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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규의한·미동맹사] 미국과 함께한 독립운동 ‘독수리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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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3-20 00:30:13 수정 : 2023-04-16 21: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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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광복군 총사령부 구성을 완료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2월10일 일본에 선전포고 하고 연합국의 대일전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일 항전을 위해 중국 정부의 협조 외에도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다. 1945년 초 김구 주석은 웨드마이어 주중 미군사령관에게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군사적 협조가 필요할 때는 중국 군사위원회의 동의가 필요치 않으니 광복군과 직접 협의하길 바란다’고 전하며 적극적 의사를 표명했다. 1945년 2월 미 중앙정보국(CIA) 전신인 중국 주재 전략사무국은 일본과의 전쟁에 재외한인을 활용하는 계획을 작성했다.

1945년 9월30일 촬영한 광복군 제2지대 간부들과 미 전략사무국 교관들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무부는 미국과 연합작전으로 한국과 일본에서 지하공작을 진행한 뒤 한국으로 진입한다는 한국광복군건군반작전계획을 수립하고 미 전략사무국과 교섭을 추진했다. 1945년 4월 김구 주석과 전략사무국 사전트 대위가 최종적으로 한·미 군사합작 사항에 합의한 뒤 4월17일 정식 협정을 체결했다. 5월부터는 시안과 안후이성 리황에서 미 전략사무국과 한반도 적 후방 공작인 ‘독수리 작전(Eagle Project)’ 시행을 위한 군사훈련을 시작했다.

군사훈련은 제2지대와 제3지대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1기생의 훈련은 8월4일 완료하였으며, 38명이 교육과정을 통과했다. 8월5일에는 2기로 훈련받을 인원이 두취에 도착해 8월14일부터 교육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8월9일 일본이 포츠담 선언의 수락을 통보하며 사태가 급진전되자, 임시정부는 8월11일 한·미 합작 특수훈련을 받은 대원들과 광복군 제2지대 대원을 중심으로 ‘국내 정진군’을 편성했다. 일본이 항복하자 이범석 광복군 지대장 등 국내 정진군은 8월16일 시안을 출발하여 8월18일 여의도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국내 정진군은 일본의 저지로 8월19일 중국으로 철수하며 광복군의 한반도 진입작전은 아쉽게 막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전쟁 말기 광복군과 미국 전략사무국의 군사합작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전 한·미동맹의 출발점이 되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최완규 육사 외래교수·경제사회연구원 국방센터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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