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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5월 모처럼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코로나19 대유행기 이전과 비교해 가장 큰 차이는 언어 장벽이 낮아진 점이었다. 휴대전화기 번역 앱의 녹음 버튼을 눌러 하고자 하는 말을 하면, 문자 번역에 음성 전환까지 가능했다. 복잡한 식당 메뉴판도 번역 앱으로 사진을 찍으면 몇 초 안에 한글로 바뀌었다. 세상 편해졌음을 느꼈다.

집에서는 음성 인식 스피커로 날씨를 확인하고 음악이나 라디오를 튼다. 녹음만 해두면 문자로 변환해주는 앱이 있으니, 인터뷰할 때 받아치느라 고생할 필요도 없다. 누구는 취약점을 자동으로 분석해주는 앱으로 토익 공부를 한단다. 인공지능(AI)은 어느새 우리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1년 전 미국 오픈AI가 대화형 AI 서비스 챗GPT를 내놓은 이후 AI는 전 산업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매년 이맘때면 세계 유수의 사전이 내놓는 ‘올해의 단어’도 AI가 평정할 태세다. 영국 콜린스사전은 11월2일 ‘AI’를 2023년의 단어로 선정했다. 콜린스는 AI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한 인간 정신 기능 모델링”이라고 정의하면서 “컴퓨터가 갑자기 가장 인간적인 영역인 언어의 전문가가 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라고 되물었다. AI 기술 혁신에 대한 경탄과 점점 더 인간처럼 진화해가는 AI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묻어난다.

열흘쯤 지나 영국 케임브리지사전은 ‘hallucinate’(환각)를 올해의 단어로 꼽았다. ‘건강상태나 약물복용 등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거나 냄새를 맡는다’는 뜻의 환각은, 챗GPT 등이 잘못된 정보를 생성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됐고 이는 최근 AI 담론의 정곡을 찌른다는 이유에서다.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은 알고리즘이 학습하는 정보만큼만 신뢰할 수 있으니 권위 있는 정보를 생성하려면 인간의 전문지식이 중요하고, 이런 AI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에게는 비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케임브리지는 지적했다.

최근 미국 메리엄웹스터사전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authentic’(진짜)’을 선정했다. 불과 몇 초 만에 감쪽같은 글, 사진, 영상을 만들어내는 AI 시대가 오히려 ‘진짜의 위기’를 불렀다는 설명이다. AI로 만든 미 국방부 청사 폭발 사진이 주가를 요동치게 하고, AI 사진이 세계적 사진전의 심사위원들까지 속이는 세상이니 괜한 걱정이 아니다.

며칠 전 개발론자들의 승리로 끝난 오픈AI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 해임 번복 사태는 이런 우려를 더 키운다. ‘인류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AI 개발’을 기치로 내걸고 비영리단체로 출범해 2019년 자금 조달을 위해 영리법인 자회사를 세운 뒤에도 ‘정해진 한도 이상의 수익은 안전한 범용 인공지능(AGI)을 개발하는 데 재투자해 사회적 사명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던 조직이 이제는 이윤 추구 일변도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는 인간이 비판적 사고로 통제·적응하는 것보다 더 빨리, 더 깊이, 더 넓게 일상을 파고들지 않을까. 이미 인간의 지식노동을 AI가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인지라 사전 출판사들이 내놓은 찬사와 우려 가운데 후자 쪽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유태영 국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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