전공의 90% 이상 사직, 의대생들의 휴학과 유급,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을 되돌리지 못한다면 의료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미 붕괴되기 시작한 필수의료는 소생의 길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빅5' 병원의 소아청소년과 A 교수는 "전공의 수련 공백이 1년 생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면서 "복귀에 부정적인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50% 안팎으로 떨어진 대학병원 병상 가동률은 회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이 빠진 '빅5' 병원 등 상급종합병원들은 하루 10억 원 이상 적자를 보는 등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서울아산병원은 현 상황이 연말까지 지속되면 순손실이 46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됐다. '빅5' 병원이 적자로 신음하고 있는 것은 인력 부족으로 입원·수술 등이 대폭 줄어든 가운데 인건비는 고정적으로 지출되고 있어서다.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대병원은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무급휴가 등에 나섰다. 특히 서울아산병원은 내달 31일 일반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기로 했다.

 

'빅5' 뿐 아니라 대학병원들도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전국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곳을 대상으로 경영 현황을 조사한 결과 지난 2월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난 후 병원당 의료수입은 평균 84억7670만 원 감소했다. 특히 1000병상 이상 의료기관의 의료수입은 전년 대비 19.7% 줄었다.

 

대형병원의 경영난은 과도한 전공의 의존이 주원인이다. '빅5' 병원은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이 약 40%에 달한다. 병원들은 고질적인 저수가(낮은 의료비용) 체계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전문의 대신 전공의의 최저임금 수준(시간당 1만2000원)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왔다. 국내 의료 수가(의료서비스 가격)는 원가의 70~80% 수준으로, 원가도 보전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공의들은 수술·입원·응급실 환자 등을 돌보며 주당 80시간 이상 근무해왔다.

길어지는 기다림 (대구=연합뉴스) 윤관식 기자 = 의대 증원 정책과 관련해 의정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19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진료 대기인원이 많아 임시 대기실로 쓰이는 강당에 앉아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4.19 psik@yna.co.kr/2024-04-19 11:38:53/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의료계 관계자는 "대형병원들이 병원 운영, 미래 투자 등을 위한 적립금인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으로 전문의 채용 등에 투자하기 보다 병상 확대 등 시설에 투자해왔다"면서 "만성적인 저수가 체계 개편과 함께 외형 확대 위주의 경영방식도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병원 9곳은 수도권에 병상 총 6600여 개 규모의 대규모 분원 11곳을 짓고 있다.

 

병원을 찾는 환자가 급감하면서 병원 인근의 식당과 약국 등 상권도 직격탄을 맞았다. '빅5' 병원 중 한 곳에 입점해 있는 안경원을 운영하는 상인은 "원래 임대료 자체가 비싼데 외래 환자까지 크게 줄면서 매출이 뚝 떨어졌다"면서 "주변 약국들과 병원 내 식당들도 상황은 비슷하다"고 말했다.

 

특히 오래지 않아 문을 닫는 지방 사립대병원이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방 사립대병원은 지방 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왔지만, 지방의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면서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려왔다. 경영이 부실한 지방 사립대병원들은 '빅5'병원처럼 낮은 금리로 마이너스 대출을 받기 쉽지 않고, 상황에 따라 대출 자체를 받기 어려운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 관계자는 "만성화된 저수가 속에서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구조적 적자를 벗어날 방법이 없다"면서 "구조조정을 하고 파산하는 2~3차 병원이 20여 곳에 달하면 수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하고, 간접 고용 인력까지 포함하면 수십만 명, 분원 설립이 취소되면 수백만 명 이상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료계가 의사 인력 수요와 공급의 과학적 추계를 바탕으로 하는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의료 현장의 급박한 상황을 감안해 의대 증원 규모를 500명 안팎으로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강성범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는 최근 한 언론사 기고문을 통해 "성급한 개혁으로 사태를 초래한 정부는 애타게 타들어 가는 환자들은 살피지 못하고 있다"면서 "설득과 조정 없는 숫자 집착은 의료 기반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만큼 관련 단체 주장대로 일단 200~500명 증원할 것을 정부에 요청한다. 이후 협의체에서 매년 조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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