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이균용 부결 표결 전 당론화에
현직 판사들 “정치적 이익만 우선”
2024년 안철상·민유숙 대법관 퇴임
권한대행 제청권 선례 없어 난감
“최악 땐 2024년 총선까지 자리 빌 듯”
대법 행정처 간부, 국회 찾아 설득
“대법원장 임명 부결을 당론으로까지 정하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4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정하기 위한 수순에 들어가자 수도권의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강도 높은 비판 목소리를 내놨다. 정치권이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몰고 올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치적 이익만을 우선시한 행태를 벌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중견 부장판사는 “일반 행정부처는 장관이 없어도 시스템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대법원장은 전원합의체 재판에 재판장으로 직접 관여한다는 점에서 대법원 수장의 부재는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 목소리를 냈다.
이날 민주당은 6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 표결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임명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과반 의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이같이 부결 기류에 무게를 실으면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법조계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될 경우 대법원 전원합의체(전합) 재판과 차기 대법관 제청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는 전합 사건을 심리하거나 판결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다. 법률상 요건은 대법관 중 3분의 2 이상의 참여를 요건으로 하지만 보통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해 과반 의견을 도출해 왔다. 전합 판결은 일선 법원의 법률 해석을 바꾸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법원장 없는 전합 선고는 공정성과 정당성 측면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이론적으론 대법원장 없이 전합 사건을 심리할 수는 있지만, 전합이 갖는 의미를 생각할 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면서 “재판 지연 문제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있다. 사건 당사자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대법관 인선이 늦어지는 경우엔 대법원 소부 사건까지 지연될 수 있다. 당장 내년 1월에 안철상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한다. 새 대법관 제청을 위해 통상 두 달가량의 시간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선 이달부턴 관련 절차에 착수해야 한다. 하지만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법관 제청권을 행사한 선례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다. 2월에는 전국 법관 정기 인사도 예정돼 있다.
한 고법판사는 “권한대행이 대법관을 선임하는 건 후임 대법원장의 가장 큰 권한 중 하나를 잃게 되는 모양새”라며 “(대법원장 낙마 시) 대법관 선임이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 본다”고 내다봤다. 법원 일각에선 “이러다 최악의 경우 내년 총선까지 새 대법관 임명이 이뤄지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인사청문준비단을 비롯한 대법원 법원행정처 간부들은 국회를 찾아 민주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의원실에 전달한 자료에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민주적·수평적 사법행정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할 것이란 표현도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 대한 비판 입장을 가져온 이 후보자의 기존 태도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법원 일각에선 “대법원이 인사청문회 대응 전략을 애초부터 잘못 짰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선의 한 부장판사는 “앞선 청문회에서도 이번 한 번만 잘 넘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내내 사과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과거 대법관 청문회에선 통했을지 몰라도 대법원장 청문회에선 적절치 않은 방식”이라며 “청문회 통과는커녕 법원 구성원의 신망까지 잃어버리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쓴소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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