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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연휴 병원 지키다 순직한 ‘고 윤한덕 센터장’ 5주기... “응급의료 최후보루 사라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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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2-09 07:00:00 수정 : 2024-02-09 09: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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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한덕 응급의료센터장 순직 5주기
대통령·의료계 애도했지만 쉽게 잊혀져
닥터헬기·외상센터, 한국응급의료 구축
이국종 “필수의료 방파제, 최후의 보루”
한동훈 “누구를 기억하느냐 사회 품격”

“그 해(2019년) 가장 가슴 아픈 죽음이었다.”

 

2020년 1월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남겼다. 문 전 대통령은 “고 윤한덕 센터장이 국가유공자로 지정되어 다행이다. 유공자 지정을 한다고 해서 유족들의 슬픔이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국가로서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그날 의인들과 함께 해맞이 산행으로 새해 첫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이때 동행한 의인 7명 가운데는 윤 센터장의 아들도 포함됐었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1968년생·당시 51세)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은 2019년 2월4일 음력 설을 하루 앞둔 명절 연휴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 추정 시각은 1∼2일 전이다. 사인은 고도의 심장동맥경화에 따른 급성 심정지였다. 근로복지공단 조사 결과, 순직 전 3개월간 일주일 평균 121시간37분을 근무했고, 숨진 주에는 129시간30분을 일했다. 과로 기준인 주 60시간을 2배 이상 넘긴 수치다.

고 윤한덕 센터장이 생전 사용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내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간이침대. 고인이 순직 후 발견된 지 이틀 뒤 촬영한 사진이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제공

윤 센터장은 평소에도 주 6.5일을 일하고, 퇴근 대신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간이 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었다고 그의 평전 <의사 윤한덕>에 인터뷰한 동료들은 말했다. 문 전 대통령도 윤 센터장에 대해 “설 연휴에도 고인에게는 자신과 가족보다 응급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 먼저였다”며 “사무실 한편에 오도카니 남은 주인 잃은 남루한 간이침대가 우리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고 적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의자에 앉은 채 발견된 당시 윤 센터장의 책상에는 연휴 재난 대비책과 교통사고 환자 등을 다루는 권역외상센터 개선 방안, 미처 완성하지 못한 중앙응급의료센터 발전 방향에 관한 서류 등이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윤 센터장을 추모하는 직원들의 글에는 “이제 그 곳에선 일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많았다.

고 윤한덕 센터장이 생전 사용한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내 중앙응급의료센터장 사무실 모습. 고인이 순직 후 발견된 지 이틀 뒤 촬영한 사진이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제공

1998년 전남대 의대 1호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된 그는 육군 군의관을 거쳐 2002년 복지부 소속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기획팀장(의무서기관)으로 공직에 입문했다. 그는 2003년 이란 지진 구호를 위한 응급지원단으로 파견됐고, 2006년 스리랑카 쓰나미 피해 지원을 위한 의료지원단에도 참가했다.

 

2010년 응급의료지원팀장을 거쳐 2012년부터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을 맡아 17년간 한국 응급의료 시스템 발전의 개척자 역할을 해왔다. 그는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당시 아주대 권역외상센터장)과 함께 응급의료전용헬기(닥터헬기)를 도입했고, 권역외상센터 출범, 국가응급진료정보망(NEDIS) 구축, 응급의료기관 평가제도 마련, 응급의료 재난대응체계 구축 등 국내 응급의료 체계를 도맡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가 국내에 처음 발생했을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 대책반장을 맡아 음압 병실을 이틀만에 만들어내기도 했다.

 

윤 센터장은 2017년 6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한의사협회가 한국의 면적당 의사밀도 통계를 바탕으로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주장을 담은 포스터를 올리며 “우리나라에 의사 수가 많다는 걸 의사 말고 누가 동의한다고 생각하는 걸까?”라고 주장할 만큼 자신이 속한 의료계의 기득권보다 국민의 편익을 먼저 생각했던 인물이다.

