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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란 때 한반도 바다 지킨 지장
그가 섬긴건 왕 아니라 민초들
최후 담긴 류성룡 달력 日서 귀환
우리가 지켜야 할 것 깨닫게 해

이순신의 최후가 담긴 류성룡의 달력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그리운 이름이다. 이순신! 이순신을 선조에게 천거했던 ‘징비록’의 저자 류성룡까지. 젊은 날 ‘난중일기’를 읽으며 나는 이순신을 철학자라고 생각했었다. 자신을 바쳐 삶의 비밀을 드러낸 실존적 철학자라고. 그는 반란군을 진압하러 가는 전쟁터에서 ‘명상록’을 쓰며 반란과 배신, 간교한 혀들과 음모가 판치는 세상을 어떤 마음으로 통과해갈 것인가를 성찰했던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와도 비견될 수도 있겠다. 그들은 알려주는 것 같다. 우리가 삶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은 음모, 뒤통수, 의혹, 질병 같은 것들 때문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중심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물론 이순신은 아우렐리우스와는 결이 다른, 깊은 매력이 있다. 그것은 강직함 혹은 외유내강에서 오는 것 같다. 올곧으면서도 애상이 넘치고 정이 깊으면서도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그 마력 같은 매력을 또 스스로는 즐기지 않을 줄 아는, 산처럼 묵직한 성품, 그것이 내가 본 이순신의 외유내강이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이순신은 전쟁 중에도 매일 일기를 쓰는 차분한 기록자였고, 거기서 매일을 성찰하는 실존주의자였으며, 그 와중에도 우연히 찾아드는 꿈을 통해 어찌해볼 수 없는 운명을 소화해내는 분석심리학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올라오는 감정들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무심의 상태를 만들어가며 전략을 짜는 지장(智將)이었다.

최근에 읽은 이순신 책 중에 저자의 이순신 사랑이 지극하다고 느낀 책이 있다. 황현필의 ‘이순신의 바다’다.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사랑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프란치스코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성자 프란치스코’를 썼던 것처럼, 경허스님을 사랑한 최인호가 경허스님의 흔적을 찾아 ‘길 없는 길’을 썼던 것처럼 그에게는 정말 이순신이 조선의 바다고, 그의 하늘이었던 것 같다. 거기서 나는 이순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싸웠는지를 보았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은 23전 23승, 전쟁의 신이었다. 이 전쟁의 신을 비극적으로 만든 내부의 적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선조다. 역설적이게도 선조의 곁에는 유능한 신하들이 많았다. 그를 세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동고 이준경에서 율곡 이이로부터 류성룡, 정철, 이덕형, 아들 광해, 누구보다도 전쟁의 신 이순신까지. 그러나 선조에게는 그들의 능력을 품을 줄 아는 자질이 없었다. 개혁군주의 소질이 있었던 광해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성정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원균의 모함이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전쟁 중에 전쟁의 신을 고문하고 가두는 그 어리석음은 또 어쩔 것인가. 선조는 좋은 나라를 만들 중요한 조건을 가지고도 나라를 망쳐먹을 수 있는 리더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드는 무능한 리더였던 것이다.

일본 측이 ‘칠천량대첩’이라고 기록하는 그 해전에서 어쩌면 전쟁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때 유능한 신하들이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다시 천거한다. 할 수 없이 선조는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는데, 나라면, 당신이라면 그 상황에서 그 자리를 맡았을까. ‘이순신의 바다’에 답이 있다. “실제로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직을 다시 임명받은 후 정유재란이 진행되는 동안 임금 선조를 향한 망궐례를 올리지 않았다. 이것은 분명한 항명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전선이 있습니다, 라며 바다에서 싸울 의지를 보였던 그에게 싸워야 할 이유, 바로 질투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무능한 왕이 아니라 이 땅에 기대 살아나가야 했던 ‘백성’이었던 것이다.

거북선은 누가 창안했을까. 궁금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 만들어낸 인물이 이순신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거북선 진수식을 거행한 다음 날,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전쟁의 마지막 날 이순신이 먼 길을 떠났다는 것! 사족이 전혀 없는 그의 삶이 사즉생(死卽生)으로 지킨 한반도의 바다가 한반도에 사는 민초들의 자긍심임을 일깨워준 것 같다. 그의 흔적이 일본에서 돌아왔다. 마치 그가 찾아와 지금 이 시점에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 우리가 지켜야만 할 것을 묻는 것 같다.


이주향 수원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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