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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집을 새 집으로 만드는 과정
과거 보듬고 현재 담아내는 것
리모델링 끝내고 새 역할 받아
시간의 흔적들 품고 매력 발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어릴 적 영문도 모르고 모래밭에서 손등에 모래를 쌓아 모래집을 지으면서 흥얼거렸던 노랫말이다. 요즘 옛 동네를 다니다 보면, ‘헌 집’이 ‘새 집’으로 바뀐 곳을 종종 발견한다. 두꺼비가 요술이라도 부린 듯해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나하고는 무관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집이건만 내 추억이라도 만난 양 반갑다.

얼마 전, 서울 용산구 청파동에 있는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을 리모델링해 그야말로 ‘헌 집’을 ‘새 집’으로 만든 과정을 보여 주는 전시가 있어 가 보았다. 헌 집을 허물지 않고 현재의 요구에 맞추어 새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과거로의 여행이다. 이때 자연스레 그 집을 짓게 된 사연과 그곳을 거쳐 간 가족의 역사, 더 넓게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게 된다. ‘헌 집’은 필연적으로 ‘오래된 집’이기에 그 속에는 그 집에 살았던 개인과 가족의 역사가 배어 있다. 청파동 ‘새 집’에 머문 두세 시간 동안 나는 그 집과 얽힌 일본과 한국 가족의 생활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그들은 이런저런 사연으로 그 집을 짓고 생활했고 또 물려받고 살았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 집이 지어진 1930년대, 경성부 인구는 약 40만명이었고 그중 일본인이 약 10만6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6.5%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남산과 용산에 집중적으로 거주했기에 당시 청파동은 일본 도쿄의 어느 동네나 다름없었다. 이 집을 지은 사람은 식민지 조선에 진출한 일본 건설회사의 경성지부장이었다고 하니, 이 정도 집 짓는 일은 대수롭지 않았을 듯하다. 해방 후 이 집은 ‘적산(敵産)’, 즉 적의 재산이라 미군정청에서 접수했고 이후 민간에 불하한 것을 1960년 현재의 가족이 사들여 오래 살았다고 한다.

해체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이 집은 1930년에 지어졌다. 1925년에 경성역사가, 1926년에 조선총독부 청사가 완공되었으니, 이 무렵은 서울에서 일본 목수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때라 일본식 주택을 짓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 집은 다다미방과 목제 마루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 전통 주택에 서양식 응접실과 실내 테라스 그리고 구들이 놓인 온돌방 한 개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 이 집을 지었던 일본인은 서양식 생활양식을 동경하면서 서울의 추운 겨울을 고려했던 듯하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온돌을 ‘비위생적’이라고 폄하했지만, 일본인들은 차츰 온돌방 하나 정도는 있어야 일본보다 추운 한반도의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습기가 차면 눅눅해지고 벌레가 생기기 쉬운 다다미보다 온돌방이 따듯하고 위생적이었으니 그들도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 없었다. 1960년부터 이 집에 살기 시작한 가족은 다다미방을 모두 연탄아궁이와 구들을 가진 온돌방으로 바꾸었다가 이후 다시 바닥에 동 파이프를 깐 기름보일러 온돌방으로 개조했다.

리모델링은 건축주와 건축가의 의견 교환, 현황 실측, 해체, 구조 보강, 배관과 전기 설비 등 노후 설비 교체, 재사용 부재 선별 순으로 진행되었다. 이 과정들 사이에 수많은 의견 제시와 검토가 건축가와 목수 그리고 건축주 사이에 있었다. 청파동 집에서는 최초의 원형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고 벽에는 단열재를 넣어 단열 성능을 높였다. 일본 주택에서 손님을 맞는 방에는 그림이나 글씨를 걸고 화병을 놓을 수 있는 ‘도코노마’(바닥은 방바닥보다 높고 벽 쪽으로 움푹 파인 공간)라는 별도의 공간이 있는데 이를 원형대로 보존하고 이층 방은 원래대로 다다미방으로 되돌렸다.

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지붕 속에서 상량문이 적힌 판자가 발견되었다. 우리의 상량문과는 형식과 내용이 매우 달랐다. 우리는 여염집인 경우 마루도리에 상량문을 써서 대청마루에서 올려다볼 수 있도록 한다. 처음과 끝에는 각각 용 용(龍) 자와 거북 귀(龜) 자를, 중간에는 상량한 연월일을 쓴다. 때에 따라 간단한 축원문을 넣기도 한다. 용과 거북은 모두 물에 사는 동물이라 화재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을 보호해 달라는 바람이다. 청파동 집 상량문에는 집을 지키는 신, 장인을 지키는 신, 마을을 지키는 신의 이름과 함께 건축주와 도료(棟梁: 우리의 도편수 격인 장인의 우두머리)의 이름, 쇼와(昭和) 5년 11월18일이라는 상량일, 그리고 이 집이 가족의 행복과 영화를 수호하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하는 글이 적혀 있다.

리모델링을 끝낸 이 집은 살림집의 역할을 끝내고 카페 공간으로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다. 요즘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차 마시며 시간 보낼 수 있는 카페가 흔하다. 카페는 여가 시간을 보내는 곳이라 분위기가 중요하고 이를 위해 공간을 흥미롭게 꾸미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개중에서 시간의 흔적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새 건물이 아닌 한 세월의 흔적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니, 이를 드러내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 집도, 아니 이 집이야말로 시간의 흔적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집이다.

헌 집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요소가 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헌 집을 보면서 거기에 배어 있는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옛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 아닐까? 헌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시간이 개입되면 헌것은 곧 옛것이 되고, 옛것은 헌것 이상의 무엇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오래된 나무와 물건에 정령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을 들으면서 자랐기에, 옛집에는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엇인가가 배어 있는 것이리라.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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