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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숟가락 얹냐” 낯 뜨거운 봉준호 마케팅 하더니…이젠 ‘흉물’이 된 ‘괴물’ [김기자의 현장+]

입력 : 2024-04-21 12:30:00 수정 : 2024-04-22 08: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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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봉준호 감독 인기 편승
정치·지자체도 너도나도 봉 감독 마케팅 열풍
영화 ‘괴물’ 조형물 10년 만에 철거하기로
1억 8000만원 들여 “적절하냐” 지적도
코엑스광장 싸이 ‘말춤’ 조형물도 논란도 여전

“동상·생가 복원? 제가 죽은 후에나….” 봉준호 감독

 

지난 202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주요 4개 부분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차지했다. 쟁쟁한 후보들을 제친 ‘기생충’은 최고의 영예인 작품상을 비롯해 각본상,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 감독상까지 거머쥐면서 그야말로 한국영화계는 경사를 맞았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서울시가‘괴물’이 한강 변을 뛰는 모습을 형상화 해 지난 2014년 12월 여의도 한강공원에 1억8000만원을 들여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다음 달 공공미술심의위원회를 열어 괴물 조형물을 비롯해 한강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전반에 대한 철거 여부를 심의한다. 사진=김경호 기자

 

이에 뒤질세라 정치권은 앞다퉈 봉 감독 영화 관련 ‘괴물·설국열차·기생충’을 활용한 마케팅에 뛰어들었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봉준호 기생충 열차’에 탑승하려는 발 빠른 움직임을 보였다. 서울시와 마포구는 영화 촬영장소 가운데 하나인 아현1동을 관광코스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일부 지자체는 촬영된 스튜디오의 세트 복원을 추진하는가 하면 영화 특별전을 열고 ‘아카데미의 남자’ 봉 감독 모시기에 분주했다.

 

그뿐만 아니었다. 봉 감독의 고향인 대구도 들썩이고 있다. 권영진 대구시장(현 국민의힘 권영진대구 달서병 당선인)은 간부회의에서 “봉준호 감독이 ‘대구의 아들’이라는 점이 자랑스럽다”며 마케팅에 열 올렸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서울시가‘괴물’이 한강 변을 뛰는 모습을 형상화 해 지난 2014년 12월 여의도 한강공원에 1억8000만원을 들여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다음 달 공공미술심의위원회를 열어 괴물 조형물을 비롯해 한강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전반에 대한 철거 여부를 심의한다. 사진=김경호 기자

 

봉 감독은 1969년 9월 14일 대구시 남구 봉덕동에서 태어났다. 이후 남구 대명동 남도 초등학교에서 3학년까지 다니다 서울로 전학 갔으며 영화감독으로 데뷔 후에도 각종 행사로 수차례 고향을 찾았다. 그는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때 대구에 대한 추억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대구 시내의 극장 만경관을 찾은 봉 감독은 무대인사에서 “봉덕동에서 태어나 남구 대명동에 살다가 78년도에 서울로 이사 갔다”며 “어린 시절 추억이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블랙리스트 봉준호 감독’ 이라고 불리며 정부의 지원 배제 명단에 올랐던, 봉 감독은 이제는 국민적 영웅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또 “기생하려 드네” , “또, 숟가락 얹냐”라는 날 선 비아냥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낯 뜨거운 마케팅에 열풍이 뛰어들었다.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서울시가‘괴물’이 한강 변을 뛰는 모습을 형상화 해 지난 2014년 12월 여의도 한강공원에 1억8000만원을 들여 ‘괴물’ 조형물을 설치했다. 서울시는 다음 달 공공미술심의위원회를 열어 괴물 조형물을 비롯해 한강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전반에 대한 철거 여부를 심의한다. 사진=김경호 기자

 

국정원개혁위원회가 2017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봉 감독은 2009년 이명박 정부의 ‘좌파 연예인 대응 TF’가 관리한 82명의 명단에 들었다. 박근혜 정부가 2014년 작성한 ‘문예계 내 좌성향 세력 현황 및 고려사항’ 보고서에 기재된 249명에도 포함됐다. 그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 발표 자료를 보면 ‘살인의 추억’(2003년),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 봉 감독의 대표작 3편이 나란히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살인의 추억’은 공무원과 경찰을 비리 집단으로 묘사했고, ‘괴물’은 반미 정서와 정부의 무능을 부각했으며, ‘설국열차’는 시장경제를 부정하고 사회저항 운동을 부추겼다는 이유였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지난 2020년 2월 오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시 한국 사회 빈부 갈등을 특유의 풍경과 정서로 설득력 있게 그려낸 ‘기생충’과 봉 감독의 전사(前史)로서 한국 문화예술계의 흑역사를 조명한 건 외신들이 먼저였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지속했더라면 ‘기생충’은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며 이번 수상을 한국 민주주의 승리로 해석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다.

