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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민주주의를 꽃피운 페리클레스의 통치 시절 건립된 서양 건축의 원형이자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유네스코는 인간 중심의 사상을 구현한 가장 중요한 건축물로 여겨 세계문화유산 1호로 지정했다. 신전은 지난 2500년 동안 숱한 약탈과 파괴에 시달려 왔다. 고대 그리스 멸망 이후 기독교가 퍼지면서 교회로 쓰였고, 15세기 이후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모스크(이슬람교 예배당)로 변했고 화약 창고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 신전을 가장 심각하게 약탈·훼손한 인물은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절 아테네에서 대사를 지낸 토머스 엘긴 경이 꼽힌다. 그는 10년간 대리석 벽면과 기둥, 조각품 253점을 떼어내 영국으로 실어 날랐다. 이는 신전 대리석 조각의 약 40%에 해당한다. 엘긴은 자신의 저택을 꾸미려다 막대한 비용으로 파산 위기에 처하자 6만2440파운드를 받고 영국 정부에 넘겼다. 이후 이 유물은 ‘파르테논 마블스(marbles·대리석)’ 혹은 ‘엘긴 마블스’라 불리며 200년 넘게 대영박물관의 대표 유물로 자리 잡았다.

그리스는 1983년부터 유물 반환을 요청해 왔다. 올 초 대영박물관 측이 “건설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밝혀 장기 대여 형태로 협상이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최근 반환 갈등이 다시 격화됐다. 그리스 총리가 “모나리자 작품을 절반으로 나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과 영국 박물관에 둔다면 관람객들이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겠냐”며 반환을 압박했다. 이에 발끈한 영국 총리는 예정됐던 정상회담을 수 시간 앞두고 취소했다. 영국은 자국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 한 대여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 탓에 수난이 끊이지 않는 신전의 운명이 안타깝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해외 유출 문화재는 27개국, 22만9655점에 달하고 이 중 일본(9만5622점)과 미국(6만5242점)에 전체의 70%가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문화재 환수 실적은 미미하고 의지도 박약해 보인다. 환수를 위한 실태 조사가 20% 남짓에 불과하고 예산도 쪼그라든다. 민족정신과 정체성이 담긴 문화재 찾기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야 할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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