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넘는 크리스마스 휴가에는 어디를 가볼까. 가을 학기부터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온 그는, 이번 휴가 때에 다른 유럽국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여행 정보를 찾고 있었다.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1년간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한 그였다.
한 시사 주간지를 살펴보다가 유럽 통신원이 쓴 탈북민에 관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벨기에를 유령처럼 떠도는 한 탈북 청년에 대한 기사였다. 탈북 청년이 유럽까지 와서 난민 신청을 했다고?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4년 전 등단했던 소설가 조해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궁금했다.
벨기에로 오라는 통신원의 이메일을 받고서 유로라인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애초 먼 길이라고 생각했으면 비행기를 탔으련만, 짧은 유럽 생활에 거리 감각이 없어서 버스를 탄 것이다. 버스로는 무려 열 시간이 넘는 긴 여행.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통신원을 만났지만, 기사 속에 담겨 있던 탈북 청년은 끝내 만나지 못했다. 비행기를 타고 벨기에에 입국한 그는 난민 지위를 받은 다음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나마 그의 자술서를 볼 수 있었고, 난민 지위를 취득하는 것을 돕던 여러 조력자를 만날 수 있었다. 청년의 흔적을 찾아서 브뤼셀 북역에 위치한 쇼핑가 뒤편의 낡은 호스텔의 한 방문을 연 순간, 문득 소설을 쓰고 싶어졌다. 누추하고 쓸쓸하고 추웠던 그 방⋯.
“저도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됐어요. 어렵게 난민 지위 받았을 텐데, 왜 떠났는지. 나이가 드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먹고 사는 문제만 해결된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거기에서 계속 불안했을 것이고. 저는 난민 지위를 얻는 과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때 이미 유럽에서는 난민이 이슈였지만, 한국에선 아직 이슈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어요. 소설을 안 썼다면 몰랐을 세계인데, 난민에 대한 정의나 난민 협약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소설은 작가도 많이 성장하게 하는 장르인 것 같아요.”
소설가 조해진은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기완」(감독 김희진)이 공개되면서 10여 년 만에 다시 화제가 된 자신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창비)에 대해 “사람들이 출간 당시부터 이미 베스트셀러였다고 알고 있지만, 전혀 아니었다”고 웃었다. 2013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고 2021년 ‘우리시대의 소설 50’에 선정됐던 소설은 영화화로 다시 붐을 맞아서 13년 만에 리마스터판으로 돌아왔다.
영화 「로기완」이 탈북 청년 기완과 그의 돈을 훔친 여성 마리의 로맨스라면,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는 기완의 행적을 쫓는 김 작가의 이야기다.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담는 다큐 작가인 김 작가는, 부모를 여의고 힘겹게 살아가는 여고생 윤주를 도와주려다가 오히려 절망에 빠뜨리자 죄책감으로 윤주에게 등을 돌린다. 이때 우연히 읽게 된 잡지에서 탈북자 로기완의 이야기를 접하고 무작정 벨기에로 떠난다.
“나를 브뤼셀로 이끈 것은 바로 그 이니셜 L의 문장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한다면, 이니셜 L이 시사주간지 『H』와 인터뷰 도중 기자에게 고백한 한 줄의 문장이 나로 하여금 익숙했던 세계를 떠나오게 했다.”(11쪽)
로기완은 함경북도 온성군 세선리 제7작업반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십 대의 탈북 청년으로, 함께 국경을 넘은 어머니가 중국에서 자신을 위해 비극적으로 숨진 뒤 피 같은 650유로를 가슴에 품고 벨기에에 넘어와서 오직 살아남는 것을 목적으로 분투한다.
“방수포에 싸인 650유로. 그 장면을 상상하자 묵직한 통증이 가슴 속에 내려앉으면서 숙박계에 이름을 적던 손길이 멈칫한다. 로의 일기를 정독하면서 딱 한번 독서가 중단된 것도 일기 후반부에 적혀 있던, 방수포에 싸인 그 돈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되었을 때였다. 나는 이곳으로 이끈 시사잡지의 문장 역시 바로 그 장면에서 비롯되었다.”(41쪽)
김 작가는 전직 의사 박윤철의 도움을 받아서 로기완의 행적이 담긴 일기와 자술서를 구해 로기완의 자취를 밟아가며 글을 써나간다. 이를 통해서 로기완의 마음과 윤주의 마음을 더듬어 가게 되고, 마침내 회피하고 있던 자신의 마음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니셜 L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암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건, 내가 내 인생 속으로 더 깊이 발을 들여놓도록 인도하는 마법의 주문에 가까웠다. 익숙한 화면이 오버랩된다.”(77쪽)
책은 탈북 청년 로기완을 통해서 늘 도움이 필요하고 열등한 탈북자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상을 제시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던지는 모습은 운명을 회피하려 한 다른 인물들보다 오히려 능동적이고 주체적이다.
