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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를 꿈꾸던 조각가의 ‘공중 드로잉’

입력 : 2022-12-15 20:45:02 수정 : 2022-12-15 20:4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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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수 개인전

개·고양이·홍학 등 친근한 동물 소재
3D프린터 적극 활용해 ‘손맛’ 버무려

조각칼을 들고 장시간 고되게 수행하듯 깎아내거나, 틀을 만들고 내용물을 부어 굳히거나, 한 점 한 점 흙을 붙이고 빚어 만들어내야만 조각일까? 조각가 이상수(39)는 조각 작품에 대한 기존의 인상을 깨고, 일필휘지로 그은 자유로운 드로잉처럼 가볍고 경쾌한 조각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다. 그의 개인전(사진)이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에 위치한 예화랑에서 최근 시작됐다.

동아대 조소과, 홍대 대학원 조소과에서 수학한 뒤 전업 조각가로 활동해온 이상수는 실은 어린 시절 꿈이 회화를 하는 화가였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중학교 시절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 간 입시 미술학원이 하필 조소 전문이어서 얼떨결에 조각가의 삶으로 들어왔다고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런 ‘우연’이 운명처럼 ‘드로잉 같은 조각’이라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작품 세계로 이끌었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그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신작이다. 길쭉한 육면체들이 이리저리 휘어지고 구부러지거나 돌돌 말리고 서로 붙어 특정 형태를 연상시킨다. 대다수는 개와 고양이, 앵무새, 홍학, 돼지 등 동물 형태다. 종이에 형형색색 마커펜으로 끊지 않고 한 번에 슥슥 그린 그림이 2차원 평면에서 마치 마법처럼 튀어나와 3차원 공간 속에서 입체적으로 구현돼 살아난 것처럼 보인다. 이 입체가 된 선들은 리드미컬한 율동감을 보여준다. 스트레칭하는 고양이나 통통한 몸체 뒤에 붙어 있는 돼지꼬리, 푸들 형상에 위트가 담겨 있다. 홍학은 언제라도 사뿐사뿐 전시장을 걸어다닐 듯하다. 작가는 피카소가 최소한의 선으로 동물을 드로잉한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동물 소재 작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 누구나 친근하게 느끼는 소재라는 점에서 “어렵지 않고 캐주얼하게” 작품을 공유하고 싶은 자신의 의도에 딱 맞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을 “화가가 꿈이던 조각가가 공중에 그리는 드로잉이고 페인팅”이라고 말한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4분의 4박자를 지휘할 때 공중에 지휘봉으로 그린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은 이 작가의 의도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작가는 3D프린터를 적극 이용한다. 크기 1m 이하의 작품은 3D프린터 프로그램으로 스케치하고 아예 결과물까지 뽑아낸다. 3D프린터로 설계해 뽑아낸 선들을 조립하듯 붙여 형태를 완성하고 채색한다.

미술평론가 고연수는 이 작가의 작품 스타일을 ‘양감적 선들의 조합’이라고 표현했다. 고 평론가는 “인간에게 친밀한 동물이 주를 이뤄 시각적으로 부담 없이 시원하며 주제 역시 친근해, 소화하기 퍽퍽하고 난해한 현대 시각 예술 풍파 속에 마음을 이완시킨다”라고 했다. 이어 “첨단 기계의 정확성, 속도감 있는 생산력, 조각가의 ‘손맛’이 버무려지고, 리듬감 있게 조율, 제작돼 발랄하고 유쾌하다”고 평했다. 내년 1월14일까지.


글·사진=김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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