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상· 하반기 백일장 열어 시 작품 시상
“시 읽고 시 쓰는 시의 일상화를 통해
각자의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밝혀
IT 회사에서 20년간 백일장을 열어 직원들이 출품한 그 작품들을 한데 모아 시집으로 묶어냈다. 최근 출간된 ‘그리움이 멈추면 섬이 된다’(W미디어)에는 (주)컨피테크 직원 59명의 시 섬, 사랑, 하늘 등을 주제로 한 135편이 수록돼 있다.
(주)컨피테크는 차세대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본이 되는 커넥티드카 서비스 및 무선인터넷 솔루션과 에듀테크의 기반이 되는 e러닝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술기반 IT 융합기업이다. 대부분의 IT 회사가 그렇듯이 직원들이 대부분 ‘공대 출신’이다. 이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거의 혼자서 노트북과 씨름한다. 대화도 별로 없다. 엉덩이로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시 하고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이런 개발자들이 모인 회사에서 직원들이 오랜 기간 백일장을 열어 시심을 키우고 시작품을 내고 시의 일상화를 다져왔다는 것이 이채롭다.

(주)컨피테크 황보창환(61) 대표는 24일 기자와 만나 “(대부분의 직장이 그렇듯) 직원들이 재미없고 무미건조하게 여기는 회사생활이 아닌 꿈, 재미, 놀이와 같은 단어들이 떠올릴만한 직장여건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택한 것이 시를 읽고 쓰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마침내 자신의 시가 담긴 첫 시집을 갖게 되면서 시를 향한 작은 성취나 동기부여가 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황보 대표는 “처음에는 프로그램을 짜고 코딩을 하는 직원들에게 개인 화분을 하나씩 사다 주며 ‘잘 키우라’는 지시(?)를 했다. 비록 식물이지만 화분에 물을 주면서 한 생명을 정성 들여 키우는 감성 개발자로 변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후 시를 생각해 냈다. 사내 독서토론을 통해 시집을 돌려 가며 읽기 시작했다. 시는 길지가 않아 직원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어 다가가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여겼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매년 섬 지역 등으로 워크숍을 가 백일장을 연다. 워크숍 일정이 끝나고 시제 발표와 함께 직원 모두가 한 시간 정도 자연을 벗 삼아 시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사색에 잠겨 하늘도 쳐다봤다가 끙끙대며 혼자서 시를 썼고, 심사를 거쳐 시상까지 했다. 백일장은 워크숍 때마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어졌다. 시집에는 경리직과 디자이너를 뺀 모든 직원이 이름을 올렸다. 백일장에서 당선된 작품들은 ‘수다방’으로 불리는 회사 회의실 벽에 전시한다. 공대 출신의 직원들이 시를 향한 열정이 여간 뜨거운 게 아니다.

황보 대표는 “20년 전 백일장을 직원들에게 제안하자 다들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어려워했다. 처음에는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거의 초등학교 수준이었다. 삼행시나 장난기가 가득한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시와 친해지고 시가 나아지고 있어 괜찮은 시들이 출품되기도 했다. 직원들이 어렵게(?) 쓴 시가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좀 더 길게 반향(反響)을 이어갈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 시화전을 열었고 그 작품 중에 우수작을 뽑아 시상하는 백일장을 했는데 그렇게 한 게 스무해가 됐다”고 밝혔다.
황보 대표는 시집에 수록된 대표작 한 편을 직접 들려줬다.

커넥티드팀의 김정원 과장의 ‘Cloud 서버’라는 시다. 업무를 시에 연결한 발상이 돋보이는 시라는 게 그의 평가다.
이제호 선임연구원은 “십여 년 백일장을 하면서 생긴 습관은 자기성찰의 시간과 성장의 방향을 고민하게 되고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다양한 관점으로 깊이 있게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로 인해 잊혀져 가는 감성도 살리게 되었고 심지어 집에서도 아이들과도 함께 시 쓰기를 자주 한다. 솔직히 힘든 백일장이지만 삶의 질에는 좋은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황보 대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詩)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시는 머리로 이해하기보다는 마음으로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이공계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이공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정답을 하나로 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지식경제시대는 단순히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를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함으로 업무가 요구되는데 직원들이 시를 읽고 시를 쓰다 보면 감성개발자가 되고 인간에 대해 이해를 하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교 시절 문학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바쁜 IT업계 CEO 생활을 하면서도 시심(詩心)을 간직하고 시인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그는 “돌이켜보면 직원들과 시를 매개로 소통해온 셈이 됐다”며 “첫 시집은 시집을 낸 자체에 의미를 뒀으나 앞으로 5년 안에 2집을 내겠다. 2집은 자랑할만한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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