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영화에서 등장하는 시계와 브랜드 마케팅 [김범수의 소비만상]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김범수의 소비만상

입력 : 2023-11-11 18:00:00 수정 : 2023-11-15 13:43:23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시계와 영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영화 속 인물은 자신의 캐릭터를 더욱 살리기 위한 소품으로 시계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시계 제조사 역시 영화 캐릭터 이미지를 등에 업고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즉, 시계와 영화는 공생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시계는 어떤 것이 있을까. 영화에서 나온 시계들을 모두 기사로 작성한다면 원고지 100매는 거뜬히 넘어갈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에서 시계는 빈번하게 등장하는 아이템이다.

 

모든 시계를 다룰 수 없기 때문에 기자가 직접 사용했던 시계 브랜드를 중심으로 리뷰를 할 예정이다. 일각에서 특정 브랜드를 다루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내돈내산’한 시계 브랜드를 위주로 기사를 쓰다보니 발생한 문제이기도 하다.

 

◆007 제임스 본드와 오메가 씨마스터

 

11일 업계에 따르면 영화 마케팅으로 가장 성공한 시계 브랜드는 ‘오메가’(Omeg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메가는 ‘007 시리즈’를 통해 작중 주인공인 제임스 본드가 착용하는 시계로 잘 알려졌다.

 

제임스 본드는 1960년대 처음 등장한 이후 오늘날까지 멋진 남자의 대명사였다. 배우만 해도 숀 코너리, 로저 무어, 티모시 달튼, 피어스 브로스넌, 다니엘 크레이그 등 빼어난 외모를 자랑한다. 또한 본드의 소품인 정장, 스포츠카, 시계, 마티니와 작중 항상 인연을 맺는 아름다운 ‘본드걸’까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한다.

 

2020년에 작고한 숀 코너리 경이 연기했던 제임스 본드가 <007 골드핑거>에서 착용했던 롤렉스 서브마리너.

오메가 시계가 처음부터 007 시리즈에 제임스 본드 시계로 쓰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1대 제임스 본드인 숀 코너리가 출연한 1964년 <골드핑거>에서는 ‘롤렉스 서브마리너’(Rolex Submariner)가 등장했다.

 

‘오메가=본드 시계’라는 공식을 확립한 시기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처음 제임스 본드로 연기했던 1995년 <골든아이> 부터다. 당시 제임스 본드 시계로 오메가의 ‘씨마스터300’(Seamaster300) 모델이 채택됐고, 그 이후로 오메가 씨마스터는 007 시리즈와 공생관계가 됐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연기한 제임스 본드. 영화 <007 골든아이>부터 제임스 본드는 오메가 씨마스터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오메가 씨마스터가 28년 동안 제임스 본드 시계로 사용되면서 디자인 변천사도 이어지고 있다. 피어스 브로스넌이 비교적 푸른색 계통의 평범한(?) 오메가 씨마스터를 착용했다면, 다니엘 크레이그는 비교적 다양하게 착용하는 편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2006년 <카지노 로얄>에서 ‘씨마스터 플래닛오션’(Seamaster Planet Ocean)을 착용하면서, 제임스 본드는 씨마스터300을 착용한다는 공식을 깼다. 2012년 <스카이폴>에서는 또 다른 씨마스터 모델인 ‘아쿠아테라150’(Aqua Terra 150)을 착용했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007 카지노로얄>에서는 오메가 씨마스터 플래닛오션이 등장했다.

오메가 시계 역시 007 시리즈를 통한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가 개봉할 때 마다 ‘007 에디션’ 모델을 출시한다. 총열의 강선이나 제임스 본드가 권총을 겨누는 모습을 무늬로 넣는 방식이다.

 

특히 2021년에 개봉한 <노타임투다이>에서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한 오메가 시계가 출시됐다. 이른바 ‘NTTD(No Time To Die) 에디션’이다. 빈티지 한 베젤 디자인에 활동성을 강조한 매쉬 형태의 금속 시계줄 형태다. 다니엘 크레이그도 이 시계에 대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편안한 착용감”이라고 했다.

 

이 처럼 오메가 시계는 영화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보는 브랜드 중 하나다. 실제로 기자가 그동안 만났던 군인과 경찰 포함 정보 분야 관계자 상당수가 “시계를 사게 되면 단연 오메가 씨마스터”라고 했을 정도다. 그들이 오메가를 선호하는 이유는 대부분 007 시리즈의 영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가 직접 디자인 과정에서 참여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300 '노 타임 투 다이(NTTD)' 에디션.

◆영화 <탑건>과 IWC...그리고 ‘아메리칸 스피릿’ 해밀턴 

 

영화로 마케팅 효과를 본 또 다른 브랜드는 IWC가 있다. IWC의 간판 모델은 ‘파일럿’으로 항공시계 디자인을 베이스로 하고 있다. IWC 시계가 등장하는 영화는 쉽계 예상이 되는 ‘탑건 시리즈’다.

 

탑건에서 등장하는 수 많은 인물들은 IWC 파일럿 손목시계를 착용하고 있다. 또한 작중 회중시계 등 손목시계가 아닌 시계에서도 어렵지 않게 IWC 로고를 찾을 수 있다. 전투기 조종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 항공시계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IWC가 빠지면 섭하다.

