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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모퉁이 돌 때마다 설렘 가득… 전통·현대 어우러진 K컬처 1번지 걷다 [심층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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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9 06:00:00 수정 : 2024-04-09 0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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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의 심장’ 북촌·서촌 아트벨트

길모퉁이 돌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에 설렘 가득

인사동에 몰려있던 화랑
1970년대부터 ‘새 둥지’
한옥마을과 갤러리 공존

규모보다 독특한 콘셉트
촘촘한 자체기획 차별화
신인작가 발굴에도 힘써

아기자기한 맛집·카페…
다양한 문화시설에 활기
외국인 ‘핫플’로 떠올라

봄이다.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4번 출구 앞에 즐비한 한복대여점은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법석이다. 왕과 왕비, 세자, 공주와 옹주, 호위무사 등 화려한 한복 차림으로 환복한 무리들이 물결을 이루며 경복궁과 고궁박물관, 민속박물관 등을 휩쓸고 다니다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가운데 일부는 덕수궁과 남대문시장 코스를 따르지 않고 방향을 거슬러 북촌과 서촌으로 진입한다. 한국 미술의 심장부, 아트벨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안내 자료에 ‘꼭 둘러보아야 할 곳’으로 실려 있는 북촌과 서촌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K컬처 1번지. 이들에게 이곳의 키워드는 ‘한옥에서 즐기는 글로벌 푸드와 동시대 미술’이다.

1936∼2004년 실제 여관으로 쓰였던 보안여관은 한국근대문학의 발상지다. 지금은 문화 생산자들과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대안공간 구실을 한다. 남제현 선임기자

“서울 하늘 아래 이런 동네가 없다.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북촌과 서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건물이 낮아 파란 하늘과 인왕산 바위가 훤히 보이고, 골목길이 많아 걷기에 좋다. 한옥마을과 세련된 현대 갤러리의 병행을 문화적으로 되살린 ‘길거리 부흥’의 성공 지역이다.

◆인사동에서 북촌과 서촌으로

북촌에 처음 갤러리가 들어선 것은 1975년이다. 인사동에 있던 현대화랑이 사간동에 새 터를 잡았다.

인사동은 한국 미술의 중심지였다. 가나화랑, 국제화랑, 동산방화랑, 표화랑, 학고재화랑 등 당시 메이저 갤러리들이 모두 인사동에서 출발했다. 고미술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상업화랑, 대관 전시장 등도 인사동에 몰려 있었다.

1975년, 현대화랑이 인사동에서 사간동으로 이전하면서 북촌 갤러리 시대가 열렸다.

앞서 조선 후기 들어, 도화서 화원들은 여벌의 그림을 그려 광통교(지금 신한은행 본점)에 내다 팔기도 했다. 당시 광통교 주변엔 지전(종이가게)이 성업했는데 이때 인사동까지 확장했다. 역관 등 중인들이 돈을 벌자 그림이나 도자기를 사 모으기 시작했다. 사대부들의 취미생활이 중인계층까지 내려온 것이다. 인사동에서 미술이 번성하게 된 이유다.

현대화랑은 이전 후에도 박수근, 이중섭 등을 널리 알리며 한국 미술 시장을 이끌었다. 1995년에는 현대화랑 가까이 갤러리현대 신관을 지어 올렸다.

국제갤러리는 1987년 인사동을 떠나 소격동으로 옮겨왔다. ‘국제’라는 이름답게 해외 거장들의 작품전을 열어 한국 미술의 세계화를 꾀했다. 1996년에는 학고재와 금호갤러리가 삼청동으로 이전했다. 금호갤러리는 갤러리현대 옆으로 들어오면서 금호미술관으로 명칭과 역할을 바꾸었다. 이화익갤러리는 2005년 송현동으로 전입했고, 이듬해 아라리오갤러리가 삼청동에 서울점을 열었다.

이들이 인사동을 벗어난 것은 탁 트인 전시실과 충분한 수장고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땅값이 상한가에 이르고 과밀화된 인사동 상권에서는 달리 방법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인사동 탈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갤러리들은 삼청, 평창, 청담, 압구정 등으로 분산됐다.

이웃 사이인 국제갤러리와 학고재가 보인다. 북촌 아트벨트의 중심부에 진입한 셈이다.

