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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
스스로 결정한 생의 가치와 믿음

무라타 사야카, ‘생존’(‘신앙’에 수록, 김재원 옮김, 은행나무)

어쩌다 간 모임에서 주고받은 대화가 종종 떠오르곤 한다.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가급인 사람들이 모여 저녁을 먹는 자리였는데 자신의 ‘미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와는 별개의 대화처럼 느껴져 멀거니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보고 물었다. 작가로서 나 자신의 미래 가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그날 일기를 보니 이렇게 써 놓았다. 환호 없이 소설을 써 오고 있다, 많은 독자도 없이, 희소가치도 없이, 그리고 미래 가치도 없이. 조금은 서글프고 허를 찔린 것 같기도 한 그 질문이 가끔 꿈에서도 들린다. 마음이 약해지고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 간다고 느끼는 그런 때.

조경란 소설가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을 펼치기 전엔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한다. 그녀의 소설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지거나 남겨 놓기 때문인데 특히나 그 강도가 좀 아프고 날카로워서이다.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입니까? 혹시 타인에게 규격화된 사회성을 강요하는 사람이 당신 아닙니까? 이렇게 바로 정면에서 묻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거침없이 저돌적으로. 그랬는데 단편 ‘생존’에서는 슬픔과 우수의 분위기가 먼저 느껴진다.

연인인 구미와 하야토는 ‘도쿄 생존율 상담 센터’를 찾아갔다. 상담사는 명문대를 나오고 대형 은행에 다니는 하야토는 A라 지금은 괜찮지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해서 살아가는 C 마이너스인 구미와 결혼하면 두 사람이 65세가 되었을 때의 생존율은 30퍼센트 밑으로 떨어진다고 말했다. 게다가 출산하면 아이의 생존율은 부부 수입에 따라 완전히 달라져서 15퍼센트 이하라고. 이 멀지 않은 소설적 세계에서 생존율이란 “65세에 살아 있을 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며 소득 수준의 예측과 비례해서 결정된다. 온난화나 지진 같은 재해도 포함돼 있어 “수입이 많은 쪽이 안전한 땅 위의 튼튼한 집”에서 살 수 있다. 초등학교 성적표에서부터 ‘생존율 랭크’가 표시돼 구미는 늘 C였다. 그러니까 원래부터 생존율이 낮은 사람들. 살아남기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공부해 더 나은 직업을 가져 생존율을 높이는 방법도 있지만 A와 D의 격차는 크고도 멀다.

C를 극복하고자 긴 시간 노력도 해 봤던 구미는 하야토에게 말한다. 차라리 D가 되려 한다고. 그렇다, 이 세계에는 자진 탈락 혹은 자진 선택으로 산에서 야인 생활하는 D들도 있다. “불안한 C와 젊은 D들”이 모인 야인 세미나에 다녀온 구미는 이런 생각에 이른다. 생존율이란 건 일종의 바이러스가 아닐까?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을 지배하고 침식시키는. 이 지점에서 독자는 구미와 함께 질문하게 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본능이 오직 생존만일까.

페이지를 넘기며 여러 문장 앞에서 마음이 덜컥 넘어졌다. 상담사가 이 젊은 커플에게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릴 적부터 거액의 돈을 들여 교육받게 할 필요가 있어요”라고 말할 때, 하야토에게 구애의 편지를 받은 구미가 “근데 저, 생존율 낮아요”라고 말할 때, “나의 아버지는 D”라고 구미가 부모를 떠올릴 때. 마음이 넘어진 문장과 단락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질문을 던지게 된다. D라는 생존율 랭크가 표시된 분명한 성적표를 받아든 사람처럼. D로 태어나 오랜 시간 D로 살았으며 앞으로도 D로 살아갈 나의 삶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생존’을 읽다가 다가올 올해의 날들을 곰곰이 짚어 보게 되었다. 더러는 사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살았던 많은 시간을 반성하듯. 내 삶을 지배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이 생존율만은 아니기를. 스스로가 만들고 결정한 생의 가치와 믿음 덕분에 환호 없이도, D여도 괜찮았다고 상기한다. 작가가 풀어놓은 의미 있는 질문들 속에서 깨닫는다. 이 디스토피아적 단편은 태어나면서부터 생존율이 낮은 사람들에게도 고유한 삶이 있다고 보여 주는 풍경이라는 것을.

작가는 ‘지구온난화와 사회 불평등의 상호 관계’라는 주제로 이 단편을 썼다고 한다.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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