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은 어떤 시계를 착용할까.
이 주제는 시계 애호가 뿐만 아니라 ‘시계는 그저 사치품’이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나타내는 이들에게도 끊이지 않는 단골 주제다. 한국 뿐만 아니다. 당장 유튜브에 ‘부자들 시계’로 검색하면 관련 콘텐츠 수 십개 이상이 쏟아질 정도다.
부자들 시계 주제의 기사 역시 새롭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사골 국물처럼 우려도 우려도 질리지 않는 소재이기에 잘 알려진 부자들의 시계와 부자까지는 아니지만 취재하면서 만났던 고액 연봉자의 시계들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찐’ 부자들은 비싼 시계를 차지 않는다
소위 '찐' 부자들이나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사람들은 값 비싼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절반의 사실이다.
‘시계=사치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한 때 단골로 내세웠던 인물은 손석희 전 JTBC 대표이사 사장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손석희 전 사장의 시계는 일본 시계브랜드인 카시오(Casio)의 전자 메탈시계다. 모델명은 ‘A168WA’인데 ‘손석희 시계’로 더 잘 알려져있다. 가격은 무려 치킨 한 마리 가격인 3만원 이하. 이 시계는 같은 부서의 기자 한 명도 애용하는 시계이기도 하다.
손 전 사장이 이 시계를 어떠한 계기로 착용하게 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초 단위로 정확한 시간을 확인해야하는 방송 특성상 오차가 없는 전자시계를 선택했다는 의견이 많다. 또한 업계에선 손 전 사장 역시 시계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손 전 사장이 검소해서 카시오 전자시계를 착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시계에는 관심이 없더라도 다른 부분에서는 소비를 아끼지 않을 수도 있는 법이다. 당장 손 전 사장의 차는 2017년 기준 국내 최고급 승용차인 ‘제네시스 EQ900’이다. 시계 하나로 그 사람이 검소한지 사치스러운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시오의 전자 메탈시계는 면세점 듀티프리쇼퍼스(DFS) 공동 창업자인 척 피니가 애용한 시계로도 유명하다. 그는 평생 번 재산인 약 7조2000억원을 기부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있는데, 그가 평생 애용했던 시계는 바로 카시오의 ‘A168WA’ 전자시계다.
또한 그는 “부(富)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써야한다”며 항상 검소한 삶을 살았는데, 이 사람이야 말로 카시오 전자시계가 가장 그를 잘 나타내는 시계가 아닌가 싶다.
‘기부’에서 둘째라면 서러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역시 카시오 시계를 주로 착용한다. 빌 게이츠의 시계는 별명이 ‘흑새치’로 알려진 카시오 ‘MDV-106’ 모델이다. 가격은 10만원이 넘어가지 않는다. 카시오의 ‘흑새치’는 다이버 시계 입문용으로 훌륭하다는 평을 받는 시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가장 부자인 것으로 알려진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시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 회장은 공식석상에 시계를 착용하지 않고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의 아버지인 이건희 전 회장은 평소 시계에 대해 애착을 드러낸 것과 대조적이다.
◆‘찐’ 부자들은 비싼 시계를 좋아한다
그렇다고 ‘찐’ 부자들이 항상 검소한 시계를 착용하는 것은 아니다. 빌 게이츠의 사례는 손에 꼽는 부자이자 투자의 귀재라는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의 시계로 반박 가능하다.
워런 버핏의 시계는 롤렉스(Rolex)의 데이데이트(Daydate) 금장 모델이다. 가격은 1만4750달러(약 2000만원). 워런 버핏은 평생 롤렉스 데이데이트를 애용했다고 알려졌는데, 현재 그의 재산이 약 158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한 개의 시계만 사용했다는 건 오히려 검소하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또한 글로벌 유통기업 아마존의 CEO 제프 베이조스의 시계는 최초로 달에 간 ‘문워치’(MoonWatch)로 알려진 오메가(Omega)의 ‘스피드마스터’(SpeedMaster) 모델이다. 또한 현재 세계 최고 부자로 알려진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때때로 착용하고 나오는 시계는 오메가의 ‘씨마스터’(Seamaster) 모델이다. 두 모델이 각각 1000만원을 전후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프 베이조스와 일론 머스크의 재산에 비해 검소한 것 같기도 하다.
반면 산업계가 아닌 금융업계의 부자들은 비교적 고가의 시계를 착용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CEO는 한화로 약 8억원 이상하는 파텍필립(PatekPhilippe)의 ‘미닛 리피터 퍼페츄얼 캘린더’ 모델을 사용하며,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인 조지 소로스도 파텍필립의 ‘아쿠아넛’ 모델을 착용한다.
◆그렇다면 북한 김정은의 시계는
전반적으로 세계적인 부자들이 착용하는 시계들을 살펴봤는데,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산업계의 부자들은 비교적 검소한 시계나 실용적인 시계를 애용하는 반면, 금융업계 종사자들은 상대적으로 럭셔리한 시계를 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취재를 하면서 만났던 국내 대기업의 임원 중 명품시계를 착용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대부분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거나, 아예 스마트폰을 시계 대용으로 사용했다. 가뭄에 콩 나듯 발견한 명품스러운 시계는 태그호이어(TagHeuer)의 ‘포뮬러1’(Formula1) 모델 정도. 포뮬러1 모델은 명품시계의 ‘엔트리’(Entry)인 태그호이어에서도 엔트리 모델이다. 가격도 200만원 이하다.
반면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면 그들이 착용한 시계를 먼저 곁눈질로 확인하는게 습관이 될 정도다. 롤렉스는 평범하고 예거 르쿨트르(Jaeger-Lecoultre)도 흔했다. 몇 달 전에 만났던 한 금융인은 롤렉스를 사러 갔는데 마음에 드는 모델이 없어서 브레게(Breguet) ‘클래식’ 모델을 사고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투자자를 만나는 일이 잦고, 이를 설득해야하는 경우가 많은 금융업계 특성상 고가의 시계로 자신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공장이나 건설 등 거친 환경에서 근무를 하는 일이 많고, 실용성을 강조하면서 조직 위계가 엄격한 산업계는 시계는 그저 시간을 보여주는 도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시각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그다지 궁금하지는 않지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시계는 IWC의 ‘포르토피노’(Portofino)의 금장 모델이다. 가격은 2000만원 조금 아래. 김정은은 공식 석상에서 IWC 시계를 자주 착용하고 나왔는데, 그가 스위스에서 유학할 때 부터 관심을 가지고 애용했던 시계 브랜드로 알려졌다. 북한의 1인당 GDP가 600달러가 안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꿈도 꾸지 못할 고가의 시계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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