탄탄한 작품성을 입증해온 젊은 작가 조해진이 천착한 탈북 청년 로기완의 마음과, 타인에 대한 사려 깊은 공감과 연대의 방식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작가적 여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조 작가를 지난달 28일 전화로 만났다.
―집필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은.
“난민 지위를 받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잘 몰라 한국에 돌아와서도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썼다. 소설 배경은 ‘고난의 행군’이 이어지던 1990년대 북한으로, 로기완의 자술서에도 1990년대 되게 힘들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잘 몰라서 어려웠다. 모르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었고, 작가로서 많이 성장하게 해준 계기가 됐다.”
―소설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 허구인가.
“실제로 로기완을 만나지도 못했고, 그를 취재한 통신원을 통해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다. 당시 이십 대 청년으로, 벨기에 경찰에 의해 고아원으로 보내진 것까지는 소설과 동일하다. 하지만 로기완이 라이카와 영국으로 이주해 함께 사는 것을 비롯해 로기완의 이후 행적은 모두 허구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모습, 햄버거를 먹는 것, 화장실에서 숨어 지내는 것 등등. 제가 여행을 하면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이 거리를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했다. 로기완 어머니 사연이나 전직 의사 박윤철 같은 인물 역시 모두 허구다.”
―김 작가는 윤주 문제로 고민하다가 로기완을 만나러 훌쩍 벨기에에 오게 되는데.
“연민의 방식을 놓고 재이나 김 작가의 생각 모두 부분적으로 맞다고 생각한다. 다만 김 작가는 윤주 사건을 계기로 로기완의 행적을 찾아가면서 공감이나 연민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중요할 수 있겠구나, 그것이 최종적으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가 되는 구나라는 걸 배워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벨기에에서 만난 전직 의사 박윤철은 안락사 문제를 고민하는 인물인데.
“한국에서는 최근에야 안락사가 이슈가 됐지만 유럽에선 당시부터 주요 이슈 가운데 하나였다. 그 때 한인 공동체에서 안락사를 선택한 분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이해한다거나, 그래도 어떻게 평생 같이 살았던 아내를 먼저 보내느냐로 의견이 나뉘더라. 저도 그때 생각을 많이 했다. 소설에도 썼지만, 안락사는 의사가 환자한테 약을 직접 주입하는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마실지 안 마실지 환자 스스로의 선택에 맡기는 일종의 조력사라고 해야 될 것 같다. 난민 이슈 역시 당시 우리에겐 생소했던 이슈였다.”
―일기장이 로기완에서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구성이고, 문체 역시 성찰적이다.
“소설을 처음 구성할 때 증여를 생각했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로기완의 일기를 증여받고, 그 일기를 바탕으로 쓴 김 작가의 글이 다시 로기완에게 증여되는 플롯을 생각했다. 소설 자체가 누군가에게 어떤 선물이 될 수 있는, 약간 온기가 있는 구성을 생각했다. 아울러 이런 플롯 때문에 자꾸 뒤돌아보게 된 것 같다. 문장의 외피는 좀 덤덤하더라도, 안은 좀 온기가 있는, 온기를 전해주는 문장을 쓰려고 했다. 아픔도 있고, 고민은 치열하게 하지만, 결국엔 온기로 유대가 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새로 쓴 작가의 말」에서도 “증여의 가치를 생각하게 됐다”며 “소설 안에서 로기완은 의사 박에게 일기를 증여하고 김 작가는 그 일기를 읽은 뒤 남긴 기록을 다시 로기완에게 증여하는데, 그들이 서로에게 증여한 문자들은 결국 소설 밖에서는 읽는 이에게 증여되리라 믿는다”고 적었다.
―여러 인물 가운데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은 누구인지.
“김 작가는 소설가는 아니지만 쓰는 사람이고, 제 고민이 들어 있는 페르소나 같은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저보다 훨씬 멋있는 사람이지만. 로기완은 일기 속에 있는 인물로 제 마음이었던 것 같다. 탈북인들의 고통을 다 알지 못하기에 전면으로 내세우기 어려워 일부러 일기 속의 인물을 추적하는 구성을 따랐다. 로기완이라는 인물은 불행하지만, 대신 성실하고 정직하고 품위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김 작가, 로기완, 전직 의사 박윤철 모두 애정이 간다. 모두 고민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소설과 관련해 혹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탈북인이라는 설정만 보고 반북소설처럼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더라. 전혀 반북소설이 아니다. 인간 로기완을 본 것뿐이다. 아울러 저는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도 어떤 연민이나 공감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영화를 봤는지, 소회가 있을 텐데.
