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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첫 스승이 떠올린 임윤찬… “4년 먼저 시작한 친구들 1년도 안 돼 따라잡아”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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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22 08:10:16 수정 : 2024-03-22 11:5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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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경은, 2012년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에서 초등 2학년 임윤찬을 첫 제자로 만나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 들어”
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 욕심에 놀라 집에까지 데려가 집중 지도
“어린 나이에도 음악 외엔 관심 없고, 지독하게 연습”
“잘한 연주도 자기 성에 안 차면 울어”…“악보 선물 받는 걸 제일 좋아해”
“아들 위한 어머니의 정성과 노력도 대단”…“나를 믿고 모든 걸 맡겨 주셔서 감사”
초등 5학년 이후 자신감 잃은 임윤찬 “피아노 관두겠다”고 하자 “말도 안 된다”며 만류
제자가 역대 최연소 우승한 밴 클라이번 콩쿠르 보며 눈물…“얼마나 노력했을지 느껴졌기 때문”
“윤찬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좋은 음악 들려주는 피아니스트 되길”
새 앨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발매 기념 독주회 4월에 열어

“악보도 볼 줄 모르고 피아노를 어설프게 쳤던 아이가 다른 친구들이 3∼4년 배운 걸 1년도 안 돼 다 따라잡더니 콩쿠르 나가서 1등 하는 것 보면서 진짜 남다른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임윤찬이 초등학교 3학년 때 연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 김경은 제공

세계적인 스타 연주자로 떠오른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을 2012년 예술의전당 음악영재 아카데미에서 만나 7년가량 지도한 피아니스트 김경은(42)의 얘기다. 그는 임윤찬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손민수(48·현재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 교수에게 집중 지도를 받기 전까지 기초를 닦고 재능을 키우도록 해준 첫 스승이다. 8살에 영국 예후디 메뉴인 음악학교에 최연소 합격한 이후 퍼셀 음악학교를 거쳐 미국 줄리어드 음대와 맨해튼 음대까지 명문 영재 음악학교와 음대에서 공부했다. 2011∼2020년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강사를 하며 맡은 첫 제자가 임윤찬이다. 

 

음악영재를 조기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999년 개원한 이 아카데미는 조성진(피아니스트)과 양인모(바이올리니스트) 등 지금까지 7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차세대 음악가 산실이다. 초등 저학년은 음악성과 가능성을 보고 뽑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뒤늦게 피아노를 시작해 또래보다 실력이 한참 모자랐던 임윤찬도 2011년 선발 시험에 통과해 이듬해(초등 2학년)부터 다닐 수 있었다.  

 

지난 18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김경은이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시절부터 가르친 첫 제자 임윤찬과의 인연 등을 들려주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김경은은 최근 세계일보 인터뷰에서 “처음 윤찬이를 만났을 때부터 ‘정말 잘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중간에 오는(피아노를 웬만큼 치다 온) 학생은 새로 가르치기가 힘든데 윤찬이는 부족한 만큼 오히려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이어 “기본기부터 하나하나 다시 가르쳤는데, 윤찬이가 다음 수업 때까지 완벽하게 연습을 해오니 지난 수업 때 했던 얘기를 반복할 필요가 없었다”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가 무척 빨랐다”고 덧붙였다.

 

어린 제자의 음악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 욕심에 놀란 김경은은 일주일에 1시간인 아카데미 수업으론 너무 부족해 집에까지 데려가 지도했다. 임윤찬이 10살이 되면서는 국제 콩쿠르를 대비해 쇼팽 에튀드(연습곡) 전곡이나 현대음악 작품 등 다양한 곡을 가르쳤다. “아이인데도 고전부터 현대에 이르는 음악 레퍼토리를 다 좋아했고, 열심히 잘 따라와 주었어요.”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시절 스승의 연주회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임윤찬. 김경은 제공

