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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본색의 ‘따거’ 주윤발… “후회는 없다”, ‘큰형’의 면모 [엄형준의 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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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05 15:23:43 수정 : 2023-10-05 15: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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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순간 후회해도 소용없어… 매일 실수하는 게 정상
‘현재를 살아라’라는 말 좋아해…앞 사람에게 최선 다해라”
“하루 흰밥 두 그릇이면 충분” 통 큰 기부에 대한 속내 밝혀
한국 영화 창의력 칭찬… 홍콩 영화 검열 아쉬움 드러내

“딱히 후회되는 순간은 떠오르지 않아요. 후회해도 소용없으니까요. 삶이라는 게 매일 실수를 하잖아요.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그게 정상입니다. 실수가 얼마나 크냐 작냐의 차이가 날 뿐이죠.”

 

‘영웅본색’의 ‘따거’(큰형), 배우로 데뷔한 지 50년이 된 68세의 대배우 저우룬파(주윤발)는 인생관에서도 큰형의 면모를 드러냈다.

 

저우룬파가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인생과 영화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저우룬파는 5일 부산 해운대구 KNN 시어터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 기념 기자회견에서 ‘50년 영화 인생에서 아쉬웠거나 되돌리고 싶은 부분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했다.

 

“중국 불학(佛學)에 환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모든 게 환상이고 지금 이 순간이 진짜라는 거죠. 저도 그렇게 믿고 있어요.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여러분 앞에 있지만, 이따가 뒤로 돌아가면 저는 안 보이고 그 순간은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죠. 보이는 순간, 지금만 생각합니다. ‘현재를 살아라’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매 순간 지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그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큰형답게, 그는 전 재산인 약 8100억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가 기부한 게 아니라 매니저인 아내가 한 겁니다. 기부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힘들게 번 돈입니다. 제가 용돈을 받으며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정확히 얼마를 기부했는지도 모릅니다.”

 

농담으로 입을 열었지만, 이내 기부에 대한 숨겨둔 생각을 털어놨다.

 

“어차피 이 세상에 올 때 아무것도 안 갖고 왔고, 갈 때 아무것도 안 갖고 가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점심은 안 먹고, 하루 흰 쌀밥 두 그릇이면 돼요. 당뇨가 있어서 하루 한 그릇만 먹기도 해요.”

 

저우룬파가 5일 부산 해운대구 KNN시어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셀카를 찍고 있다. 

검소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아낌없이 돈을 쓰는 분야가 있다면 영화배우답게 카메라인데, 그마저도 중고 구매라고 한다. 최근엔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 촬영에 쓴 적 있다는 독일의 카메라 렌즈를 구매했다고 한다.

 

“엑스선까지 찍을 수 있다고 해서 한번 써봤죠. 와 너무 이쁘다. 잘 안 보여서 이쁘다. 이 경지에 이르렀어요.”(웃음)

 

2009년 후 14년 만에 방한한 그는 한국 영화의 성장에 대해 덕담을 건넸다.

 

“지역마다 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영화계 인사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할 수 있다는 게 기쁜 일입니다. 한 지역의 어느 업계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됐을 때 다른 지역이 더 먼 데까지 끌고 갈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요즘 홍콩 영화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놨다.

 

“현재 홍콩 영화는 여러 부처 승인을 받아서 나가는데 대본이나 이런 게 검열이 있습니다. 영화감독들이 영화 만들기 어려워해요. 1980년대 홍콩 영화를 보셨던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시는데, 1997년 이후 많은 것들이 바뀌었어요. 정부 지침을 따라야 했고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습니다.”

 

1997년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에 반환된 해다. 자율성과 창의력이 한국 영화 성장의 이유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한국 영화의 가장 큰 경쟁력은 자유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재가 넓고 창작에 대한 자유도도 높아요. ‘어 이런 이야기까지 다룰 수 있나’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저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저우룬파와 아내 재스민 탄이 4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 레드카펫 행사에서 송강호(오른쪽 첫번째)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50년을 연기한 배우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일까.

 

“저는 홍콩 작은 바다 마을에서 태어나 10살 때 도시로 나갔고, 18살에 배우 훈련을 받고 연기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저는 공부를 많이 못 했는데, 영화는 저에게 다양한 지식을 가져다주는 존재였죠.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세상을 가져다주는 게 영화에요. 촬영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잖아요. 영화가 없으면 저우룬파가 없다고 생각하셔도 좋아요. 근데 제가 영화를 50년 더 한다면 더 볼 사람이 있을까요. 그럼 제가 한국에 자주 와서 미용 시술을 받아야겠어요. (웃음)”

 

지난해 그는 건강 이상설이 돌기도 했다.

 

“아프다고 한 게 아니라 (2017년엔) 죽었다고 가짜뉴스가 떴더라고요. 매일 일어나는 일이니까 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사람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취미를 갖고 건강을 유지해야죠. 오는 11월19일에 홍콩 하프마라톤을 뛸 겁니다. 내일 부산에서도 10km를 뛰어볼 거에요. 뛰다가 죽을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는 요즘 마라톤에 심취해 있다고 한다. 한 갑자(60년)를 인생의 한 주기로 본다면, 이전엔 영화배우로서, 지금은 마라토너로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그의 대표작인 ‘영웅본색’, ‘와호장룡’과 함께 신작인 ‘원 모어 찬스’가 상영된다. 원 모어 찬스는 ‘도신’(도박의 신)이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와 함께 살면서 펼쳐지는 드라마다.

 

“반응이 없으면 운동선수로 전향할 수도 있어요. 운동하다가 좋은 성적을 못 내면 다시 배우도 할 수 있고요.”

 

그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자신이 특별한 삶을 살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지는 않는 듯했다. 그의 삶에 대한 마음가짐이 엿보인다.

 

“지금 이 자리라서 저는 배우고, 당신들은 기자입니다. 벗어난다면 저희는 다 똑같이 대등한 일반인입니다. 특별한 시선을 가지고 넌 슈퍼스타다,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저는 지극히 보통의 일반인에 불과합니다.”


부산=엄형준 선임기자 ti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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