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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두 세계 사이에서’ 느끼는 공감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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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17 14:00:00 수정 : 2024-02-16 15:4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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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스틸컷. 디오시네마 제공

 

지난 1월31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두 세계 사이’(감독 엠마뉘엘 카레르)는 낯설면서도 꽤 익숙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 사회나 노동 취약 계층에 대해 잘 모르지만, 그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사람 사는 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인 걸까? 

 

언뜻 보면 공존하기 힘들어 보이는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두 세계 사이에서’ 무심한 듯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는데, 공감하기 어렵지 않다. 그 이유를 좀 살펴보자.

 

- 강렬함과 잔잔함

 

영화는 화가 잔뜩 난 채로 거리를 걸어와 직업소개 사무소에서 불만을 쏟아놓는 크리스텔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리안의 시선에서 전개된다. 크리스텔이 걸어온 낙후한 거리, 무기력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사무소 안, 기계적인 태도의 직원들 모습에서 켄 로치의 ‘나, 다니엘 브레이크’(2016)의 초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크리스텔과 마리엘 모두 부당한 시스템에 강렬하게 대항하는 모습보다는 그들이 일하고, 즐기고, 웃고, 우는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정책, 절차 등등의 문제점은 직접적인 언급 대신 그로 인해 더욱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드러낸다. 그들은 힘든 와중에도 가족과 친구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진심이다. 그들은 불안한 경제적 상황 속에서 마냥 무기력하지 않다. 그래서 더 안쓰러워 보인다. 

 

디오시네마 제공.

 

- 거짓과 진실 

 

여기에 반전이 자리한다. 영화 초반부터 관객에게조차 숨긴 건 아니지만, 바로 마리엘의 실제 모습이다. 직업소개 사무소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던 마리안은 담당자에게 자신을 전업주부로 살다 이혼하고 홀로 이곳으로 이주했다고 소개한다. 그녀에게 소개되는 일은 ‘유지관리 담당자’, ‘청결 도우미’ 등으로도 불리는 청소부 일이다. 마리엘은 청소일 교육을 받으며 크리스텔을 다시 만나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 동료가 되고 점점 가까워진다.

 

이 영화를 보기 전, 영화 소개 글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던 마리엘의 정체는 고용 불안을 주제로 한 신작 집필을 위해 일종의 잠입 취재를 시작한 저명한 작가다. 그런데 영화의 내용이 상당히 전개될 때까지, 그러니까 마리엘이 점차 청소일에 익숙해지고, 친구들도 사귀게 될 때까지, 작가로서의 모습이 대놓고 등장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출판사에서 열띤 회의를 하며 전략을 짜는 등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다만 마리엘은 집에서 늘 책상에 앉아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그녀가 쓰는 글은 내레이션을 통해 들을 수 있는데, 일기를 쓰는 정도의 느낌이다. ‘내일은 그에게 이렇게 접근해야겠다.’ 식이 아니라, ‘이 선물을 오래 간직해야겠다.’ 식이다. 최저 임금, 평균 생활비, 정규직 취업까지의 기간 등의 단어가 종종 등장하지만, 언뜻 보면 구직에 진심인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 정도로 느껴질 수 있다. 

 

마리엘의 모습도 가식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특히 고생하며 가까워진 친구들과의 관계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일종의 ‘직업 체험’ 중인 마리엘은 점차 고민에 빠진다. 거짓으로 친구가 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진실하지도 못했으니, 과연 이해받을 수 있을까? 거짓과 진실을 극명하게 대립시키지 않아, 더욱 안타깝다.

 

사실 이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말을 잘한다. 영화 내내 수다와 대화가 이어진다. 그렇다고 모두가 소통하고 있는 건 아니다. 크리스텔의 분노에 찬 말, 사무소 직원의 판에 박힌 듯한 말, 그리고 자신이 보고 들은 이야기를 메모하는(내레이션으로 말하는) 마리안까지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 많은 이들의 말을 하지만, 말을 통해 온전히 소통하는 건 아니다. 서로 통했다고 믿지만 속고 속이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은 공허하기도 하지만, 더욱 공감하게 된다.

 

요즘 세계는 경제적 상황, 정치적 견해, 사회적 입장, 직업적 특성, 개인적 취향 등등에 따라 ‘양극화’, ‘다극화’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잔잔하지만 강렬하게 빠져들 수 있는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를 통해 국경, 시대, 성별, 직업 등을 모두 초월한 공존과 공감의 가능성과 한계를 느껴보길 바란다.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공연예술학과 교수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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