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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상황이 달라졌지만 지난 3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군은 개전 9시간 만에 수도 키이우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결사항전 의지를 불태웠지만 러시아의 막강 군사력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개전 초기 이러한 우크라이나의 열세는 러시아와의 군사력 격차에서 기인하지만 동시에 우크라이나의 약점을 보완할 인계철선(trip wire·引繼鐵線)이 없었던 탓도 있었다.

인계철선이란 부비트랩 등을 설치할 때 격발 장치와 함께 쓰는 철선이다. 철선을 건드리자마자 격발 장치가 작동해 폭발물을 폭파시킨다. 최근 그 의미가 확장돼 동맹국의 자동 개입을 유발하기 위한 주둔군이나 군사동맹을 일컫는다. 전쟁 억제력이자 전쟁 발발 시 적을 격퇴할 대응 전력 개념인 셈이다. 이게 우크라이나엔 없었다. 만약 우크라이나가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었거나, 자국 땅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있었다면 러시아의 침공은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주한미군 2사단을 지칭하던 말로 사용됐다. 북한군의 예상 남침로인 한강 이북 중서부 전선에 미 2사단 병력이 집중 배치돼 북한의 공격이 있으면 곧바로 미군의 자동 개입이 이어질 것으로 여겼다. 지금은 미 2사단이 한강 이남으로 배치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 잦아지면서 낡은 개념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한반도 비상사태 시 미국의 개입을 담보하는 장치라는 데 전문가들 이견은 없다. 인계철선의 기능 작동이 여전하다는 얘기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가 짓는 최첨단 반도체 공장의 장비 반입식이 지난 6일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시에서 열렸다. 과거 TSMC는 대만을 떠나 기업을 경영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대만 국민들은 TSMC가 대만에 있는 한 중국이 함부로 대만을 무력으로 침공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미국이 자동 개입해 지켜줄 것으로도 기대했다. 미 공장 설립이 단순 투자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에도 TSMC의 인계철선 역할이 약화하지 않을까 대만인들은 노심초사하고 있다. 인계철선 부재로 힘의 논리에 짓밟힌 냉엄한 현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확인해서다.


박병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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