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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게이트 스캔들은 1974년 8월 리처드 닉슨이 대통령직을 사퇴할 때까지 2년간 미국 정계를 뒤흔든 초대형 사건이다. 그의 재선을 노린 비밀공작반이 워싱턴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하지만 대선이 본격화하자 사람들의 관심에서 사라지면서 이 사건은 그대로 덮일 뻔 했다. 닉슨은 유권자 득표율 60%, 선거인단 538표 중 520표를 싹쓸이하는 압승을 거두고 재선에 성공했다. 두 번째 임기 시작 무렵 그를 낙마시킨 결정타는 의회 청문회다. 알렉산더 버터필드 전 대통령 부보좌관은 청문회에서 백악관 집무실에 모든 대화가 녹음되는 비밀 장치가 있고, 닉슨 대통령이 은폐 공작을 지시하는 육성이 이 장치에 녹음됐다고 폭로했다.

청문회(聽聞會)는 단어 그대로 듣는 모임이다. 영어로도 ‘hearing’이다. 충실한 입법과 정부에 대한 비판·감시, 국민의 알 권리 충족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그런 청문회의 취지가 우리나라에서는 퇴색한 지 오래다. 기업 총수를 불러 군기 잡기를 하거나 상대방을 앉혀 놓고 일방적인 호통과 고성만 내뱉는다. 상대방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무성의하게 답변하면 때론 질책이 필요하지만 실상 대답에는 그닥 관심이 없다. 주객이 전도됐다는 의미다.

그제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여당 의원이 퇴장한 가운데 국가수사본부장을 사퇴한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 학교폭력과 관련한 31일 청문회 실시 안건을 통과시켰다. 90일간의 안건조정위원회도 50분 만에 꼼수로 패싱했다. 정 변호사와 서울대 입학본부장, 민사고·반포고 교장 등을 증인으로 부른다고 한다. 정 변호사 아들이 고교 시절 동급생에게 언어 폭력을 가하고, 피해 학생은 극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이것도 모자라 소송을 통해 2차 가해까지 한 것은 자체로도 죄질이 나쁘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공직에서 사퇴한 민간인 신분이다. 그런데도 불참하면 부인·자녀도 출석을 요구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공개석상에 세워 망신 주기를 하겠다는 심보이자 국회의 횡포다. 청문회로 인해 이달 말 발표하려던 교육부의 학폭 근절 대책 발표은 4월로 미뤄질 공산이 크다. 정쟁만 일삼는 청문회를 할 바엔 차라리 머리를 맞대고 개선책이라도 모색하는 게 나을 것이다.


김기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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