“여러 번 봤다. 영화와 소설의 화법이 다르다는 것과 영화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들어갔다는 걸 알기에 지금은 어떤 말도 조심스럽다. 다만, 로기완을 성실하고 품위 있는 인물로 쓰고 싶었는데 영화에도 그것이 반영이 돼 있더라. 13년 동안 이 소설을 포기하지 않았던 용필름 임승용 대표에 감사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내향적인 소녀 조해진은 어릴 적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면 독서와 몽상을 하곤 했다. 처음에 매료된 책은 『어린 왕자』였고, 혼자 공상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어떻게 살아왔을지 자주 궁금해 하곤 했다. 언젠가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언뜻⋯.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되니까 갑자기 글을 쓰고 싶었다.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시간에 참고서 아래에 소설을 숨겨놓고 읽었고, 중학교 때에는 가끔 소설을 끄적여 보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에는 대학 입시가 너무 무거워서 글을 쓰다가 말았다.
대학에서 처음 소설창작 강의를 들었고, 대학 3년 때부터 습작을 썼다. 이 즈음부터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자고 생각했고, 이후 다시 꿈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등단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5년 정도 습작을 한 뒤에야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1976년 서울에서 나고 자란 조해진은 2004년 중편소설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문예중앙』에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등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등을 발표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많은 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로기완을 만났다』 전후 작품 세계가 바뀌었다고 했는데.
“이전에도 소외된 사람들을 쓴 건 비슷했지만, 자기 절망이 커서 시니컬하고 폐쇄적이며 차가운 인물을 많이 썼던 것 같다. 물론 문학에서 담을 수 있는 얘기이긴 하지만. 주요 인물들이 현실적인 고난이 오면 이별이나 죽음 등 숨어버리거나 자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로기완을 만났다』부터 인물들이 진실을 응시하면서 타인과 연대하려고 하고, 희미하나마 희망을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증여나 연대, 공감 같은 것을 생각했다. 상황 자체는 고통스러울지라도 결과적으로 서로를 살게 하는, 서로를 살릴 수 있는 이야기와 문장을 찾아갔다.(계기가 있었는지) 아마 제 성격의 변화와 관련이 있었던 것 같다. 오래 읽고 쓰면서 극단적으로 절망하는 인물이 오히려 더 쉬운 타협이고 회피이며, 살아 있다는 감각을 찾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큰 용기이고 더 문학적일 수 있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한 인물에 대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역사나 사회적 사건으로 나아가려고 했던 것 같다.”
―소설쓰기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이라든가 방법은.
“『로기완을 만났다』를 쓰는 마음이랑 비슷한 것 같다. 희망이라는 말이 가식적이거나 순간적인 위로만 준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금도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어쨌든 희망을 찾아가고 싶다. 또 문학이 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우리가 몰랐던 세상을 더 알게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번에 영화화가 되면서 난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는 분들도 좀 있더라. 지금 우리 사회가 난민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나. 소설 한 편으로 어떻게 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돌아볼 수 있는 계기는 되는 것 같다. 욕심을 더 낸다면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글 쓸 때 습관 같은 게 있는지) 특별한 게 없다. 마감이 있으면 더 길어지지만, 매일 하루에 서너 시간이라도 꾸준히 읽고 쓰자는 주의다.”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
“일단 꾸준히 쓰고 쓸 수 있는 데까지 지치지 않는 작가가 되는 것, 지금은 그게 전부다.(롤 모델이 있는지) 사회적인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는 작가를 좋아한다. 외국 작가로는 『숨그네』를 쓴 루마니아 태생의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쓴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등을 좋아한다.”
소설가 조해진은 물기를 머금은 듯한 목소리로 수화기 너머에서 밀려오는 궁금증을 하나씩 조곤조곤 채워나갔다. 아마 이날 기자의 질문은 연민의 방식에서 자주 맴돌았을 것이다. “연민이란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떻게 만들어져서 어떻게 진보하다가 어떤 방식으로 소멸되는 것인가. 태생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그 감정이 거짓 없는 진심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포기되어야 하는 것일까.”(59쪽)
몇 해 전부터 서울의 집에서 전업 작가로 글만 쓰고 있다는 그는, 아마도 도시가 불온한 어둠으로 포위될 때면 사람들의 마음을 찾아 나설 것이다. 그리하여 낭떠러지 같은 경계의 끝자락에서 자주 서성이고, 드넓은 광장에서 외로움에 고개 숙이며, 뒷골목에서 처절한 실패로 눈물 흘리는 이들에게 연민과 공감, 연대의 모스 부호를 보낼 지도 모른다. 힘겹게 그러나 쉬지 않고, 마치 먼 우주로 교신하듯, 천국의 문을 노크하듯. Knock, knock, knockin' on heaven's door(녹, 녹, 노킹 온 헤븐스 도어)⋯.
“미안하다는 무책임한 말이 아니라, 우리를 막는 것은 없으니 우리는 언제까지고 포기하지 않아야 하며 반드시 만나야 한다는 절대적인 말, 그런 솔직함. 그건 내가 원했던 이상적인 대화인지도 모르겠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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