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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네이션' 어원은 '돈 내쇼'… 한승헌의 유머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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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4-05 07:00:00 수정 : 2024-04-05 00: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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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은 늘 따라붙는 ‘1세대 인권변호사’라는 별칭 때문에 굉장히 깐깐하고 엄격한 법조인이겠거니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하지만 실은 재기발랄하고 유머가 넘치는 인물이었다는 것이 지인들의 전언이다. 고인의 별세 후 정운현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한테 들은 얘기라며 이렇게 밝혔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한 전 원장에게 하루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넌지시 전북지사 출마를 권유했다고 한다. 그러자 한 전 원장이 “저는 전북지사 대신 민족지사 하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 세계일보 자료사진

고인이 반미(反美)주의자 아닌가 의심하는 이들을 향해 했다는 항변은 재기가 가득하다. “저 반미 아닙니다. 커피는 아메리카노를 마십니다”라는 한 전 원장의 점잖은 반박에 듣는 이가 폭소를 터뜨렸다는 후문이다. 영어로 기부를 뜻하는 ‘도네이션’(donation)의 어원 풀이는 또 어떤가. DJ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고액 기부자를 초청해 오찬을 베풀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기부란 말의 영어 도네이션은 한국말 ‘돈 내쇼’에서 나와서 도네이션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앞으로도 기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청중은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고인의 탁월한 유머 감각에 관해 한마디 남겼다. 감사원장 시절 어느 행사장에서 인사말을 했는데 우연히 이 전 총리도 그 자리에 함께했던 모양이다. 당시 한 전 원장은 ‘감사’라는 단어를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면서 고맙다는 뜻의 감사(感謝)와 감사원장 업무의 감사(監査)를 마구 섞어 썼다. 수준 높은 일종의 언어유희였던 셈이다. 이 전 총리는 “좌중은 웃음바다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고인의) 말씀에는 늘 유머가 가득했다”며 “속은 쇠처럼 단단하지만 겉은 솜처럼 부드러우셨던 어른”이라고 추모했다.

 

‘산민객담’. 고(故) 한승헌 전 감사원장이 생전에 펴낸 유머집이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3월29일 서울대 총동창회 정기 총회에서 금난새 성남시립교향악단 총감독 겸 상임지휘자와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회장인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나란히 관악대상을 받았다. 금 지휘자는 과거 서울예고 교장으로 일하던 시절 고교생들의 미국 공연을 류 회장이 후원한 사실을 소개하며 도네이션이란 표현을 썼다. 그러자 류 회장은 “도네이션이 ‘돈 내쇼’로 들린다”고 화답했다. 행사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새삼 한 전 원장의 유머가 떠오른다. 마침 오는 20일은 그의 2주기 기일이다. 이 나라 민주화에 기여한 고인의 명복을 빈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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