북촌과 서촌이 한국 미술의 심장부로 자리매김한 것은 인근에 형성된 인프라 덕도 크다. 아트선재센터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들어선 것이다. 1998년 개관한 아트선재센터는 초대 관장 김선정의 네트워크에 힘입어 한국 미술을 본격적으로 세계무대에 알리기 시작했다. 1969년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은 1986년 과천관 이전으로 덩치를 키웠지만 접근성 문제가 불거져 2013년 국군기무사령부 부지에 지금의 서울관을 개관했다.

북촌과 서촌은 미술 인구의 증가, 미술 시장의 성장, 문화 영유권의 확대와 더불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며 마침내 거대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서촌의 갤러리들은 1972년 처음 진입한 진화랑을 빼면 대다수 2000년대 이후 문을 열었다. 아트사이드갤러리가 2010년 통의동으로 옮겼고, 표갤러리는 2019년 체부동으로 이전했다. 대림미술관, 박노수미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대구에 기반을 둔 리안갤러리가 여기에 진출해 탄탄한 주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서촌의 힘은 다양한 문화시설과 젊은 활기에서 나온다. 맛집, 카페, 각종 이색 체험 시설이 풍부하다. 열혈 ‘젊은 피’의 유입이 원활하다.

유럽 작가들을 한국에 알리는 초이앤초이갤러리는 오스트리아 작가 베르트람 하제나우어 개인전을 열고 있다.

◆변화를 꾀하고 흐름을 탄다

최근 비영리, 장애예술인협력, 경력단절여성예술인지원 등 타깃을 명확히 세운 갤러리들이 북촌과 서촌에 등장하고 있다. 인사동이나 청담동 갤러리가 대관사업 위주로 쇠락한 반면 ‘촘촘한 자체 기획 프로그램’을 내세워 차별화한다. 그래서 특별전, 기획전, 초대전의 비율이 높다.

이들은 누구든 문을 열고 들어올 수 있도록 친근한 갤러리를 표방한다. 그림에 대한 짧은 지식이나 안목, 매매 등 부담감을 주지 않는다는 얘기다. 북촌과 서촌이 스마트한 아트벨트를 형성한 요인 중 하나다.

대구에서 출발한 리안갤러리는 서촌에 주류세력을 형성하며 국내 정상급 갤러리로 자리매김했다. 30일까지 이광호 개인전을 연다.

◆규모보다 독특한 콘셉트를 보라

보안여관은 1936년 목조건물로 지어져 2004년까지 실제 여관으로 쓰였던 곳이다. 문학동인지 ‘시인부락’이 만들어진, 한국 근대문학의 발상지다. 지금은 문화 생산자들과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대안공간으로 활용한다. 구관과 4층짜리 신관 벽돌건물에 ‘아트스페이스 보안’ ‘보안책방’ ‘카페 33마켓’ 등을 운영하고 있다.

헬렌앤제이갤러리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에 있는 스캇앤제이갤러리의 자매 갤러리다. 정희자 대표가 2022년 문을 열었다. 한국 작가를 미국 등 해외에 진출시키는 게 목표다. 국제 아트페어에 출전하거나 해외 작가와의 교류전 등이 용이하다. 자신만의 색채와 형태를 표출하는 신인을 찾기 위해 올해는 공모전을 잇달아 열 예정이다.

초이앤초이갤러리는 최진희, 최선희 쌍둥이 자매가 공동대표다. 런던, 파리, 베를린, 제네바 등에서 활동하며 유럽 뉴페이스 작가를 한국에 알리거나 한국 작가를 유럽에 소개한다. 2017년 청담동에 열었다가 다음 해 삼청동으로 옮겼다. 오스트리아 작가 베르트람 하제나우어 개인전을 열고 있다.

아트사이드갤러리는 3층 전시장을 한 달간 작업실로 개방해 작가 최진욱이 바라본 서촌의 모습을 내걸었다. 관람자는 캔버스 속 풍경을 마주함과 동시에 작가의 눈길과 자신의 시선이 어떻게 다른지 감상할 수 있다. 작품 현장에 깊숙이 개입한 채 자칫 지나칠 수 있던 풍경에서 최진욱이 선보이는 ‘감성적 리얼리즘’을 공감하게 된다.

2013년 인사동에서 출발한 아트스페이스3는 2018년 통의동으로 들어왔다. 3은 예술가와 관람객, 갤러리 간의 조화를 뜻한다. 기록되지 못했거나 주목받지 못한 작품을 조명하고 인정받는 게 미션. 안무가 김태엽의 퍼포먼스 ‘Body Vocabulary:’(보디 보캐뷰러리:)를 진행했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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