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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심층기획-‘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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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9-21 07:00:00 수정 : 2023-10-03 22: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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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살아남은 아이들, 행운은 어디까지

지난 6월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을 계기로 이뤄진 정부 전수조사 결과, 2015년부터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2123명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중 안타깝게 유기되거나 세상을 떠난 아기들의 사연이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세계일보는 영아유기·살해가 개인 일탈이 아닌 ‘사회 문제’라는 인식 아래 판결문을 분석하고, 영아의 생부모 사연을 심층적으로 추적했다. 이를 통해 드러난 영아유기·살해 범죄의 이면, 아동·여성 보호와 복지 시스템의 민낯을 특별기획 시리즈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연재로 소개한다.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박스 내부 공간의 모습. 연합뉴스

2020년 9월의 어느 날, 한 여성이 택배 상자를 안고 번화가에 들어섰다. 유동인구가 많은 한 상가 건물 앞에서 여성은 걸음을 멈췄다.

 

‘지나는 사람이 많은 여기라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

 

여성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무겁게 발길을 돌렸다.

 

잠시 후 길 가던 한 행인에 의해 상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상자엔 탯줄도 떼지 않은 갓난아기가 담겨 있었다. 비록 길거리에 아기 혼자 두고 가는 것이지만 엄마는 초가을의 날씨가 마음에 걸린듯 했다. 추위에 떨지 않도록 옷 세 벌을 겹겹이 감싸놓았다. 핫팩도 챙겨넣어 온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발견된 아기는 병원에서 건강에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살아남은 아이 김지우(가명)군의 생존은 ‘계획된 행운’인지 모른다.

 

지우군의 생모 A씨가 임신 사실을 깨달은 건 임신 2∼3개월차 쯤이었다. 곁에 도움을 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미 결별한 상태였던 지우군의 생부에게 용기 내 연락을 시도해봐도 돌아온 답변은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뿐이었다.

 

A씨는 가족과도 연락하지 않고 지낸지 오래였다. 홀로 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던 그는 산부인과에 다닐 돈도 없었다. 지우군을 낳은 그날도 직장에서 일을 하던 중이었다. 통증이 시작된 뒤에야 급히 집에 돌아갔고, 집에서 홀로 지우군을 낳았다.

 

그런데 지우군이 발견된 뒤 영아유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A씨는 돌연 잠적했다. 경찰에도, 법원에도 출석하지 않자 법원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얼마 뒤 경찰은 이상한 신고를 받았다.

 

“옆집에서 심한 악취가 난다고요?”

 

묘연했던 지우군 생모의 행방은 뜻밖의 사건으로 밝혀졌다. 이웃집에서 냄새가 난다고 해 출동한 경찰이 쓰레기더미 속에 살고 있는 A씨를 발견했다. 당시 이웃들은 A씨가 두문불출하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법정에서 지우군의 생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우군에 대해서는 양육권과 친권을 모두 포기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 관계자가 설득하려 해봐도 “아이가 시설에 맡겨져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고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지우군은 영유아 보호시설로 인계됐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에 의해 뒤늦게 출생신고됐다. 태어난 지 2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이를 시설에 보내는 사람들은 보통 양가감정을 겪습니다. ‘나는 키울 수 없으니 시설에 보내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내 아이인데 내가 키워야지’라는 의무감도 있기 때문에 죄책감도 느껴요. 결과적으로는 아이를 버리는 것이란 생각에 힘들어합니다.”

 

이 사건을 모니터링해 온 아보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집에서 낳고 유기할 경우 사망할 가능성이 크지만, 지우군의 경우 체온이 유지된 채 일찍 발견된 덕에 살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가창립한 유기 영아 91%, “가족이 없다”

 

이러한 행운이 지우군에게만 찾아온 건 아니다. 지우군처럼 ‘살아남은’ 유기 영아는 지난 10년간 2200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지우군 친모의 바람대로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자란다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유기 영아 중 원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는 경우는 8.6%에 그쳤다.

 

대법원이 더불어민주당 서영석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가 부모를 대신해 출생등록해준 기아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2255명을 기록했다. 민법 제781조와 가족관계등록법 제52조는 기아가 발견되면 지자체 장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 영아의 성과 본을 창설하고 이름과 등록기준지를 정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도록 한다. 부모를 알 수 없는 이들은, 새로운 일가(一家)를 창립하게 되는 것이다.

 

일가를 창립한 이들 중 추후 생부모를 찾아 성·본이 정정된 사례는 단 35건(1.6%)뿐이었다. 부모를 찾은 아이들은 창설한 가족관계등록부를 폐쇄하고 새로 출생신고를 하게 되는데, 2220건(98.4%)은 여전히 지자체가 등록해준 가족관계등록부를 사용하고 있었다. 지난 50년으로 기간을 늘려서 보면 지자체가 출생등록한 기아는 총 10만6790건, 해당 가족관계등록부가 폐쇄된 사례는 162건(0.2%)에 그쳤다.

