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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르고뉴 와인은 왜 어려울까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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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2-12 17:52:47 수정 : 2023-12-12 17: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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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혁명·나폴레옹 ‘상속재산 동일 분배’ 칙령으로 포도밭 잘게 쪼개져/같은 마을이라도 포도밭별·생산자별 품질 다 달라/백은주 교수 국내 첫 ‘부르고뉴 와인’ 지침서 발간

 

부르고뉴 와인.    최현태 기자

 

포도밭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담은 그림 같은 영상은 잔잔한 여운을 남깁니다. 스크린 자막이 올라가면 당장 포도밭으로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는 2018년 개봉된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프랑스어 원제 우리를 이어주는 것·Ce qui nous lie, 영어 원제 부르고뉴로의 귀환 Back to Burgundy)’입니다. 스토리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가족을 등지고 세상을 떠돌던 3남매의 장남 장(피오 마르마이)이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와 동생 줄리엣(아나 지라르도), 제레미(프랑수아 시빌)와 10년 만에 재회합니다. 아버지의 위대한 유산인 포도밭이 매각 위기에 처하기도 하지만 삼남매는 똘똘 뭉쳐 포도밭을 지켜내고 최고의 와인을 빚으며 따뜻한 가족애를 확인합니다. 세드릭 클라피쉬 감독은 1년 동안 매주 같은 시각과 장소에서 사진 한장과 1분짜리 영상을 찍는 기법으로 CG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포도밭의 사계절을 있는 그대로 담아냅니다. 그렇다면 영화처럼 부르고뉴 와인은 아름답기만 할까요.

 

부르고뉴 코트 도르 포도밭. 부르고뉴와인협회

 

 

◆잘게 쪼개진 포도밭

 

영화에 등장하는 포도 수확이 끝난 뒤 벌어지는 신나는 축제는 와인에 흠뻑 젖고 싶은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합니다. 영화에선 부르고뉴가 이처럼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소비자에게 부르고뉴는 까칠한 사람처럼 다가가기 매우 어려운 대상입니다. 품종은 간단합니다.  거의 샤르도네, 피노누아 두 가지 단일 품종으로 빚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알리고떼와 가메 정도를 추가하면 부르고뉴 품종은 마스터합니다.

 

하지만 부르고뉴 와인은 알면 알수록 어려워집니다. 같은 포도밭을 수많은 생산자들 잘게 쪼개서 나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같은 마을이라도 손바닥만한 포도밭 이름에 따라 와인 품질이 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포도밭이라도 생산자에 따라 품질이 들쭉날쭉합니다. 한술 더 떠 같은 생산자라도 포도밭이 어디냐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입니다. 심지어 포도밭이 1m만 달라도 와인맛이 달라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랍니다. 이 때문에 부르고뉴 와인은 ‘뛰어난 생산자+최고의 포도밭’이라는 교집합을 찾는 복잡한 수학공식처럼 여겨집니다.

 

로마네콩티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부르고뉴 포도밭이 잘게 쪼개진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귀족과 교회가 무너진 것이 결정적인 계기입니다. 부르고뉴는 교회가 크게 세력을 잡고 있던 지역인데 혁명후 교회와 수도원 소유 땅들이 농부들에게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돈이 없는 가난한 농부들이 조금씩 땅을 사서 와인을 만들면서 그나마 작은 포도밭을 여러 생산자가 굉장히 더 작은 사이즈로 나눠 갖게 된 겁니다. 1804년 시작된 ‘나폴레옹 코드’로 불리는 법령도 한 몫 합니다. 당시는 장자 계승 전통이 매우 강하던 시절이라 첫째한테 모든 재산을 몰아주고 나머지 형제들은 알아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모든 자녀들에게 재산을 동일하게 분배하라는 법령을 만듭니다. 당연히 부르고뉴뿐 아니라 프랑스 전체에 적용되는 법령입니다. 그런데 유독 부르고뉴에만 큰 영향을 줍니다. 부유한 보르도 샤토들은 형제들끼리 분쟁하면서 땅을 쪼개서 나눠 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유명한 샤토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이유랍니다. 

 

뮈지니 포도밭 전경.           최현태 기자

 

 

1847년에는 루이 필립 왕이 쥬브레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빈야드 이름을 추가할 권리를 허용해 쥬브레 샹베르탱이 탄생했고 이어 모레 생 드니, 샹볼 뮈지니, 알록스 코르통, 퓔리니 몽라셰, 샤사뉴 몽라셰 등이 잇따라 생겨납니다.

