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전쟁은 끝났어, 중요한 것은 경제야. 계속해 나가자”…진화 거듭한 미국·베트남 관계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 세계뉴스룸

입력 : 2023-09-17 15:01:37 수정 : 2023-09-17 15:26: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빌 클린턴 “전쟁은 끝났다” 정상화 초석
클린턴·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 방문
아세안 건너뛰고 베트남 방문한 바이든
외신 “베트남 밸류체인·중국 변수 고려”
“전쟁은 끝났다”(빌 클린턴, 2000년 11월 베트남 방문) → “베트남은 어린 호랑이 같다. 중요한 것은 경제”(조지 W 부시, 2005년 6월 판 반카이 총리 회동) → “전후 살상무기 판매 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한다”(버락 오바마, 2016년 5월 베트남 방문) → “(베트남의 경제 변화는) 세계의 위대한 기적의 하나다“(도널드 트럼프, 2017년 11월 베트남 방문) → ”계속해 나가자, 모두를 위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만들자“(조 바이든, 2023년 9월 베트남 방문)

 

반 세기 전에 전쟁을 치렀던 미국과 베트남이 최근 사실상 ‘동맹’에 버금갈 정도로 외교관계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킨 이후 두 나라의 강렬한 인연에 외신이 주목했다. 동남아 뉴스를 개별 뉴스로는 좀처럼 다루지 않는 미국 언론 다수가 이번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못지않게 베트남 관련 소식을 여럿 전했다. 베트남 권력서열 1위인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의 초청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현지를 찾았다는 설명을 더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 주최로 열린 환영 오찬에서 건배를 하고 있다. 하노이=AFP연합뉴스

◆ 바이든 24시간 방문…양국 최고관계 격상

 

10~11일 이뤄진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은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만 하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미국 정상의 베트남 방문은 동남아와 중국 등 지역에 강렬한 신호를 준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고리로 한 아시아 방문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린 인도네시아가 아닌 단일 국가 베트남이 포함됐다는 사실 자체도 의미가 부여됐다.

 

2차세계대전 이후 전쟁을 치른 나라들 중 미국과 베트남처럼 관계 개선 흐름을 보여 온 나라도 많지 않다. ‘전쟁을 치른 과거를 뒤로하고, 동맹의 관계를 구축했다’는 평가가 진부할 정도다.

 

미·중 갈등 국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미국의 베트남 중시 흐름은 이어져 왔다. 양국 관계 개선은 옛 소련 붕괴와 동유럽 공산권 몰락을 전후한 1980년 대 말 시작됐다. 베트남 정부의 미군 포로 인도와 미군 실종자 유해 수색작업 허용으로 계기가 마련됐다는 게 국제사회의 대체적인 평가다.

 

◆ 2000년 클린턴 최초…이후 5명 대통령 모두 베트남 방문

 

미국은 1995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베트남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2000년 이후 미국의 역대 대통령 5명은 모두 임기 중 베트남을 찾아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 그 흐름은 이랬다. 

 

1975년 베트남 공산화 이후 외교 관계 단절 → 1995년 7월 국교 정상화 → 2000년 11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첫 베트남 방문 → 2005년 6월 판 반카이 총리, 베트남 정상급 지도자의 첫 미국 방문 → 2013년 7월 포괄적 동반자 관계 수립 → 2023년 9월 조 바이든 대통령 방문 및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

베트남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1일 하노이에서 보 반 트엉 국가주석과 이야기하고 있다. 하노이=AP연합뉴스

베트남을 중요시한 미국 정부의 정책을 역대 대통령의 발언과 동선에서 확인해보자. 클린턴 전 대통령은 미국 정상으로는 베트남을 처음으로 방문했다. 클린턴의 2000년 11월 하노이 방문 노선은 하나하나가 뉴스가 됐다. 초선 대통령 시절인 1995년 국교정상화 주역이었던 클린턴은 재선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그해 11월 하노이 방문에서 화려한 환영을 받았다. 

 

베트남 국영TV는 그의 연설을 생중계했다. 베트남 국영TV의 연설 생중계는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이었다. 2000년 당시 그는 5년 전인 1995년에 이뤄진 국교정상화 감격을 재언급하며 베트남에 언론의 자유 등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핵심은 전쟁 유산을 뒤로하고, 양국의 전진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는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과거도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통해 회복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부시 ‘경제협력 강조’ vs 오바마 ‘국방협력 강화’

 

클린턴의 후임자 조지 W 부시는 2005년 6월 판 반카이 총리를 초청해 베트남 정상급 지도자의 백악관 방문이 이뤄지도록 했다. 이어 이듬해 11월 하노이와 호찌민을 찾으며 답방했다. 호찌민 방문에서 보듯이 부시는 베트남 경제에 주목했다. 그는 “베트남은 아세안에게 가장 강력한 경제 상승 기조를 타고 있다”며 “(베트남의 모습이) 어린 호랑이 같다”고 칭찬을 쏟아냈다. 