 

영화 '탑건 시리즈'를 보다보면 IWC 시계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IWC 파일럿 모델은 한눈에 들어오는 커다란 숫자가 특징이다. 딱히 전자기기라는 게 없었던 20세기 초반에는 비행 중인 파일럿이 암흑과 같은 망망대해 상공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도록 다이얼 숫자 크기를 키워야만 했다. 다양한 빛을 활용할 수 있는 오늘날에는 큰 의미가 없지만, 아직도 조종사들에게는 사랑받는 ‘헤리티지’(전통, Heritage)다.

 

하지만 탐 크루즈가 연기한 탑건 시리즈의 주인공인 ‘매버릭’은 정작 IWC 시계를 착용하지 않는다. 매버릭이 착용한 시계는 포르쉐디자인의 ‘크로노그래프1’ 모델. 전통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마이너’를 추구하는 이단아 매버릭과 묘하게 닮았다. 매버릭과 대척점에 있던 ‘아이스맨’의 시계는 롤렉스 GMT-마스터와 데이트저스트. ‘엄친아’ 아이스맨 다운 화려한 시계다.

 

탑건 시리즈 주인공인 '매버릭'은 정작 IWC가 아닌 포르쉐디자인의 시계를 착용했다. 사진은 포르쉐디자인의 '크로노그래프1' 모델.

‘미국의 정신(American Spirit)’이라고 불리는 영화에 꾸준히 등장하는 시계도 있다. 바로 ‘해밀턴’(Hamilton) 시계다. 해밀턴 시계는 오늘날에는 스위스 시계 브랜드로 편입 됐지만, 원래는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미국을 기반으로 한 덕분인지 해밀턴 시계는 ‘개척’, ‘야생’, ‘과학’ 등과 관련한 미국 영화에 꾸준히 등장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주인공 모녀가 착용한 시계는 해밀턴 ‘카키필드’(Khaki Field) 모델이다. 거친 환경에서도 버틸 수 있는 군용시계다. 영화 속 주인공 딸이 착용한 시계는 아예 작중 이름을 따 카키필드 머피(Murph)라는 이름도 붙었다. 해밀턴 머피 모델은 그동안 42mm 사이즈만 출시돼 비교적 손목이 작은 한국 시장에서 아쉬움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38mm가 출시되면서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영화 <인터스텔라> 장면과 해밀턴 카키필드 '머피' 모델. 최근에 나온 해밀턴 시계 중 수작이 아닌가 싶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해밀턴 '볼튼'.

또한 아메리칸 스피릿의 대표적인 영화인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주인공이 착용한 시계도 해밀턴의 볼튼(Boulton) 모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최근작인 <오펜하이머>에서도 해밀턴 시계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경우 작중 시대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기 때문에 군용시계로 납품된 해밀턴 시계가 자주 등장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고증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시계 브랜드가 영화 하나로 인지도가 크게 올라가기도 한다. 바로 ‘마블 시리즈’ 중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나온 ‘예거-르쿨트르’(Jaeger-LeCoultre)다.

 

예거-르쿨트르는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잘 알려진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였지만, 인지도 측면에서는 롤렉스-오메가-까르띠에 삼대장에 비해 덜한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연기한 주인공이 연인에게 받은 예거-르쿨트르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츄얼’(Master Ultra Thin Perpetual)을 착용했고, 이를 계기로 유명세를 탔다. 이 모델은 한화로 약 5000만원 정도로 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영화 상에서 악당들에 의해 시계 유리가 깨질 땐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은 관객도 여럿 있을 것이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주인공이 악당들에게 깨진 예거-르쿨트르의 마스터 울트라 씬 퍼페츄얼 모델을 착용한 모습. 시계가 깨질 때 기자의 마음도 깨지는 듯한 간접 고통을 느꼈다.

◆실베스터 스텔론이 살리고 떠난 ‘파네라이’

 

영화 덕분에 ‘죽다 살아난’ 시계 브랜드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탄생했고 오늘날에는 스위스로 옮긴 ‘파네라이’(Officine Panerai)다.

 

‘람보 시리즈’와 ‘록키 시리즈’ 주인공을 연기한 실베스터 스텔론은 1995년 영화 <데이라잇>을 촬용하던 중 우연히 두꺼운 자신의 손목에 어울리는 커다란 파네라이 시계에 완전히 매료됐다. 스텔론은 자신은 물론 다른 배우와 제작진들에게 파네라이를 선물할 정도로 파네라이 브랜드에 푹 빠졌다.

 

이후 스텔론은 <람보4>, <익스펜더블> 등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에 파네라이를 착용했고, 파네라이는 덕분에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누리면서 ‘리치몬트 그룹’에 인수되기도 했다.

 

파네라이 인기의 시작이었던 영화 <데이라잇>. 실베스터 스텔론은 최초의 파네스티를 자청했으나, 최근에는 개인적인 서운한 감정에 파네라이를 '손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후 파네라이의 행보는 조금 아쉽다. 오늘날 파네라이의 인기는 실베스터 스텔론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파네라이 측은 스텔론에 어떠한 혜택을 주지 않았다. 이 같은 ‘배은망덕(?)’ 관계가 계속되자, 스텔론은 데이라잇 때 착용했던 파네라이 시계를 경매로 내놓는 등 ‘손절’하기에 이른다.

 

이미 고가 브랜드로 자리잡은 파네라이 입장에서 스텔론의 손절은 그다지 아쉽지 않을 수도 있지만, 파네라이 애호가를 지칭하는 ‘파네리스티(Paneristi)’ 입장에선 두고두고 서운해 하는 부분이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