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유리 돔·날선 마천루… 건축, 통념을 깨다

입력 : 2023-06-02 23:00:00 수정 : 2023-06-02 20:40:4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전쟁 때 파괴된 獨 국회 재건 과정
‘치욕스런 역사’ 소련군 낙서 보존
‘권력 상징’ 돔, 시민 찾는 전망대로

주거 제약에 태양열 설비 활용
문제 극복한 ‘시티그룹 센터’ 등
작가가 엄선한 30개 건물 탐구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유현준/을유문화사/1만9500원

 

독일의 국회의사당 건물 내부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이 남긴 낙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소련군 공격으로 대파돼 앙상하게 남은 돔 형태 건축물을 리모델링했지만, 치욕적인 낙서를 지우지 않은 것이다. 완공 후 독일 국회의원들은 소련군의 낙서를 지워 달라고 했다가 ‘낙서 역시 역사의 일부’라는 건축가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동서독 통일 후 국제공모전을 통해 이 건물을 만든 사람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패전국으로 만든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였다.

뉴욕 스카이라인의 랜드마크가 된 ‘시티그룹 센터’는 건물 옆 작은 교회가 이전을 거부하자 공중권을 사들여 교회 위로 건물을 올렸다. 을유문화사 제공

돔은 건축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 정치적, 종교적으로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포스터는 돔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고 그 안에 경사로를 넣어서 베를린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만들었다. 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안에 들어가 베를린 시내를 바라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전망대 아래층에 있는 국회 회의장을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국회는 국민으로부터 감시받고 ‘국회의원은 국민보다 아랫사람’이라는 의미다. 이처럼 건축은 그 나라의 기술과 경제력뿐 아니라 국격과 문화수준, 국민의 성숙도를 보여준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는 신간 ‘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을유문화사)에서 건축 역사에 획을 그은 작품들의 기술적 혁신뿐 아니라 역사적, 문화적, 철학적 의미를 맛깔나게 들려준다. 전작인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의 미래’ 등에서는 도시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건축물을 예시 정도로 언급했다면, 이번에는 건축물 자체가 주인공이다. 저자가 스무 살 때부터 33년간 충격과 감동을 받은 건축물 100개 중 20명의 건축가가 만든 30개 작품을 엄선했다.

유현준/을유문화사/1만9500원

그는 “수백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건축가들의 이야기”라며 “(그들은) 벽, 창문, 문, 계단 등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혁명가들이고, 대중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철학자들”이라고 정의한다.

아무리 멋진 설계도 환경적, 법적, 경제적 제약에 부딪힌다. 이 장애물들을 극복하거나 역으로 이용한 건축가가 창의적이고 위대한 작품을 남긴다. 저자가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물로 꼽은 미국 ‘시티그룹 센터’가 대표적이다.

미국 뉴욕에 있는 59층짜리 ‘시티그룹 센터’는 첨두가 남쪽으로 45도 경사진 좌우 비대칭 모양이어서 뉴욕 스카이라인에서 가장 눈에 띈다. 건축가는 당초 층층이 경사진 테라스를 만들어 강변이 보이는 고급아파트를 구상했지만 건축 법규상 주거를 넣을 수 없었다. 그러자 경사로에 태양전지판을 넣었다. 1977년은 오일쇼크로 에너지 문제가 심각하던 때다. 최첨단 기술을 활용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당초 설계를 고수한 것이다.

‘국회의원을 국민의 발 아래 둔다’는 개념을 완성하고 동시에 하이테크를 이용해 빛을 실내로 반사시키는 친환경 기능까지 갖춘 독일의 ‘국회의사당’. 을유문화사 제공

문제는 건물 바로 옆 오래된 작은 교회였다. 교회가 이전을 거부해 대형건물을 짓기 힘들어진 것이다. 건축가는 포기하지 않고 교회로부터 공중권을 샀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는 권리다. 건축가는 과감하게 교회 건물이 있는 코너를 12층까지 비우고 그 위로 13층부터 시티그룹 센터 건물을 올렸다. 광장은 시민들의 공간으로 만들어 뉴욕시로부터 추가로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주변 건물보다 20층 가까이 높아졌다.

저자는 “시티그룹 센터의 디자인은 이전을 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 교회에서 시작됐다”며 “우리가 보는 훌륭한 디자인은 모두 ‘문제 해결의 결과물’이다. 제약은 새로운 창조의 어머니”라고 말한다.

이밖에 야자수 그늘 같은 지붕을 만들겠다는 시적 상상을 현실로 만든 ‘루브르 아부다비’, 창문, 경사로, 천창, 색깔, 바닥의 기울기 등 건축가가 다룰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동원해 사람의 마음을 디자인하는 ‘파르미니 성당’, ‘아파트=닭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리스 산토리니 섬 언덕 마을을 옮겨 놓은 듯 세대별 개성을 살린 ‘해비타트67’ 등 혁신적인 디자인만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
  • 오마이걸 유아 '완벽한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