 

여기에 포도밭마다 달라지는 다양한 미세기후와 토양, 즉 떼루아도 부르고뉴 와인이 작은 포도밭 마다 달라지게 하는데 영향을 미칩니다. 원산지통제명칭인 AOC(Appellation d'Orgine Controlee)도 매우 복잡합니다. 예전에 100개에 달했던 AOC가 줄었지만 현재도 84개나 됩니다. 가장 큰 지역단위 AOC인 레지오날급이 7개, 더 작은 마을단위인 빌라쥐가  44개에 달합니다. 이 빌라쥐에서 최고급 포도밭인 그랑크뤼 AOC가 33개이며 AOC가 아니지만 밭이름을 레이블에 표기할 수 있는 프리미에 크뤼는 무려 640개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랑크뤼와 프리미에 크뤼의 이름을 지닌 포도밭들을 ‘클리마(Climat)’라고 부르며 클리마 안에서도 더 작은 밭인 ‘리 외디(Lieux-dits)’가 여러개 존재합니다. 보르도처럼 생산자만 알면 되는 다른 와인과는 달리 세세한 밭까지 알아야 하니 이쯤 되면 와인을 좀 마셨다고 하는 이들도 머리에 쥐가 날 정도랍니다. 

 

백은주 교수.

 

 

◆국내 최고 부르고뉴 전문가 백은주 교수

 

이처럼 복잡한 부르고뉴 와인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국내 첫 부르고뉴 와인 지침서, ‘부르고뉴 와인’(한스미디어)이 출간됐습니다. 이 책은 ‘한 권으로 읽는 부르고뉴 와인 마스터 클래스’입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안개가 걷히듯 복잡하게만 느껴졌던 부르고뉴 와인이 명확하게 뇌리에 박히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저자인 백은주 교수가 ‘부르고뉴 와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와인교육가이기 때문입니다. 백 교수는 부르고뉴 대학교에서 와인 양조를 전공(DU, Diplome de Technicien en Oenologie)하고 경희대학교에서 외식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부르고뉴의 도멘 드 라 부즈레, 루 뒤몽, 샤토 몽투스 등 여러 도멘에서 포도 재배 및 와인 양조 지식을 쌓았고 현재 와인 교육가 및 와인 전문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명한 ‘더 와인 바이블’도 공역했습니다. 경희대학교 관광대학원 와인·워터·티 마스터 소믈리에 전문가 과정 교수, 르 꼬르동 블루 숙명아카데미 프랑스와인 전문가 과정 책임 강사, 대림대학교 호텔조리학부 겸임 교수를 거쳐 현재 국제와인전문가 과정인 WSET(Wine and Spirit Education Trust) 인준 와인 강사, (사)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와인 교육 및 자격 검정 부회장으로도 활동중입니다. 

 

◆국내 첫 부르고뉴 와인 지침서 

 

책은 부르고뉴 기초 지식부터 ‘황금의 언덕’으로 불리는 코트도르(Cote d’Or), 즉 코트 드 본(Cotes de Beaune)과 코트 드 뉘(Cotes de Nuits)의 중요한 빌라쥐들의 떼루아 특징, 그랑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꼭 알아야할 대표 와인들과 함께  클리마가 표시된 상세한 마을별 지도까지 수록해 부르고뉴 와인을 어렵게 여기는 와인애호가는 물론 와인업계 관계자, 와인전문가들에게 좋은 길잡이거 될 것으로 보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마을별 클리마 리스트와 포도밭 사이즈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인덱스를 특별부록으로 담아 이 책 한권이면 더 이상 부르고뉴 와인 정보는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백은주 교수. 최현태 기자

 

 

파트1 기초지식편에선 클로, 클리마, 리외디의 차이를 시작으로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 기후, 토양, 품종과 그랑크뤼, 프리미에 크뤼 등 복잡한 AOC 등급체계 와인의 등급을 알기 쉽게 소개합니다. 또 부르고뉴 와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정보와 라벨 읽는 법 등을 다양한 이미지 및 도표를 활용해 알기 쉽게 해설했습니다. 파트2는 부르고뉴 최북단 산지 샤블리를 시작으로 코트 드 뉘의  주브레 샹베르탕, 모레이 상 드니, 샹볼 뮈지니, 부조, 본 로마네, 뉘 상 조르주를, 코트 드 본의 알록스 코르통, 사비니 레 본, 쇼레이 레 본, 본, 포마르, 볼네이, 뫼르소, 퓔리니 몽라셰, 샤사뉴 몽라셰 마을의 상세한 정보를 담았습니다. 특히 타계한 ‘부르고뉴의 전설’ 앙리 자이에(Henri Jayer)와의 만남, 도멘 드 라 로마네콩티 방문 등 다양한 경험담도 흥미진진하게 소개해 한번 책을 잡으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손을 놓을 수 없습니다.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olar),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등을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selles) 심사위원, 소펙사 코리아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을 역임했고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보르도, 부르고뉴, 상파뉴, 루아르, 알자스와 이탈리아,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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