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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경제 망치는 나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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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2-07 22:53:30 수정 : 2022-12-07 22:5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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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정쟁에 새해 예산안 표류
巨野 단독 예산안, 도 넘은 횡포
한전·레고랜드 사태도 정치재난
구한말 조선 망국의 교훈 새겨야

2011년 말 국회에서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새해 예산안이 정부안보다 6147억원 깎여 통과됐다. 여야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재정을 튼튼히 해야 한다고 했다. 의원들의 속내는 딴판이었다. 예결위원회 조정소위원회 심사자료를 들여다봤더니 묻지 마 증액, 지역구 사업 끼워 넣기, 예산 나눠 먹기와 같은 편법과 야합이 넘쳐났다. 심지어 사찰과 교회, 이해단체, 관공서까지 챙기는 사례도 허다했다. 증액요구액이 55조원대로 예년의 15조∼20조원을 배 이상 웃돌았다. 건수는 2170건에 달했고 이 중 위헌 소지가 다분한 비목 신설도 178건이나 쏟아졌다. 의원들은 세금을 자신의 사금고로 여기는 듯했다.<세계일보 2013년 10월 1일 자 탐사보도 ‘줄줄 새는 혈세, 구멍 뚫린 감시망’>

10여년이 흘렀지만 구태와 악습은 여전하다. 올해도 예결위 의결을 건너뛰고 처리법정시한(12월2일)도 넘겼다. 여야 극소수만 참여하는 비공식·비공개예산기구인 ‘소소위’가 639조원의 예산을 주무르고 있다. 의원들은 ‘지역구 챙기기’를 위해 34조원이 넘는 예산을 밀어 넣었다고 한다. 19세기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소시지와 같아서 보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을 남겼는데 예산도 다르지 않다.

주춘렬 논설위원

해마다 진통이 있었지만 올해만큼 나라 살림이 정쟁의 볼모로 잡혀 파행을 겪는 건 유례가 드물다. 국회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책임이 크다. 상임위마다 대통령실 이전·원전산업복원과 같은 ‘윤석열표 예산’을 줄줄이 자르고 공공임대주택 등 ‘이재명표 예산’을 되살렸다. 정부안 대신 감액한 독자적인 수정안을 처리하겠다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헌법에 명시된 정부의 예산 편성권을 무력화하는 횡포가 아닐 수 없다. 거야는 ‘초부자 감세’라는 핑계로 12조원의 세금을 깎는 세제개편안도 꽁꽁 묶었다. 민주당은 애초 예산안 처리 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를 하기로 합의했다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강행하기로 했다. 여야가 진행중인 예산안 협상도 난기류가 흐른다. 설혹 타결되더라도 예산안은 누더기로 전락할 게 뻔하다.

그 피해는 국민이 떠안아야 한다. 통상 예산 집행에는 한 달이 소요되는데 국회통과가 늦어질수록 행정적, 사회적 비용이 불어난다.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서민 어려움이 가중되고 경제회복에도 차질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했다. 사상 초유의 준예산이 현실화하면 보육·일자리지원 등 민생사업지출이 모두 막혀 취약계층 지원이 끊긴다. 자금시장의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신용보강을 위한 정부의 긴급자금 수혈이 다급한데 때를 놓치면 금융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한국경제는 내년 고환율·고금리·고물가의 복합위기에 저성장 쇼크까지 우려되는 마당이다. 골드만삭스 등 9개 투자은행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평균 1.1%였고 노무라는 1.3%의 역성장을 예상했다.

정치가 경제를 망치는 게 어디 이뿐이랴. 한때 초우량기업이었던 한국전력이 파산 직전에 내몰린 건 문재인정부의 엉터리 정책이 도화선이었다. 문정부는 5년 내내 탈원전정책에 가속페달을 밟으면서 전기료를 동결했다. 한전은 전기를 팔수록 손실이 커지는 악순환에 빠졌다. 부채규모가 무려 166조원에 달하고 올해 적자액도 30조원에 이른다. 채권발행을 남발해 기업의 돈줄이 마르는 자금경색까지 심화시킨다. 강원도는 테마파크 ‘레고랜드’의 빚보증 이행을 거부해 채권시장의 골간인 신용을 훼손했다. 현 지사가 전임자의 치적사업을 마뜩잖게 여겨 벌어진 황당한 일이다. 금융당국이 100조원에 육박하는 자금을 수혈해도 금융불안은 가실 줄 모른다.

여야는 틈만 나면 ‘민생’, ‘경제’를 걱정하지만 말뿐이다. 외려 밑도 끝도 없는 정쟁과 벼랑 끝 대치가 경제를 망치고 국민 고통을 키우기 일쑤다. 재난이 닥치면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해 네 탓 공방만 벌인다. 구한말 격동기 때 지도층의 사분오열과 당파싸움이 망국의 길을 재촉했다. 정치권이 기어이 참담한 역사를 되풀이할 작정인가.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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