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미관계 지향할지 전략 세워야
트럼프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소식에 미국과 전 세계가 긴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대선이 자국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2016년 갤럽 조사 결과 중국과 멕시코를 제치고 1등을 차지했던 우리나라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작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은 내년 1월15일부터 시작하지만 트럼프는 이미 2등 후보와 약 40%포인트 격차를 벌리고 있다. 미국 국민의 과반이 지지하는 낙태 권리에 대해 강경 보수파와 달리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다거나 경합주인 미시간의 자동차 노조 파업을 지지하며 바이든의 전기차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경선 걱정 없는 트럼프가 이미 시작한 본선 행보다.
최근에 트럼프가 바이든보다 9%포인트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오자 민주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내년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트럼프 재판의 후폭풍과 더불어 트럼프만은 절대 안 된다는 유권자들이 어쩔 수 없이 바이든으로 결집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2020년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대선 이후 활성화한 미국의 조기 투표가 민주당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미국 대선은 현재 예측 불허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국제 정세는 어떻게 달라질까? 의회를 경시하는 트럼프에게는 세금 인하나 국경 장벽 정도가 국내 입법 과제로 인식될 것이다. 첫 임기 4년처럼 트럼프는 레토릭과 행정 명령, 정상회담 등의 방식으로 또다시 국제 이슈에 몰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잘 알려진 대로 트럼프는 신념이 아닌 거래로 국제 문제를 바라본다. 중국을 견제하고 비판하되 기존 패권 경쟁보다는 “애국적 보호무역(patriotic protectionism)”을 통해 미국의 경제적 이익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미국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응답한 배경이기도 하다. 또한 우크라이나 원조를 끊기 위해 전쟁 종결 중재에 나서겠지만 푸틴의 눈치를 보는 선에서 타협할 확률이 크다. 방위비 분담금을 위해 유럽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트럼프뿐만 아니라 공화당의 달라진 외교 노선이기도 하다. 바이든이 중시해 온 쿼드(QUAD: 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를 포함한 소다자주의와 동맹 중심의 대외 전략은 크게 약화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만나 세계의 이목을 자신에게 쏠리게 하는 노림수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김정은 재회가 북한의 핵 포기에 초점을 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자기 자랑과 관심 끌기에 바쁜 트럼프가 북한과 허술한 합의를 해 버릴 우려도 작지 않은 이유다. 바이든 취임 후에야 타결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2025년까지 유효하지만 이후에 트럼프가 주한미군 축소 혹은 철수를 빌미 삼아 무리한 요구를 해 올 계기가 될 수 있다. 군 통수권자인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명령한다면 철수 이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미국 의회가 만든 국방수권법의 견제 조항들은 정치 현실상 거의 무의미하다. 다만 주한미군 이슈는 트럼프만 제외하면 미국 내에서 의회, 공화당, 여론, 언론, 싱크탱크 그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영역이다. 우리의 관심사이기도 한 미·중 경쟁은 “관세맨(tariff man)” 트럼프 복귀에 따라 통상 및 경제 영역으로 다시 초점이 옮겨 갈 수 있다. 미국의 과학기술 업계와 정치적으로 가까운 민주당이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 과학법을 중심으로 중국 견제를 추진했던 것과는 현실적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이다.
한편 다시 백악관에 복귀하더라도 4년이 지나면 트럼프는 끝난다. 수정헌법 22조에 따라 트럼프는 대선에 다시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임기 2년 차 중간선거를 치르고 나면 차기 대선을 향한 공화당 후보들의 각축도 시작된다. 예컨대 2019년에 시작된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협상은 15개월 만에 결론이 났다. 당시에는 좋지 않은 선례였지만 이제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지연 전략(delay game)”을 우리의 대미 전략으로 삼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트럼프의 미국에 잘 대비해야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이해와 우리 스스로의 선택은 별개의 문제다. 한국은 궁극적으로 어떤 한·미 관계와 국제 질서를 지향하는가?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를 먼저 알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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