이국종 국군대전병원장. 연합뉴스

“민족의 명절에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영웅을 잃었다”며 윤 센터장의 부고에 통읍했던 이 병원장은 9일 세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윤 센터장은 언제나 현장 의료진에겐 사방에서 들어오는 압력과 의료계 부조리의 파도를 온 몸으로 막아주던 방파제 같은 존재였다”며 “현장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이 있으면 우리가 제일 먼저 찾아가는 게 윤한덕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순직 전 윤 센터장이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겠다고 할 때,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부탁했던 게 후회된다”며 “자신의 뼈와 살이 깎여가는 고통을 참으며 필수의료를 묵묵히 지켜냈던 인물이다. 한국 응급의료, 나아가 필수의료를 지키던 마지막 보루 같은 존재가 사라진 지금 마음이 너무 헛헛하다”고 말했다.

 

윤 센터장의 장례식에는 여야 정치인과 의료계 등 각계의 조문이 이어졌다. 그는 사후 국민훈장 무궁화장, LG의인상, 세계응급의학회 특별상 등을 수상했고, 현재 경기 포천 광릉수목원에 안장돼 있다.

고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 국립중앙의료원 제공.

세상이 영웅을 잊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10월1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전남 목포)은 윤 센터장의 이름을 딴 콜사인(호출부호) ‘아틀라스’ 닥터헬기가 3년 만에 운용사 변경으로 매각되면서 기체에 있던 윤 센터장의 사진 등 유품이 유실됐다고 지적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지구를 떠받치는 거인 아틀라스에 비유해 고인의 헌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한 의미에서 유래한 콜사인이다.

 

김 의원은 국립중앙의료원이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유족이 낸 기부금 7000억원 포함 1조7000억원 규모로 서울 중구에 감염병 전문병원을 신축하는 것과 관련해 “의료원이나 박물관, 이런 데다가 그 영웅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라며 “윤 센터장의 이름을 딴 공간 하나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에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일시적으로 한 파트를 만들어 놓은 게 있고, 장기적으로 당연히 최대한 우리 의료원을 위해 애쓰시고 국가를 위해 애쓰신 분들의 기록들은 최대한 보존하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이런 분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고 이어가는 것, 이분들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사실 선진국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아직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은 의료원 신축 계획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일 윤 센터장의 모교인 전남대 의대 화순캠퍼스 의학도서관에서는 5주기 추도식 행사가 열렸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주관으로 과거 동료 등 수십명이 참석했지만 보건복지부 등 정부 측 참석자는 없었다고 한다. 정치권에선 윤 센터장의 동문인 민주당 이용빈 의원이 참석했고,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조화를 보냈다.

 

한 참석자는 통화에서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조화 하나 보내지 않았고, 정부나 국립중앙의료원도 별도의 추모 행사나 조전도 없었다”며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사람을 이렇게 빨리 잊어버린다는 게 너무 안타깝고 씁쓸하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전남 화순군 전남대 의대 의학도서관에 윤한덕 센터장을 추모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조화가 놓여 있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제공

한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오늘(2월2일)은 2019년 설날에 과로로 돌아가셨던 윤한덕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5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이 나라 응급의료체계를 반석 위에 올려놓으신 분이셨고, 공익 위해 본인 모든 것 바치신 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국종 선생님(국군대전병원장)과 함께 닥터헬기를 만드신 분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어떤 사회가 누구를 배출했느냐 못지않게 누구를 기억하느냐도 품격을 말해준다”며 전날 순직한 문경소방서 119구조구급센터 김수광 소방교와 박수훈 소방사에 이어 윤 센터장 이름을 차례로 언급하며 “이런 분들을 기억하는 정치를 우리 국민의힘이 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다짐했다.

지난 2일 전남 화순군 전남대 의대 의학도서관에 고 윤한덕 센터장의 5주기를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윤한덕기념사업회 제공

윤한덕기념사업회는 지난 2일 제3회 윤한덕상에 노영선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겸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의료빅데이터전략팀장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노 교수는 중증·응급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할 수 있는 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를 고안하고 교통사고 사망률에 관한 연구를 통해 고속도로 뒷좌석 안전띠 의무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상은 한국 응급의료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한다. 지난 1회 수상자는 초대 질병관리청장을 지낸 정은경 서울대 의대 교수, 2회 수상자는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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