임윤찬을 가르치는 동안 특히 인상적이었던 점을 묻자 “음악에 빠져 지독하게 연습만 한 아이였다”고 떠올렸다. “그 어린 나이에 음악 외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주말에 어디 놀러 안 가냐’고 물으면 ‘정말 피아노 연습만 하고 싶다’고 할 정도로. 제가 연주회를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보러 왔고, 악보를 선물받는 걸 아주 좋아했어요. 그 나이 또래 친구들은 사실 1시간 레슨도 집중하기 힘든데, 윤찬이는 절대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임윤찬 어머니의 정성과 노력도 대단했다고 한다. “제가 레슨하는(가르치는) 내용을 다 녹음하신 후 그대로 악보에 옮겨 적으셨어요. 윤찬이가 집에 가서도 배운 대로 계속 연습할 수 있도록 말이죠. 저를 믿고 모든 걸 맡겨주신 것도 고마웠습니다. 당시 국내 콩쿠르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어머니 대다수는 콩쿠르 심사 대상이 아닌 곡이나 곡 전체를 연습시키면 ‘콩쿠르와 상관없는 이 곡을 왜 치냐’, ‘앞 부분만 하면 되지 왜 끝 부분까지 치게 하냐’며 참견하고 항의했거든요. 1년 내내 곡의 특정 부분만 연습해 콩쿠르 1등을 하면 뭐 합니까. 한 곡도 제대로 못 치는데.”

 

영재아카데미에 들어간 첫해와 이듬해 각각 음악저널콩쿠르와 음악춘추콩쿠르 1등을 차지한 임윤찬은 5학년을 지나며 고비를 맞았다. 키와 손이 작다보니 피아노 페달을 편하게 밟을 수 없었고, 손이 옥타브에 다 닿지 않았다. 그만큼 다른 학생에 비해 난도 있는 곡들을 치는 게 어려웠고, 콩쿠르 입상도 잘 안 되자 자신감을 잃었던 것. “윤찬이가 6학년 초까지 힘들어하다 ‘피아노를 관두겠다’라고까지 해서 ‘말도 안 된다’며 만류하고 설득했습니다. 이후 다시 열심히 했고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금호영재콘서트 기회를 또 한 번 갖게 되면서 자신감도 회복하더라고요.”  김경은은 임윤찬이 역대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 음악계를 깜짝 놀래킨 2022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 실황중계를 보며 눈물이 났다고 한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아니까요. 영재아카데미 시절 연주 기회를 자주 마련해 줬는데 (완벽하게 치려고) 그렇게 긴장을 했어요. 밥도 안 먹고 잠도 못자고. 다른 아이들은 연주회 끝나면 ‘드디어 끝났다’고 좋아하는데 윤찬이는 항상 어디가 마음에 안 들었다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어요. 자기 성에 안 차면 운 적도 많습니다. 5학년 때 금호영재콘서트 데뷔 무대를 잘 마치고 나서도 울더라고요.”(웃음) 

 

그는 “윤찬이가 건강한 모습으로 오랫동안 좋은 음악을 들려주는 훌륭한 피아니스타가 됐으면 한다”며 “언젠가 함께 연주하면서 사제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시절 스승의 연주회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는 임윤찬. 김경은 제공

한편, 김경은은 다음달 16일 서울 한남동 일신홀에서 새 앨범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발매 기념 독주회를 연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마지막 제자 블라도 페를뮈테르(1904~2002)와 인연을 맺은 그가 라벨의 곡들로 엮은 ‘Ravel(2021)’, ‘드림스(Dreams, 2022)’에 이어 세 번째 정규 앨범인 ‘사운드스케이프’에는 현대음악 작곡가 세 명의 걸작이 담겼다. 필립 글래스(87)의 ‘메타몰포시스 I’과 ‘메타몰포시스 II’, 존 코릴리아노(86)의 ‘오스티나토에 의한 환상곡’과 ‘에튀드 판타지 1∼5’, 브라이언 필드(57)의 모음곡 ‘고통받는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열정’이다.

 

박사학위 논문을 ‘진은숙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한 연구’로 할 만큼 현대음악에도 애정이 많은 김경은이 세 작곡가 고유의 음향적 풍경을 묘사한 것이다. 특히, 지구 온난화를 경계한 브라이언 필드의 작품을 헌정받은 취지를 살려 앨범은 디지털 음원으로만 발매됐다. 

지난 18일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피아니스트 김경은이 예술의전당 영재아카데미 시절부터 가르친 첫 제자 임윤찬과의 인연 등을 들려주고 있다. 허정호 선임기자

현대음악을 즐기는 이유를 물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연구하는 걸 좋아합니다. 악보를 공부하고 해석할 때 궁금한 걸 작곡가에게 직접 물어보고 해소할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고 재미있어요.”


이강은 선임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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