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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영의도시산책] 작은 차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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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11-29 01:11:32 수정 : 2022-11-29 10: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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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선 소형차에 인센티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서
차 크기가 신분 상징처럼 인식
환경규제 느슨… 차 과소비 조장

영국에 ‘미니’(mini)라는 승용차가 있었다. 영국의 국민차였다. 1956년 수에즈전쟁 때 석유 수송이 힘들어지자 에너지를 적게 쓰도록 만든 차다. 배기량 650㏄로 우리나라 ‘모닝’이나 ‘캐스퍼’보다 훨씬 작다. 세계 최초의 전륜구동차다. 고풍스럽고 앙증맞은 디자인인데, 매년 같은 모양으로 출시되었다. 영국의 코미디언 ‘미스터 빈’(로언 앳킨슨)이 애용하는데, 덩치 큰 몸을 조그만 차에 구겨 넣는 모습부터 우스꽝스럽다.

 

독일의 국민차는 역사가 더 길다. 1938년 히틀러가 국민자동차로 만든 폭스바겐. 60년대에 ‘비틀’이란 이름으로 미국에 소개되자 때마침 불어온 영국의 록밴드 ‘비틀스’ 선율을 타고 유명해졌다. 이름하여 딱정벌레들의 미국 공습. 정말 작고 깜찍한 차다.

이건영 전 국토연구원장·소설가

일본이 자동차 왕국이 된 것은 ‘코롤라’의 공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경제호황으로 거리마다 재즈가 흐르고, ‘크게, 빠르게, 신나게’란 자동차 소비문화가 주류였다. 석유를 펑펑 먹는 대형차에 중독되었던 미국은 70년대 오일쇼크 때 몸살을 겪었다. 정부가 나서서 자동차의 에너지효율을 높이도록 자동차 제조사에 규제를 가하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는 작은 차를 만들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이때 일본은 배기량 1000㏄의 코롤라를 미국에 상륙시켰다. 미국 사람들 눈에 ‘카로라’(코롤라의 애칭)는 장난감처럼 작지만 실용적이었다. 결국 미국의 자동차 시장은 일본의 작은 차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코롤라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차다. 우리나라가 ‘포니’를 앞세우고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은 훨씬 뒤다(미니, 비틀, 코롤라는 그 이후 계속 변종되었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유럽이나 일본의 승용차는 일반적으로 작다. 우선 이 나라들은 도로가 좁고 주차장도 작다. 큰 차를 가지고 있으면 운전하기 불편하다. 좁은 길에서 반쯤 인도에 걸치고 주차하는 경우도 많은데 큰 차는 아예 주차 불가다.

 

세계 두 번째 자동차 수출국인 일본에서는 특별히 노란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배기량 660㏄ 이하의 경차들이 40%가 넘는다. 과연 축소지향적인 나라다. 우리나라에는 이 정도 작은 차는 없다. 우리나라는 경차 기준이 1000㏄, 4도어, 5인 탑승이다. 한때 경차가 신차 판매량의 23%까지 차지했으나 지금은 8%밖에 안 된다.

 

여러 사정을 종합해봐도 우리나라의 승용차는 멋없이 크다. 연도별로 보아도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다.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SUV)들은 아예 탱크 정도 되는 것 같다. 1인 가구가 늘고 가구 규모가 작아지는데도, 큰 차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중대형차의 비중이 50%를 넘는다. 자동차 회사들도 경차나 소형차의 생산라인을 줄이고, 수지가 맞는 대형차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에너지효율을 높이기 위해 차량 크기를 점점 줄여 가는데 우리나라는 반대로 가고 있다.

 

자동차 과소비다. 아직도 우리는 승용차의 크기가 신분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과장 차, 부장 차, 전무 차가 다르다. 남보다 한 단계 위에서 논다는 것이다. 졸부의식에서 온 과시요 사치요 허세인데, 어느 틈에 이것이 사회 풍조가 되었다. 호텔이나 음식점 주차장에 가도 대접이 다르고, 위세 좋게 끼어들기를 해도 무사하고, 교통경찰마저 공손히 대해준다. 그래서 서민들 동네에도 대형차,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서 있는 모습이 전혀 낯설지 않다.

 

물론 지금은 자동차 시대다. 게다가 우리는 세계 5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란 자부심도 있다. 개인의 취향이 다른 것이니, 이 정도의 승용차 사치쯤이야.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서 큰 차가 주차하기 편하도록 주차장 규정을 바꿔주는 것이나, 물가 잡는다고 유류비를 낮춰주는 것이나, 느슨한 환경규제는 결과적으로 자동차 과소비를 조장하는 것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의 유류값 수준은 유럽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보다 훨씬 저렴하다. 외국에서는 작은 차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고, 도로나 주차장 크기를 줄이고, 유류값을 올리고, 차량 무게나 도어 수 또는 배기량에 따라 환경부담세를 물리는데, 우리는 재생에너지 타령만 하며 전기차만 지원하는 형편이다.

 

지금은 세계가 에너지전쟁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은 아마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할 것이다. 자동차가 크면 그만큼 에너지 소비가 높아진다. 대략 대형차는 소형차의 두 배 정도 에너지를 먹고, 당연히 더 많은 매연을 배출한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은 자동차다. 우리나라도 에너지 소비의 상당 부분은 자동차 관련이다. 환경부는 2012년부터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자동차 배기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반감시킨다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평균 배출량은 140g/㎞ 수준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자동차가 자꾸 커졌기 때문이다.

 

평소 소형차를 애용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방한하였을 때, 경차 ‘소울’을 의전차로 사용하여 우리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바 있다. 그래서 나는 사회지도층부터 승용차 다운사이징을 하였으면 한다. 최근 새로 차를 바꿨다며, 모닝을 몰고 저녁 자리에 나타난 선배를 향해 나는 에른스트 슈마허 흉내를 내었다. 작은 차가 아름답다고. 브라보!


이건영 전 국토연구원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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