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까지 198개국 7만명 참석 최대 규모
‘1.5도 목표’ 파리협약 첫 중간점검 자리
선진국, 개도국 도울 기후재원 최대 쟁점
알자지라 “각국 이해관계 성토의 장 우려”
UAE 국영석유회사 CEO가 의장 맡아
‘화석연료’ 언급 미미 저탄소 의지 의문
국제사회 “석유·가스 박람회 변질될 것”
BBC “환경보다 국가 이미지 개선 이용”
UAE·美·英·獨·日, 4.2억弗 피해기금 약속
전문가들 “지원액 태부족… 수십억弗 필요”
동유럽서 열 내년 개최국가 선정도 난항
EU 회원국 불가리아 출사표에 러 반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8)가 아랍에미리트(UAE) 최대 도시 두바이에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개막했다.
올해 지구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을 보내며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컸던 만큼 COP28도 최대 규모로 열렸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COP28이 진행되는 13일 동안 198개국에서 7만명에 달하는 대표단이 참석한다. 신문은 국제사회가 1994년 UNFCCC를 발효한 이듬해부터 코로나19 때를 제외하고 매년 한 차례씩 열었던 당사국총회(COP) 중 이번이 가장 큰 규모라고 덧붙였다.

주요 쟁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첫 중간 점검인 ‘전 지구적 이행점검’(Global Stocktake·GST)이 대표적이다.
당시 전 세계 195개국 당사국은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제한하고자 노력하자고 약속했는데, GST는 이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미진했던 부분을 규명하고 앞으로의 의무를 강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UNFCCC는 GST를 “과거를 점검하고 미래를 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후재앙의 벼랑 끝에 선 국제 사회는 COP28에서 GST 외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기후변화 피해가 큰 개발도상국을 돕기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은 협상에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개막 첫날부터 공식 출범 합의가 이뤄지면서 기대감도 커졌다. 지금까지 UAE, 독일, 영국, 미국과 일본이 총 4억2000만달러(약 5483억원) 규모의 기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여러 경제·정치적 관계가 얽혀 있는 COP28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시선도 여전히 존재한다. 아랍 매체 알자지라는 “COP28이 각국의 이해관계를 성토하는 자리로 변질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COP28 의장국·의장 모두 그린워싱”
COP28의 개최국인 UAE에선 화석 연료 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한다. 지난 1월 UAE는 자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 아드녹(ADNOC)의 술탄 아흐마드 자비르 최고경영자(CEO)를 COP28 의장으로 지명했다.
환경단체와 기후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이라고 비판했다. 파스코 사비도 기업유럽관측소 연구원은 “COP28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회의가 아니라 석유와 가스 산업 무역 박람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디언이 4월 자비르 CEO가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의 석유·가스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보도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그 규모만 약 75억배럴에 달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넷제로(탄소 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이 중 약 90%는 사용해선 안 되는 자원이다.
신문은 아드녹이 향후 몇 년에 걸쳐 석유 약 76억배럴을 생산해 전 세계 5위 수준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아드녹의 대변인은 가디언에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인구가 85억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아드녹은 가능한 한 가장 탄소 집약적인 석유 자원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UAE의 기후 관련 목표와 정책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결국 UAE는 화석 연료라는 표현마저 애써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가디언은 UAE가 내부용으로 작성한 COP28 관련 언론 대응 가이드라인 문서를 입수해 8월 보도했는데, 이 문서에서 유일하게 화석 연료가 언급된 부분은 “UAE는 화석 연료 탄소 집약도를 줄이면서 미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문장이 전부다. 이마저도 전문가들은 석유·가스의 탄소 집약도는 연료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만을 측정한 결과로, 실제 연료가 연소할 때 배출되는 유해 물질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영국 BBC방송은 UAE가 환경 보호를 위한 변화보다 의장국으로서의 자격을 홍보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UAE가 석유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 모델로 전환을 꿈꾸며 COP28 의장국 선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방송은 부연했다.
인권단체 페어스퀘어의 니컬러스 맥기한은 “이번 COP28의 궁극적인 목표는 UAE의 평판과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문제는 돈, 돈, 돈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두바이에서 일어날 폭풍은 모두 돈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재난의 해법을 논의해야 할 자리가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돈거래’ 장으로 변할 수 있다는 우려다.
FP는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총회(코펜하겐 총회)에서 선진국이 개도국에 2020년까지 매년 1000억달러(약 131조원)의 기후 재원을 제공하기로 약속한 것을 언급했다. 이 약속은 지난해 선진국의 기후 재원 제공 규모가 1000억달러를 넘기면서 처음으로 이행됐다.
COP28에선 2025년 이후의 기후 재원(2차 기후 재원)을 어떻게 동원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다.
다만 신문은 당장 이번 총회에서 2차 기후 재원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최근 IEA는 선진국이 매년 공공 및 민간 자원에서 2조7000억달러(약 3526조원)를 기후 재원으로 동원해야만 개도국의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데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FP는 액수가 액수인 만큼 선진국과 개도국의 대립이 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손실과 피해 기금을 둘러싼 잡음도 여전하다. 지난해 이집트에서 열린 COP27에서 큰 틀의 도입 합의가 도출된 이 기금은 개도국이 겪는 피해에 대해 선진국의 책임과 보상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를 보완할 자금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1990년대부터 논의됐지만 선진국들의 반대로 답보 상태를 거듭한 바 있다.

이번 COP28에선 의장국 UAE가 주축이 돼 개막 첫날 공식 출범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뤘지만, 지원액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의 앤 해리슨 기후 고문은 이날 “실제로 필요한 것보다 훨씬 부족한 액수”라며 “지난해 화석 연료 회사들이 계속해서 기후를 파괴하면서 얻은 엄청난 초과 이익을 고려하면 수십억달러가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 프로젝트 조달 기구(UNOPS)의 조르즈 모레이라 다 실바 전무 이사도 유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개도국에 전달돼야 할 지원액은 매년 40억∼60억달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금이 지금까지 확보한 액수의 10배 이상 규모다.
◆COP29 인질 삼은 러시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COP28에서 내년 총회 개최지를 논의하는 데 러시아가 훼방을 놓고 있다고 지난달 23일 보도했다.
COP는 그간 유엔의 5대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개최됐다. 내년 COP29는 동유럽에서 열릴 차례라 23개 동유럽 국가가 합의해 개최지를 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COP29 개최 의사를 밝힌 국가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인 불가리아와 EU 비회원국인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다.
러시아는 불가리아 등 EU 회원국의 COP 개최를 반대하고 나섰다. 율리안 포포브 불가리아 환경부 장관은 “러시아가 막후에서 EU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다양한 사안에서 자신들을 차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며 “이를 명분으로 러시아가 보복하고 있다”고 폴리티코에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러시아는 올해 초 동유럽 각국 대표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EU 소속 국가의 COP 개최를 막겠다고 강조했다.
국제 환경 싱크탱크 E3G의 기후변화 외교 전문가 톰 에번스는 “러시아가 이 협상을 거의 인질로 삼기로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EU 비회원국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은 올해 무력 충돌을 벌였다. 나빠질 대로 나빠진 관계에 양국은 상대국의 개최를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이렇게 차기 개최지 선정에 난항을 겪으면서 통상 개최국이 맡는 의장국이 내년엔 공백 상태로 남아 기후변화 협상이 발목 잡힐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포포브 장관은 이 같은 논란으로 COP28에서 참가국들이 실제 사안에 대한 협상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의가 흐트러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훼방은 전체 COP 절차에 타격을 입히고 있으며 불가피하게 협상의 질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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