 

그러면서도 하노이에서 교회 예배에 참석하고, 호찌민에서 파스퇴르 연구소를 방문하며 메시지를 전파했다. 베트남의 종교자유와 과학발전 투자에 관심을 드러낸 것이었다. 베트남은 주로 경제 이벤트를 개최하며 부시의 방문에 의미를 뒀다. 부시 대통령은 베트남 증권거래소를 방문하며 이에 호응했다. 

 

공화당으로부터 정권을 가져온 버락 오바마는 재선 시절인 2016년 5월 베트남을 방문했다. 그는 전임자인 클린턴과 부시 전 대통령처럼 베트남 성장을 평가하면서도 정치개혁을 강조했다.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 연설에서는 “언론과 집회의 자유, 종교의 기본권 유지는 안정의 방해 요인이 아니라, 안정을 강화하고 진보시키는 토대가 된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당시 베트남에 대해 살상무기 판매 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한다고 선언했다. 베트남이 자국의 방어에 필요한 장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양국의 강력한 국방협력을 제안했다. 전쟁에서 적으로 만났던 양국이 군사적 협력 관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뗀 것이었다. 잠재적인 위협이었던 중국에 대응하자는 차원이었겠지만, 양국 관계 진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수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1일 하노이에 있는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의 기념비를 찾아 추모하고 있다. 하노이=AP연합뉴스

◆ 트럼프는 김정은 만나러…바이든은 매케인 추모

 

오바마의 후임자 트럼프는 2017년 11월, 2019년 2월 베트남을 방문했다. 두번째 방문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 트럼프의 첫번째 방문은 그보다 앞선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해 워싱턴 정치권의 아웃사이더에서 백악관 주인이 된 취임 첫 해 이뤄졌다. 트럼프의 베트남 첫 방문은 당시까지도 북한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미치광이’ ‘로켓맨’ 등의 언사로 각을 세우며 한반도에 긴장감을 키우던 시절 이뤄졌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북·미 화해 무드가 도래하기 전이었다.

 

트럼프는 베트남 첫 방문 당시 경제적인 성과를 칭찬하며 베트남전쟁 이후 변화를 가리켜 세계의 위대한 기적들 중 하나로 평가했다. 2019년 두번째 방문에서도 베트남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야기했다. 양국 경제협력 강화와 베트남의 미국 군사장비 수입을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10∼11일 방문에서는 양국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면서 투자협약 체결이 줄을 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총서기장, 보 반 트엉 국가주석, 팜 민 찐 총리 등과 만남을 갖고 첨단산업 인력양성을 포함한 반도체 공급망 구축 협력을 논의했다. 그는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와 혁신이 이어질 양국의 경제·외교적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규정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이 지난 10일 베트남 하노이 국가주석궁에서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주최로 열린 환영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하노이=UPI연합뉴스

◆ 베트남의 독립외교는 이어질 듯…한국 외교에도 시사점

 

외신 다수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방문을 통해 베트남의 밸류 체인의 가치를 재확인하고, 중국 견제를 위한 힘을 모았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평가와 달리, 베트남이 친미 목소리로 하노이 외교가를 채울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베트남은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등처럼 미·중 관계에서 독립외교로 방향타를 설정해 왔기 때문이다. 당장  팜 민 찐 총리는 16~17일 중국을 방문, 제20회 중국·아세안 엑스포(CAEXPO)와 중국·아세안 비즈니스·투자서밋(CABIS)에 참석했다.

 

바이든 대통령의 하노이 방문에서는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도 재언급되고, 기억됐다. 그는 24시간이라는 짧은 하노이 방문 일정 와중에 매케인 전 의원의 추모 기념비를 찾았다. 매케인 의원은 베트남전쟁에서 잡혀 5년 동안 포로 신세를 졌으며, 양국 관계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립고 또 그립다”며 “매케인은 좋은 친구였다”고 회고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매케인 전 의원은 각기 민주당과 공화당 소속으로 당을 달리했지만, 미국 외교정책에 서로 힘을 보탰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외교행보에서도 베트남을 중시하고, 국익 앞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려는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공화당 소속이었던 매케인 전 의원을 언급하고 추모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보와 함께, 2000년 이후 민주·공화·민주·공화·민주당으로 당적을 달리한 대통령 5명이 베트남을 다시 찾는 모습은 미국 외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재확인해준다. 그만큼 우리 외교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엄현경 '여전한 미모'
  • 천우희 '미소 천사'
  • 트와이스 지효 '상큼 하트'
  • 한가인 '사랑스러운 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