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며칠 가을비답지 않은 비가 이어졌다. 그 비에 사방 모든 것들이 젖어 들었다. 가을장마라니. 옛말에 봄비가 내리면 하루하루 따뜻해지고, 가을비가 내리면 하루하루 추워진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계속되는 비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기실 이맘때쯤에 내리는 비는 유익함보다는 유해함이 더 크다. 긴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아니라면. 지금은 비보다는 살갗을 파고들 만큼의 따가운 햇빛이 필요할 때이다. 그 햇빛에 오곡백과가 익어 가고, 비로소 지난 계절의 전설들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다가올 혹독한 시간들을 대비해야 하는 때도 이때이다. 미구에 닥쳐올 생을 위협하는 극한 시련에 대비하지 못하는 것들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생명이 지니는 유약함이자 유한성의 한계이다. 적자생존의 비정한 방식이 작동되지 않는다면 생태계는 그만큼 난삽하고 어지러울 것이다. 따져 보면 그 또한 자정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요 근래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그 비에 땅은 물러지고 어떤 곳은 물마가 일기도 했다. 그 비에 어떤 것들은 뿌리째 썩어 들어 가고 열매는 풋것으로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이맘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이때만 같으라는 염원의 시기에 비라니. 한 해의 결실을 무사히 갈무리하지 못하면 다음 해의 풍년과 안녕도 장담하기 어려운데 계속되는 비가 그 결실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겨우살이 준비로 분주해야 할 시간이다. 나무들은 지난 시간들을 몸에 새기고 해산하듯 열매와 잎을 떨군 채 메마른 몸으로 혹독한 시간들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 어디 나무들뿐일까. 동물들 역시 동면을 위해서는 부지런히 먹이 활동을 하며 양분을 저장해 둬야 한다. 그래야 무사히 겨울을 나고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그렇게 세상에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다양한 생존의 전략과 법칙들이 존재한다. 한데 계속되는 비가 그 질서와 법칙들을 교란한다. 이게 다 인간의 오만함에서 비롯된 기후위기 때문이 아닐까.
정말, 비 말고, 쨍쨍한 햇빛이 그립다. 그 햇빛에 과육들은 달콤한 향내를 풍기며 익어 가고, 나뭇잎들은 그 햇살에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다가 어느 순간 건듯 부는 미풍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그 가을을 보고 싶다. 그때는 누구든 시인이 되지 않겠는가.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김현승 시인은 그렇게 낙엽이 지는 때를 기다려 겸허한 모국어로 자신을 채워 달라고 기도하고 간구했다. 가을은 그렇게, 저절로 기도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가을은 그런 계절이다. 봄이 찬란하다면 가을은 장엄하고, 봄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생명을 품는 계절이다. 봄이 축제의 시간이라면 가을은 감사의 시간이다. 가을이, 앞으로의 시간들이 풍요롭고 탐스럽게 영글어 갔으면 좋겠다. 모든 오곡백과가 잘 익고 여물었으면 좋겠다.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그렇게 꿋꿋하게.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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