 

공공예술품이 ‘예술이냐·흉물이냐’ 논란은 여러 곳에서 오랫동안 진행 중이다. 인기 편승해 세금 들여 만든 한강공원 ‘괴물’ 조형물이 세월과 함께 점차 잊히거나 기억에서 조차 가물거리는 흉물로 지적받으며 외면을 받고 있다. 또 강남 코엑스광장 싸이 ‘말춤’ 조형물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시 공공미술심의위원회는 한강공원에 설치된 전체 공공 조형물의 철거 여부에 대한 심의를 진행 중이다. 봉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영화 ‘괴물’에서 나오는 ‘괴물’을 서울시가 한강 변을 뛰는 모습을 형상화 해 지난 2014년 12월 여의도 한강공원에 1억8000만원을 들여 설치했다. ‘괴물’ 조형물은 ‘한강 이야기 만들기 사업’을 연계한 관광 상품을 만들자는 취지로 2006년 1000만 명이 넘는 흥행성적을 기록한 영화 ‘괴물’을 재현했다. 설치 당시부터 예산을 들여 제작 하는 것을 두고 “적절하냐”라는 지적이 있었다.

 

시 관계자는 “조형물 가운데 노후도가 심해 미관을 해치거나 안전에 문제가 있는 조형물들을 철거할 예정”이라며 “괴물 조형물은 여러 논란이 있는 만큼 철거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가 코엑스 앞. 강남구가 2016년 4월 예산 4억여 원을 들여 높이 5.3m, 폭 8.3m 청동 소재의 대형‘강남스타일 말춤’조형물을 설치했다.사진=김경호 기자

 

‘괴물’ 조형물이 있는 여의도 한강공원을 지난 18일 찾았다. 초여름 같은 맑은 날씨에 산책하는 시민들이 북적였다. 멀리서 입을 벌린 커다란 ‘괴물’ 조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곳곳에 갈라져 있거나 관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은 듯 겉면엔 드러난 철사가 흉물스럽게 튀어나와 있었다. 강한 햇빛 탓인지 색이 바래져 있었고, 등과 꼬리 부분에는 거미줄이 쳐진 것처럼 금이 가 있었다. 벌린 입에는 스피커는 온데간데없고, 끊어진 전선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손이 닿는 틈새마다 담배꽁초와 구겨진 플라스틱 컵이 끼워져 있기도 했다.

 

공원에서 만난 이모(21)씨는 “설명 듣기 전엔 영화 ‘괴물’ 몰랐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강남 코엑스광장 4억 원 예산을 들여 설치된 ‘말춤’ 조형물도 여전히 논란에 중심에 서 있다. 강남구는 가수 싸이의 히트곡인 ‘강남스타일’의 포인트 안무를 형상화해 2016년 4월 5.3m, 폭 8.3m 청동 소재의 대형 ‘말춤’을 세웠다. 당시 구는 “지역적 특성에 맞는 랜드 마크가 필요하다”며 “세계인이 이미 기억하는 좋은 아이템으로 싸이의 강남스타일 말춤이 있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지만, “4억이란 헐세 낭비”, “손목 잘린 조형물” “한국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다” 등 도심의 흉물이라는 지적도 받은바 있다.

 

조형물에 대해 ‘과했다’는 의견을 밝힌 싸이 자신과 인연이 깊은 동상 제막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강남스타일’을 부른 싸이조차 한 매체 인터뷰에서 “그냥 제 직업이어서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고 나라를 위해 한 것도 아닌데 구에서 세금으로 동상을 세우는 게 처음부터 정말 감사하지만, 너무 과하다”라며 부정적 의견을 드러내기도 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가 코엑스 앞. 강남구가 2016년 4월 예산 4억여 원을 들여 높이 5.3m, 폭 8.3m 청동 소재의 대형‘강남스타일 말춤’조형물을 설치했다. 사진=김경호 기자

 

지난 19일 찾은 강남 코엑스광장. IT 쇼가 진행중인 코엑스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날 광장에서 만난 대학생 한모(23)씨는 “그냥 설치된 작품인줄 알았어요”며 “강남스타일요? 유튜브에서 잠깐 본적이 있는데, 잘 모르겠요”라고 했다. ‘강남의 대표하는 조형물’이라고 묻자 “네? 설마요. 어. 왜 했지? 관심 없어요”라고 웃으면 답했다. 불과 몇 년 만에 ‘흉물’ 논란 대표 조형물로 전락했다.

 

전국의 기념물과 공공시설물은 부산 547점, 경남 391점, 충남 378점, 경기 345점 등 시도마다 수백 점에 달한다. 인기에 편승해 전시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설치하느라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고 철거하느라 또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예산을 들여 만들기만 하고 관리는 뒷전, 결국 흉물로 방치한다”라는 지적이다. 이 과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글·사진=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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