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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향칼럼] 누가 문단속의 주인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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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6 22:43:25 수정 : 2023-03-26 22: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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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
재난 막으며 상처 받은 이들 위로
우리 주변에도 힘겨운 활동할 때
지켜보고 응원하는 태도 보여야

‘스즈메의 문단속’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나왔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은 ‘문단속’이라니, 어쩌자고 세상은 위험한 곳이 됐을까, 하는 것이었다. 세상을 불안으로 느껴 안전만 챙기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소심한 사람의 이야기인가 보다며 훅, 지나가려는데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란다.

나는 신카이 마코토를 좋아한다. 그의 전작 ‘너의 이름은’의 인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너의 이름은’의 주제는 바로 무스비, 인연의 힘이었다. 그대는 과거와 현재가, 꿈과 현실이, 이승과 저승이, 신과 인간이 그리고 그대와 내가 이어져 있다는 것을 믿게 만든 이름을 품고 있는가. 도쿄의 꽃미남 다키는 그런 경험의 시간을 ‘황혼, 기적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밤과 낮을 잇는 개와 늑대의 시간이고, 삶의 이유가 되는 이름을 간직하게 되는 시간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스즈메의 문단속’도 그런 인연으로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명랑하게 등교하고 있는 스즈메에게 무표정하지만 매력적인 남자 소타가 나지막이 묻는다. “이 근처에 폐허, 없니? 문을 찾고 있어!” 인연이 있는 사람은 만나는 법! 스즈메보다 스즈메의 심장이 먼저 인연을 알아보고 주책없이 쿵쿵, 뛴다. 그 인연이 ‘나’를 일깨우는 힘일 때 ‘나’는 운명의 주인공이 된다.

스즈메는 2011년 동일본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엄마를 잃었다. 그런 재난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그중에 어린 날의 재난은 ‘나’도 모르는 사이 평생 ‘나’를 옥죄고 있다. 당연히 풀어줘야 한다. 스즈메의 심장은 폐허의 문을 찾고 있는 소타가, 의미도 모른 채 겪어야 했던 어린 날의 재난의 의미를 함께 풀어가게 될 인연임을 먼저 알아본 것 같다.

‘문단속’은 “다녀오겠습니다”라고 하는 동양적 인사법의 의미를 일깨운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무의미하기까지 한 그 평범한 인사가 ‘다녀왔습니다’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어느날 갑자기 영영 이별을 당하고 평범한 일상을 잃어버린 가족은 마음이 타고, 몸이 탄다. 혹은 마음이 얼고 자꾸만 몸이 움츠러든다. 거기에 개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재난’이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그 재난은 지진이다.

지진이 잦은 일본에서는 예부터 지진을 땅속 괴물이라 여겨 이름을 붙였단다. 자연현상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자연을 무생물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으로 여기는 일이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겠다. 그런데 신카이 마코토는 지진에 ‘메기’라는 엄청난 괴물의 이름 대신 지렁이를 뜻하는 미미즈라는 이름을 붙였다. 미미즈, 그는 괴물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것, 그렇다면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단속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재난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남 탓, 부모 탓, 운명 탓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속’하기 위해서다. 단속이 강조되다 보면 그 상처 속에서 움츠리고 살아온 인물이 사실은 그 운명을 헤쳐 나갈 운명의 주인공임을 알게 된다. ‘나’를 짓눌렀던 상처는 내가 의식하는 순간 ‘나’의 사명을 일깨우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한순간에 삶이 무너져 내린 때가 있다. 그동안의 평범한 일상이 꿈처럼 사라져가고 그 일상의 잔해만이 남아 겨우 삶을 지탱하고 있을 때 삶을 바쳐 소타가 되고 스즈메가 되는 일은 자연스럽다. 그들은 단속하지 못해 덮친 재난을 온몸으로 기억하는 운명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소타와 스즈메가 문제의 고양이를 찾아 요석으로 되돌리는 일에 자신을 바치며 자신의 운명을 알아가는 과정은 자기를 돌보는 과정이고, 자기를 위로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야말로 성장이다.

우리 주변에도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잊을 수도 없는 검은 기억을 품고 숨 쉬는 일도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문단속을 하려 할 때 주변인이 해야 할 일은 손가락질이 아니라 지켜보며 응원해주고 힘을 보태는 일이 아닐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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