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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8월14일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이 삽시간에 암흑천지로 변했다. 대정전이 7시간가량 이어지면서 항공기와 지하철이 멈춰 섰고 휴대전화도 불통됐다. 뉴욕 등 대도시조차 아수라장이 됐다. 수돗물 공급이 끊겼고 하수가 거리로 역류했다. 촛불로 인한 화재가 급증했고 일부 거리에서는 약탈과 강도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경제적 피해가 60억달러에 달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도 예기치 않은 정전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는 2011년 9월15일 최악의 정전사태를 겪었다. 전국 656만가구가 피해를 봤고 약 3000명의 시민이 승강기에 갇혔다. 16개 산업단지에 입주한 5775개 기업도 생산 차질을 빚었다. 재산피해액만 628억원에 달했다. 이후 한국은 대대적인 전력설비투자에 나서 전기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전기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정전도 드물다. 지난해 가구당 정전시간은 9.1분으로 프랑스(49분), 미국(44분), 영국(38분) 등 주요 선진국보다 현저히 낮다.

그런데 수년 사이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정전 건수가 2018년 506건에서 지난해 933건으로 4년 사이 84%나 급증했다. 급기야 지난 6일 울산에서 약 2시간 가까이 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15만5000여가구에 전기공급이 중단됐다. 6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원인은 28년간 사용한 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가 파손된 탓으로 추정된다. 사용 연한이 20년인 개폐기를 8년 넘게 방치한 인재다. 전력위기의 전조가 아닌지 걱정이다.

울산 정전은 부실의 늪에 빠져 투자 여력이 바닥난 한국전력의 경영난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전력망 시설 노후화와 송·변전 시설의 과부하로 대정전 사고가 갈수록 잦아질 공산이 크다. 한전은 올 5월 발표한 25조원 규모의 자구안에서 몇몇 전력시설 건설을 늦춰 2026년까지 1조3000억원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10차 장기 송·변전 설비계획에 따르면 2036년까지 전력 수요를 충당하려면 송전선로가 지금의 1.6배로 늘어야 하는데 필요한 비용 56조원을 한전이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더 늦기 전에 팔수록 손해가 나는 ‘역마진’을 해소하고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도 확 바꾸는 게 시급하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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