 

입양 건수도 많지 않다. 지난 10년간 일가를 창립한 이들이 새로운 가정에 입양된 사례는 158건(7%)로 집계됐다. 지난 50년 동안에는 3696건(3.5%)였다. 원가정 복귀와 입양 건수를 합해봤자 10년간 193건(8.6%), 50년간 3858건(3.6%) 수준이다. 유기 영아의 절대 다수는 보육원 등 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성인이 되면 홀로 세상 밖에 나오게 된다.

백강석 씨.

◆엄마는 만남 거절, 아빠는 기록도 없어

 

“엄마, 아빠를 찾고 싶어요.”

 

백강석(24)씨는 지난해 부모님을 찾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보육원을 퇴소한지 3년 만이었다. 경찰관은 “엄마 이름이 특이해서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적인 말을 건넸다. 그리고 실제로 강석씨 친모를 찾아냈다.

 

하지만 강석씨가 만날 수는 없었다. 강석씨 친모는 “아들을 만나고싶지 않다”고 거절 의사를 표했다. 경찰은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친모에 대한 정보는 어떤 것도 말해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친부에게는 접촉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경찰 또한 친부에 대한 기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강석씨 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 모두 엄마‘만’ 찾는다. 강석씨는 취재진에 “엄마를 찾은 친구들은 3∼4명 정도 있는데, 아빠를 찾은 친구는 본 적 없다”고 전했다. 

 

부모와 연락이 닿는 것도 쉽지 않지만, 같이 사는 것은 더욱 쉽지 않다. 그리고 새로운 가정에 입양되는 경우는, 그보다 더 드물었다. 강석씨는 “보육원에서 생활한 20년 동안 입양된 친구는 보육원 선생님이 예뻐하던 1명 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강석씨는 제천에 있는 보육원에서 출생신고 됐다. 갓난 아기 때 보육원으로 보내진 그는 엄마·아빠의 흔적 하나 가진 게 없다. 그의 이름 또한 부모님이 아닌 보육원 원장이 지어줬다. 부모가 친권을 포기하면서 강석씨 후견인이 된 원장은 그에게 자신과 동일한 백씨로 성·본 창설 신청을 해줬다. 강석씨 뿐 아니라 그곳에서 출생신고된 80여명의 아이들 모두 같은 이유로 백씨 성을 갖고 있다. 다만 성만 같을 뿐, 법적 가족이 되는 건 아니다.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이들이 일가를 창설한 것으로 기록된다.

 

부모를 가져본 적 없는 그였기에 ‘부모’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떠올릴 뿐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보육원 선생님이 안아줄 때나 칭찬해줄 때, 잘 해줄 때 ‘이런 게 엄마인가’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 엄마·아빠는 어디 있을지 생각하게 됐어요.”

 

지난해 경찰서에 갔을 때도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강석씨는 “내 엄마·아빠가 과연 누구일까, 그냥 궁금한 마음이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이어 “만약에, 진짜 만약에 만나게 됐다면 ‘대체 왜, 왜 날 버렸냐’는 말부터 하고 싶었다”며 “원망하는 마음은 없다. 근데 경찰이 안 알려준다고 하니까, 그냥 포기했다”고 덧붙였다.

백지연(가명)씨

◆“탓하고 싶진 않아요…그냥, 보고싶어요”

 

유기 영아들이 모두 강석씨처럼 생부모 찾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 백지연(가명·25)씨는 2021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보육원에 다녀왔다. 버스를 타고 대구에서 제천 보육원으로 가는 내내 지연씨 머릿속에는 걱정만 쌓였다. 

 

‘엄마, 아빠가 죽었으면 어떡하지. 죽더라도 한번만 보고 죽었으면 좋겠다. 한번만, 딱 한번만 보고 싶다.’ 

 

그렇게 4시간을 달려 도착한 보육원은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지연씨 요구를 번번이 거절했다.

 

무슨 대화를 하고 싶길래, 이리도 간절히 바랐던 걸까. 지연씨는 “두마디만 묻고 싶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를 왜 시설에 맡겼냐. 시설에 맡길 거면서 왜 나를 낳았냐.” 지연씨는 “차라리 낳지 말지, 왜 낳아서 시설에 맡겼는지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다만 지연씨도 부모를 원망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원망의 외피를 걷어내면 그 안에는 사실 극도의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다. 아기를 포기하는 엄마들의 심경을 대신해서 지연씨에게 물었다.

 

“엄마가 ‘너를 제대로 키우지 못할까봐 걱정돼서, 더 사랑받으면서 크면 좋겠어서 시설에 보냈다”고 하면 뭐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모르겠어요….”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지연씨는 뜻밖의 말을 했다.

 

“그냥… 대답 안 하고 안아주고 싶어요. 그냥 보고싶어요. 탓하고 싶지는 않아요. IMF 경제위기가 1997년도에 터졌잖아요. 제가 1998년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시설에 맡겼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봤어요.”

 

<관련 기사>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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