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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가 벌써 대설(大雪)이 되었으니/ 이번에 내린 눈 급한 것 아니로다/ 첫눈이 이미 이처럼 많으니/ 세 차례 큰 눈은 걱정이 없네/ 밤이 깊어지고 잠도 깊이 들어/ 눈송이 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창에 뿌리는 소리도/ 못 들었는데/ 창문을 열어보니 놀랍게 쌓였구려.” 고려 후기 문신 이규보가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에 남긴 시 ‘11월3일 많이 내린 눈을 보고’의 구절이다. 자고 일어나니 대설에 때맞춰 많은 눈이 내린 것을 반기는 마음을 표현했다.

대설은 입춘을 기준으로 보면 24절기 중 스물한 번째다. 태양의 황경(黃經·황도 좌표의 경도)이 255도에 도달한 때다. 음력 11월에 동지와 함께 한겨울을 알리는 절기다. 농부들에게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농한기다. 농촌에서는 이때 콩을 삶아서 메주를 쑨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어 따뜻한 방에 두면 메주 뜨는 냄새가 진동했다. 지금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됐다. 조선 세종 때 이순지와 김담 등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독자적인 역법서(曆法書) ‘칠정산내편’은 대설에 “산박쥐가 울지 않고, 호랑이가 교미를 시작하며, 타래붓꽃이 돋아난다”고 했다.

대설은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이고 이날 눈이 많이 오면 이듬해 풍년이 든다는 말도 전해지지만, 실제로 눈이 많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역법의 발상지이며 기준 지점인 중국 화북지방의 계절적 특징을 반영한 절기이기 때문이다. 대설 전후로 눈이 내리지 않으면 조정에서 눈이 오기를 비는 기설제(祈雪祭)를 지내기도 했다. ‘숙종실록’에는 숙종 11년(1685년) “예조에서 ‘겨울의 차서(次序·차례의 순서)가 반이 지났는데도 날이 따뜻하기가 봄과 같으며, 대설이 지났는데도 한 점의 눈도 내리지 않습니다. 중신을 보내서 기설제를 종묘와 사직단 및 북교(北郊·북쪽 교외)에서 행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이를 윤허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이 대설이다. 어제는 경기 남부를 비롯한 중부지방 곳곳에 눈이 내렸지만, 오늘은 구름만 많고 눈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설이란 말이 또 한번 무렴하게 됐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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